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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집행위원장 편지] 사람들을 통해 듣는 하나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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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0-09-07 15:03 / 조회 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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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위원장 편지]
사람들을 통해 듣는 하나님의 말씀

김정태 집행위원장(사랑누리교회 목사)


코로나19 상황을 맞아 한국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야기된 예배의 위축, 소모임 폐지, 재정의 감소 등으로 한국교회가 결국 몰락할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몰락의 주원인이 과연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외부요인 뿐일까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더 큰 원인은 교회 내부의 영적 문제에 있습니다. 외부적 요인이 아무리 커도 교회가 올바른 영적 토대위에만 서 있다면 위기가 도리어 좋은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회의 현실은 암울합니다.


최근 들어 한국교회에 두 개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목회 세습의 파도입니다. 교회세습의 대표격인 명성교회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세습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사유화하는 최악의 범죄행위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죄악을 감싸주려고 교단총회까지 나섰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교회 바깥 분들은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코로나19라는 두 번째 파도가 들이닥쳤습니다. 이 파도는 그동안 잘 숨겨왔던 한국교회의 교만과 반사회성을 고스란히 노출시켰습니다. 어떤 교회는 현장예배를 율법적으로 고수하며 물리력을 동원해 공권력에 맞서기도 했고,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며 나선 대형 교단들은 사회 각계가 요구한 온라인예배로의 전환 권고를 종교탄압이라며 맞섰습니다. 이 때 내놓은 교단들 성명서와 교단장들의 목회서신은 그동안 한국교회가 세상을 얼마나 얕잡아 보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세상을 섬기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품위나 겸손의 미덕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교회 바깥세상을 무시하는 우월의식만이 가득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코로나19 이후 교회를 향한 세상의 여론은 조롱을 넘어 적대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교회 바깥 분들은 한국 개신교회를 향해 엄중하게 묻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교회 내적 필요를 핑계로 이웃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다면, 소위 정통이라는 교회들과 이단이라는 신천지가 뭐가 다르냐?’라고, 또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유해한 존재가 아니냐’라고. 이렇게 공격적으로 바뀐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습 문제는 교회 내부의 일로 외부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교회의 안일한 대응은 교회 밖 모든 분들의 생명까지 위협하였습니다. 이 지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겸손히 듣는 귀’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후 생겨난 교회는 듣는 귀가 뛰어난 곳이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교제하고 유무상통하며 회의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경청해가며 거룩한 민주주의를 실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목사 또는 소수의 중직들이 권한과 목소리를 독점하고 다수 구성원들의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아니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분쟁은 권한을 내려놓고 잘 들으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들으려 하지 않으니 이미 예상된 문제들조차 대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부에서도 서로 듣지 못하니 어떻게 세상 밖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겠습니까?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마가복음 16장 14절


부활하신 예수님이 열한 제자를 꾸짖고 있습니다. ‘꾸짖다‘는 단어는 인신모욕에 해당될 만큼 호된 질책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은 이유는 그들에게 “믿음 없는 것” 때문이요, 이 믿음 없는 상태가 “마음이 완악한 것” 상태와 같습니다. 또 ‘마음이 완악’하다는 말은 ‘심장이 딱딱하게 바짝 말라버려서’ 외부 정보에 반응하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상태가 된 제자들에게 나타난 증상이 바로 예수님께서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 질병입니다. 마음이 완악해지면, 믿음이 없어지고, 믿음이 없어지면, 예수님을 본 사람의 증언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증언을 무시했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부활 목격담도 무시했습니다. 이것을 꾸짖으셨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나타나서 부활을 믿게 하는 대신에 먼저 본 다른 여성 남성 제자들의 부활 증언을 믿어주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모든 부활 선포는 그렇게 증언자의 말을 믿어주는 방식을 통해서만 전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부족한 것은 정확히 이런 믿음, 즉 서로에게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함께 신앙 생활하는 옆 교인들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신비한 직접 계시만 바라보고 살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살아 숨 쉬는 이들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귀만 잘 갖추어도 교회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곳이 될 것입니다.


내부적으로 이런 영적 소통이 일어나게 되면 교회의 지평이 넓어져 교회 바깥 세속사회 한복판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선민의식에 가득 찬 교만한 귀를 가진 교회는 결코 이런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지만, 예수님처럼 세상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며 사랑하는 겸손한 교회는 세상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교회 밖의 분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며 도망치던 요나를 누가 꾸짖습니까? 이방인 선장이 꾸짖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를 누가 꾸짖습니까? 세상 언론이 꾸짖고, 교회 밖 일반 시민들이 꾸짖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선지자 요나처럼 돈과 성공이 보장된 다시스로 도망치고 있다며 세상 시민들이 자신들의 돈과 에너지를 써가며 교회를 꾸짖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지 않는다면 결국 몰락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코로나19 이후 거세어진 교회를 향한 꾸짖음을 겸손히 듣고 회개하면 한국교회는 지금과 다른 영적 성숙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초대교회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속히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그리고 교회개혁실천연대가 한국교회에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는 통로의 역할을 계속 잘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 이 글은 소식지 '공감' 74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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