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연재] 목사 없는 교회가 이끌 한국교회 쇄신의 바람 (뉴스앤조이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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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5-07-03 13:32 / 조회 40 / 댓글0본문
신자란 누구인가
신자는 누구입니까? 신자는 그리스도에게만 의존하는 존재이며, 모든 사람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스스로 주체로 사는 존재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신자는 아침저녁으로 말씀의 샘물을 성경 속에서 직접 끌어올려 마시며 그 말씀으로 자기를 비치며 세상을 바라보며, 그것으로 자녀를 가르치며 문답하는 존재입니다. 멈출 때와 가야 할 때, 외칠 때와 침묵할 때, 울어야 할 때와 웃어야 할 때를 말씀에 기초하여 스스로 분별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진리로 자유를 얻었으니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자유롭게 하는 진리에 자신을 복속시키며, 자신을 상대화하며, 고통받는 이들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할 존재, 저는 그게 신자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입니까? 신자들의 공동체, 즉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말씀 해석의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즉, 신자들이 교회로 모여 제자로서 자신의 삶을 회복시킨 성령의 열매, 그리고 그 열매를 내게 전달해 준 '해석의 말씀'을 나누되, 여러 사람이 이에 참여함으로 개인의 해석을 넘는 공동체적 해석의 풍성함까지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해석의 공동체란, 한 사람의 해석만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모든 신자가 해석의 과정에 참여하는 곳이 교회라는 선포입니다.
이런 교회관은 한국교회에서 생소합니다. 그러나 성경 속 1세기 교회에서는 흔한 현상이었습니다. 신자 공동체에서 함께 말씀을 해석할 때, 신자들은 말씀 해석의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해석의 주체'요 '생산자'로서 서게 됩니다. 자기와 같은 평신도가 말씀을 붙들고 자기 삶을 해석하며 위로와 도전, 자비와 평화를 경험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삶에서도 같은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이런 각성과 해석의 도전, 기쁨이 순환하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신자들은 성숙하고 교회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목회자는 어떤 존재입니까? 결론은 분명합니다. 신자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존재입니다(엡 4:11-13). 즉, 신자들로 하여금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만 충성하고 진리에만 순종하고 다른 어떤 존재에 자기 판단력과 감정, 나아가 영혼을 의탁하지 않도록 돕는 존재입니다. 그에게 리더십이 있다면, 그 리더십을 행사하는 목적이 바로 그것이고, 그가 성경을 알고 있다면, 성경을 신자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목회자는 신자와의 관계 속에서 볼 때, 떠나기 위해 곁에 있어야 할 존재이며, 그의 독립을 위해 돕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핵심을 '목회자의 있고 없음'으로 보고, 말씀을 전하는 강단을 오직 목회자가 점유하며, 성경에 대한 해석의 권한을 배타적으로 통제하고, 설교에 오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신적 선포의 대행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상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상황에서 신자의 태도는 오직 '아멘' 밖에 없습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 판단은 자신 속에서 삐져나오지 않도록 그 싹을 죽여야 합니다.
그런 목회자에게 신자들이 오랫동안 길들여질 경우, 신자들은 그에게 의존하고, 자칫 말씀이 부실할 때 불평하기 쉽습니다. 목회자의 주일 설교가 자신의 영혼을 만져주지 못하면 설교가 은혜가 안 된다고 아우성칩니다. 말씀 해석의 대상이요 소비자로서 말씀 붙들기를 게을리하게 되면 모든 것을 목회자에게 맡긴 채, 지성과 감성이 퇴보하기 쉽습니다. 더욱 목회자에게 의존하며, 목회자도 그 부담에 눌려 자칫 소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목회자의 말씀이 시원치 않으면 다른 존재로 교체하려 합니다. 목회자는 그 교체를 두려워해 신자들을 자신에게 의지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다가, 마침내 교회 전체가 목회자에게 복속될 위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세습은 그 연장선에서 이루어지는 문제입니다.
목회자 없는 교회도 교회인가
평신도 교회는 목회자가 없어도 교회가 가능하다는 선언입니다. 아니, 목회자도 평신도일 뿐이라는 선포요, 평신도 바깥의 누군가가 있어 그를 중심으로 교회가 구성되는 것이 초대교회 정신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또한, 신자들이 좋은 설교를 찾아 교회를 쇼핑하는 것을 멈추고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교회를 이루라는 촉구입니다.
확신컨대, 이것은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한국교회를 약화하는 일이 아니라 체질을 강화하고자 함입니다. 교회를 떠나고자 함이 아니라 더욱더 교회의 일원이 되어 교회를 품고자 함입니다. 목회자를 부정함이 아니라 목회자의 역할과 기능을 새롭게 재설정하고자 함입니다. 많은 사람의 걱정처럼, "제 소견의 옳은 데로 가고자 하는 사사시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이 살아 있는 초대교회를 본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성경 말씀'이 있고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시는 한, 신자와 교회는 결코 그릇된 길로 가지 않을 것이며, 사사 시대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사사 시대는 말씀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성령이 소멸한 시대입니다. 자기 탐욕과 이익을 따라 자기 성을 쌓고 살던 시대입니다. 우리 자신도 그런 삶을 살지 않는지 늘 돌아봐야 하겠지만, 한국의 일반 교회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모든 기존 교회들이 이처럼 우리와 같이 목회자가 없는 교회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물론 우리와 같은 교회 형태는 앞으로 지금보다는 한결 더 역동적으로 확대되어 나갈 것입니다. 지금 곳곳에서 평신도 교회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교회 전체를 생각할 때 부분적인 현상입니다. 평신도 교회가 한국교회 전체 숫자 중 차지하는 비율은 높아야 5~10% 정도에 그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이런 교회 형태를 이루는 목적은 숫자를 늘리고 한국교회를 평신도 교회로 재편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없어도 교회가 가능하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니 목회자 중심 교회를 향해, 교회 본질이 무엇이고 신자는 누구이며 목회자는 무엇을 위해 부름을 받은 존재인지, 다시 생각하라고 촉구할 뿐입니다.
평신도 교회는 복음주의 교회와 신학의 새로운 담론입니다. 한국교회는 이 흐름과 존재에 정당한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목회자가 누구이고 신자가 누구이며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새롭고 복된 해석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개신교회가 이 흐름을 접하고 이 현상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며 이를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그 해석된 것에 기초하여 자신(기존 교회와 목회자의 위치와 의미)을 해석하는 과정으로 발전할 것을 기대합니다. 그 과정을 거친 후 그러고도 남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고 진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존재는 한국교회의 쇄신을 위한 걸음이며 또 그렇게 되고자 합니다. 지금은 목회자들이 경계심을 품고 있겠지만, 언젠가 그들이 이 현상을 온전하게 해석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우리 평신도 교회는 어쩌면 여러 차원으로 가해 올 비난의 불구덩이를 통과해야 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런 시도가 김교신 선생의 무교회주의 운동과 같이 잠시 있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불씨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개의치 않고 주께서 허락하시는 한, 이 사명을 명예롭게 붙들고 끝까지 나아갈 것입니다.
송인수 / 산아래평신도교회, (재)교육의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