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활동소식

[통합참관기5] 총회를 다녀와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4-09-29 13:52 / 조회 198 / 댓글 0

본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제99회 총회 참관기

김영진 개혁연대 관심회원/목사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실시하는 각 교단총회 참관행사의 일환으로 2014년9월22일-25일까지 소망교회에서 개최된 예장 통합측 총회에 참석하였다.

교회개혁실천연대(이하 개혁연대)에서 각 교단 총회에 참관하면서 의도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고 본다. 오늘날의 교회가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며, 치부와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교직의 불법세습과 회의 운영의 비민주적 행태와 부정행위 등의 불법이 자행되고 있음에 착안하여 이를 총회의 차원에서부터 바로잡아 보려고 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교회에는 여러 가지 치리회와 기관들이 있으나 우선 총회에 관심하는 것은 총회가 교회의 정체성 형성에 기초와 방향성 형성에 관건을 쥐고 있으며, 교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부정행위가 모델로서 드러나는 장소이며, 이의 치유의 매개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기에 선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그러나 개혁연대가 각 교단을 상대로 전개하는 교직의 세습반대운동, 도덕적 타락의 규탄, 선거부정 규탄, 양성평등을 위한 운동 등의 개별적 운동에 대해서는 몇가지의 부정적 요소로 인해 필자는 반대한다.세습반대운동은 비성서적이며, 밥그릇 싸움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각 교단의 총회는 각 교단 교회의 대외 대내적 행사의 명실상부한 최고의 행사이며, 잔치이다. 어느 한 총대의 증언처럼, “각 노회에서 총대로 선출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고 있다. 왜 이처럼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번 통합측 총회에서는 연금재단의 비리문제가 뜨거운 감자였다. 이 연금재단의 비리의 핵심에 재단이사들이 있는데 재단이사로 선출되려면 우선 총대가 되어야 한다. 즉 교단의 모든 권력과 이해관계가 총대로 선출되는 것에 달려있고, 자비가 아닌 공금으로 온갖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모두모두 총대가 되려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총회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순서는 선거이며, 총회장 선거를 필두로 거의 대부분의 순서가 인사문제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즉 오늘날의 총회는 교회의 난제 해결을 위한 모임이 아니고, 권력다툼의 정치총회의 성격을 띄고 있다. 물론 모든 일들이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정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단총회는 교단의 난제 해결이 우선되어야 하고, 정치문제는 신앙에 입각한 처리여야 한다. 즉 오늘날의 정치총회는 권력투쟁의 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총회로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총회가 되기 위해서는, 총대들만의 총회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총회가 되어야 하고 나아가서는 믿지 않는 이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총회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앞에서 제기된 개혁연대에서 목표로 하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즉 총회는 ‘정치적 논의 의 장’ 중심에서 ‘말씀의 향연’의 장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즉 ‘1부 예배’ 정도의 순서가 아니라 ‘말씀의 잔치’를 총회의 주된 행사로 꾸며서 총대들이 육신의 양식만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영의 양식을 만끽하도록 준비되어야 하고, 나아가서는 비총대 성도들도 오고 싶어 하는 잔치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교역자들도 권력에 대한 헛된 야먕도 가지지 않게 될 것이고, 장로들도 이를 본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 반대가 되니 개탄스럽다 하겠다.

통합측 총회 모두에 부총회장의 설교가 있었다. 통합측 총회의 주제는 “그리스도인, 복음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마태복음 5:3-12; 창세기 12:1-3을 텍스트로 삼고 있으며, 설교도 본 텍스트를 본문으로 잡고 설교했다.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첫째, 복음의 재발견, 둘째, 복음의 삶을 사는 것, 셋째, 복음을 확산하는 그리스도인’의 세 대지 설교를 했다. 복음의 재발견에서는 교리의 재확인이 아니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복음의 삶을 사는 것에서는 자기의 이익을 버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 이율배반의 삶이 아니고 순수한 신앙인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으며, 복음을 확산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난을 감수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로서의 모범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 메시지는 총론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 즉 믿음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설교자도 지적했듯이 “그런데 왜 복음으로 살지 못하는가?” 그것은 복음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복음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복음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복음의 제시는 없다. 단지 ‘복음을 발견했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정죄적 판단이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복음을 다시 율법주의의 율법으로 만드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자기 이익을 버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은 보상이 없는 십자가의 희생만을 강조하는 것이기에 이율배반의 삶으로 또다시 내 모는 시도이다.

복음을 확산하는 자로서의 그리스도의 고난을 감수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로서의 삶의 강조는 복음을 확산하는 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그리스도의 고난을 감수 하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 것이냐의 둘 중 하나의 택일의 애매함을 노정시킴으로써 이율배반과 자기역행(오히려 동지를 적으로 판단하는)의 오류를 일으키게 하고 있다.

이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전체적인 분위기였다. 이것은 복음을 들음에서 나타나는 감동이 아니고, 율법의 권위를 긍정하는, ‘너나 잘하세요’에 다름이 아니다. 이것은 총회를 새롭게 일신할 수 있는 메시지가 아니고, 복음이라는 율법의 복음주의를 새롭게 하여, 총회의 분위기는 전혀 새로워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총회의 새로워짐은 복음에 감격하는 자발성을 일으키는 재발견이 없이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