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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왜 불렀을까 [뉴조 200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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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4-10-15 10:20 / 조회 2,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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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왜 불렀을까
거대함을 지향하는 세속에 역사에 맞선 새로운 복의 역사, '기독청년아카데미'

오세택 ohset@cholian.net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느닷없이 너의 본토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으로 큰 민족을 이루어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창12:1~3).

하나님께서 굳이 한 민족을 일으키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고향을 떠난 시점이 대략 B.C2000년경이다. 인류의 역사는 아담이 창조되고 지구상에서 생을 시작한 B.C4000년경으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지 2000여년이 지나는 시점이다. 아담 이후 아브라함 때까지 인간의 역사를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피라미드를 쌓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피라미드를 쌓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B.C 3000년경부터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고 살았던 시점은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피라미드란 이집트 왕들의 무덤으로 영원불멸설을 믿었던 왕들이,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과 자신의 이름을 온 천하에 세세에 남기고 싶은 이 한 가지 욕심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 피라미드를 쌓기 위해서 이집트의 왕들은 온갖 명분과 논리를 앞세워 힘없는 나라를 정복하고 약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 인원 20만 명이 동원된 피라미드 공사에 노예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끊임없는 침략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기 이전까지 역사는 거대함을 지향하기 위한 피의 착취, 약육강식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역사가 아닌 또 다른 역사는 거대함을 지향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힘없는 자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고통과 눈물의 역사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함께 살아갔다.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차별 없이, 설상 있다하더라도 기꺼이 그 차별을 스스로 없앨 수 있는 새로운 역사와 거룩함을 지향하는 복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복의 역사는 430년 동안 애굽에서 준비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과 율법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새로운 복에 대한 역사의 설계도가 주어진 것이다. 그 새로운 복의 역사를 담고 있는 설계도의 핵심 내용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생각한 복은 많이 소유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모세에게 주신 새로운 복은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소유한 것이다.

이 복의 역사는 아쉽게도 오랜 세월 동안 시행되지 못했다. 사사기를 거치고 왕조시대가 되어 드디어 시행하게 되는데 그 주역은 다윗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근본적으로 연약한 존재이기에 완전한 시행을 하지 못했다. 그가 진정으로 소망을 가졌던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였다. 그가 오시면 사람들을 근원적으로 새롭게 하셔서 이 복의 역사를 이룰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다윗의 가장 위대한 점은 바로 이 메시아사상을 나름대로 확립한 것이다. 이 메시아를 대망하는 사상은 선지자를 통해 이어졌고 포로 이후 역사가들에 의해서 전승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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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택 목사. 뉴스앤조이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복의 역사를 완성하실 메시아가 오셨다. 모세의 율법에 나타난 복의 역사가 더욱 강화된 형태로 산상보훈에 나타났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들은 이 복의 역사를 누리며 이룰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성령님도 이 역사의 보증이 되신다.

신약의 교회와 성도는 이 복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막중한 사명이자 특권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교회를 볼 때 거룩함을 지향하는 복의 역사에 서 있지 못하고 거대함을 지향하는 세속의 역사에 함몰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그래서 '기독청년아카데미'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레바논의 백향목같은 나무가 되어 하나님이 소원하셨던 복의 근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오세택 목사 / 두레교회.기독청년아카데미 원장

(이 글은 10월 8일(금)에 있었던 기독청년아카데미 영성수련의 밤 설교입니다)

2004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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