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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기] 예수님처럼 '어른'으로 살아가기(최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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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3-10-02 17:00 / 조회 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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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어른'으로 살아가기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느덧 26살, 어른이 되었다. 지금 나는 진짜 어른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름이 늘고, 화장 기술이 늘고, 술이 좀 늘면 그게 어른일까?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2013년을 사는 26살 최한솔이 생각하는 어른이란, 당연했다고 생각했던 논리들이 부서지는 그 순간을 피하지 않는 것,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렇게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줄 아는, 그것이다.

내 전공은 신학이다. 신학과에 간 것은 부모님이 목회를 하셔서도 아니고, 내가 간 신학교의 교단이 다니던 교회의 교단이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하나님을 알고 싶어서였다. 물론 다른 학교에 떨어져서도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그 시절 내가 생각한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곳, 마냥 좋은 곳, 가고 싶은 곳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주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교회를 다녔다. 체육 선생님 대신 전도사님을, 목사님을 좋아했고, 존경했다. 특정한 누군가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저 교회에 계신 그분들이 참 좋았다.

대학에 들어갔다. 동기들은 바로 사역을 시작했다. 학생부 때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녔던 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사역자라는 직함이 그들에게도, 그들을 지켜보는 내게도 그리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만큼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건 당연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사역하는 대부분의 동기들은 시간제(파트타임) 사역자로 일하면서도 전임 사역자처럼 교회 일에 시간을 내야 했다. 시간제로 일하며 받는 사례비로는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 다른 알바를 하고자 했지만, 도저히 짬을 낼 수 없다고 했다. 공부할 시간은 물론이요, 설교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다. 이 모든 일은 헌신과 봉사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포장되었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던 목사님들께는 치명적이게도 자비가 없었다.

그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교회는 과연 정의로운 곳인가? 목사님은 항상 옳은 분인가? 목사님은 어떤 분인가?

그리고 알려야 했다. 자신조차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 열심이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총회' 또한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었다.

교회개혁실천연대를 통해 총회 참관 제의를 받고, 첫날 저녁 예장통합 총회를 참관했다. 퇴근 후 참석한지라 신임 임원 선거와 의결은 보지 못했다. 도착해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차를 마시러 총회 장소인 명성교회 지하로 내려갔다. 그 곳에서는 어느 연회장 못지않은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으리으리한 명성교회의 규모에 한 번 놀라고, 곱게 흰옷을 차려 입으시고 안내하고, 배식하는 집사님 혹은 권사님 모습에 두 번 놀라고, 90도로 인사하고 다니는 전도사님들, 젊은 목사님들 모습에 세 번 놀랐다.

저녁 첫 순서였던 신·구 임원 교체식을 보는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강단에 선 목사님의 과한 수식어 사용이다. 총회장 목사님을 이야기할 때마다 칭송하고 찬양하는 수식어들이 붙여졌다. 손발이 오그라든 것은 나뿐이었을까.

둘째는 보조 맞추는 것에 지나지 않는 여성의 역할이다. 예장통합 교단은 여성 목사 안수를 찬성한 교단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총대의 모습은 신임 임원 단 한 명뿐이었다. 앉아 계시던 1500여 명 되는 총대 중에는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 여성 총대는 없었지만, 여전도회는 있었다. 안내하고, 정리하며, 꽃다발을 증정하고, 반주하고, 연주하고, 축하 공연까지 도맡아 하셨다. 여성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인식보다도 뒤쳐져 있는 한국교회가 개탄스러웠다.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교회가 거쳐 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목사님들에게는 여성 총대가 없는 지금이 당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 80년대를 거쳐 교회를 개척하고 부흥시켜 지금까지 달려온 분들이다. 지나온 한국교회의 역사까지 구겨 버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자 옳고 그름보다는 지나온 역사와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어졌다.

이러한 나의 불편한 마음과는 무관하게 회의는 진행되었다.

신임 총회장 목사님이 강단에 서시고, 다수의 각 노회 총대 목사님들은 앉아서 듣고, 발언코자 할 때는 각 구역의 스탠드 마이크에 서서 발언하셨다.

회의는 생각보다 순항했다. 꼬투리를 잡아 보고자 열심히 지켜보았지만, 전체적으로 발언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하였으며, 대체로 총대 목사님들도 제한 시간을 잘 지키며 발언하셨다.

좀 더 자세히 보려 허리를 곧추세우던 순간, 9시 30분임을 알리는 어느 총대 목사님의 외침과 함께 저녁 회의가 끝났다. 항상 설교 시간은 넘기시면서 회의는 칼같이 마치는 목사님들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인간미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총회로 가는 첫 마음은 '어디 보자!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 였다. 총회를 보면서는 답답했다. 총회를 다 보고나니 한숨이 난다. 답답하게 꽉 막혀 보이는 이 현장이 목사님들에게는, 한국교회에서는 참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은 '어른'이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당연하다 못해 금기시 여기던 것들을 깨시고, 생각지 못한 것들을 생각게 하시고, 생명을 걸고 치열하게 고민케 하셨다. 그 길을 걷는 것, 그것이 곧 신앙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바른 총회란 무엇일까? 약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작 약자를 제외시켜 놓는 한국교회,

하나님을 운운하며 정작 사람을 보지 않고 자기 유익을 챙기는 한국교회. 적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숨이 막힌다.

그 숨 막히는 현장과 함께, 신학교를 다니며 총회를 접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무관심했던 내 현실이 겹쳐 보였다. 각 교회에 정해진 규정들이 어떤 절차로 규정되는지는 생각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한국교회를 비판했다. 여성 안수에 찬성하고선 여성 총대가 거의 없는 오늘의 총회가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또 한 번 숨이 막힌다.

어느덧 바람이 차가워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은 한껏 푸르고, 높아졌다. 언제나 그렇듯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예장통합 교단은 총회 둘째 날, 세습방지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렇다! 여름은 지나간다. 하지만 다시 온다. 역사는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다. 역사는 흐르고 있으며, 우리는 그 역사 위에 서 있다. 숨 막히는 이 현실을 언제까지고 지나간 시간의 잘못으로만 밀어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버젓이 총회가 열리고 있는 현장에서 단지 총회가 뭔지 몰랐을 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감히 바란다. 바라고 또 바란다.

'어른'스러운 총회를, '어른'다운 교회를.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최한솔 / 평화와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 간사·가향공동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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