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여성의 눈으로 본 교단 총회(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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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3-10-11 14:35 / 조회 171 / 댓글 0본문
여성의 눈으로 본 교단 총회
2013년 통합 총회 참관을 마치고
"혹시 권사님이세요?"
"네."
"이 많은 분들이 어떻게 다 나오실 수 있는 거죠? 다들 휴가 쓰신 건가요?"
"대부분 그렇죠."
2013년 98회 총회 장소인 명성교회 식당에서 봉사하시는 분과 잠시 나눈 나의 대화이다. 총대 1500명이 참석하는 자리에, 봉사위원이 500명이라고 자랑 삼아 이야기를 하던 그 곳은 식당 연회장 같은 규모의 식당에 네 군데로 나뉘어져 음식이 있는데 초콜릿만 해도 서너 종류, 떠먹는 요구르트도 서너 종류였다. 어느 장로님이 총회 기간 동안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는 다양한 원두를 선택할 수 있는 커피 기계 옆에도 손쉬운 조작을 위해 봉사위원이 있다.
총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흰 상의에 검정 치마를 맞추어 입은 이분들 앞에서 괜스레 나는 기가 죽는다. 자율 배식도 아니고, 과자 하나 떡 하나마다 한 사람씩 서서 손수 접시에 담아 주신다. 식당 둘레는 봉사하시는 분들이 주르륵 서서 이렇게 다과를 담아 주시거나, 그릇을 치우기 위해 기다리고 '서서' 계신다. 다양한 봉사 부서 중에서 식당 봉사부가 가장 먼저 마감이 되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또 한 번 기가 죽는다. 일부를 제외하면 죄다 검정 양복을 입은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이 모여 있는 이 집단에 기꺼이 봉사하기를 자처하신 이분들 앞에서 괜스레 나는 기가 죽었다. 그리고 그 봉사가 너무나 기껍고 즐거워 휴가를 자처할 정도인 현실 앞에서 그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것처럼 불편해지기만 했다. 이제는 교회 안에서 고착화되어 버린 여성의 자리 앞에서 그리고 그 현실을 눈으로 확인한 총회 현장에서 괜스레 나는 기가 죽어 지냈다.
나는 총회 첫째 날과 둘째 날에 총회 장소를 찾았다. 다른 일정이 있어 저녁 시간까지는 참관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 참관하는 총회는 신선했다. 일단은 참관하는 사람들에 대해 전혀 제지가 없었다. 참관단의 명찰을 착용하지 않았을 때도, 식당 외에는 명찰을 요구하는 곳은 없었다. 전체적으로 총회를 누군가가 참관할 수 있다는 의식에 대해서는 열려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내가 지켜봤던 총회의 모습의 이러했다. 전체적인 회의 진행은 차분하게 잘 진행되었다. 차분하고, 또 질서가 잘 지켜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헌의안들을 이 짧은 시간 안에 다 처리하는 것이 목표인 듯 달리고 달리는 모습이랄까? 성급한 회의 진행은 발언권에 대해 잦은 불만을 토로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제기되는 회의 진행에 대한 요청은 참고하겠다는 영혼 없는 답변으로 늘 끝맺어졌다. 다른 의견 없으면 그대로 진행한다고 했을 때에는 고의인지는 알 수 없지만, 2층에서 들을 때에도 '아니요!' 소리가 있어도 큰 소란이나, 소리가 나지 않으면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 여성의 눈으로 본 총회를 이야기해 보자. 여성에게 열려 있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가려 닫혀 있는 교회 문화 속에서 이번 총회는 총대에 있어서도 여성 총대 의무제가, 또한 여성위원회의 신설이 헌의된 것은 매우 인상적인 일이었다. 또한 부총회장 선거의 공약 발표 때에도 공병의, 정영택 목사 부총회장 모두 여성에 대해 발언했던 것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정영택 후보는 자신을 여성에게 빚진 자로 표현하기도 하며 여성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를 호소하기도 했다.
앞서 소개한 여성 봉사위원의 자랑스러운 태도는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여성을 어떤 자리에 놓아두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것이다. 봉사라는 옷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든 지금까지의 시간과 교육을 생각해 보면 안타까움이 절로 일어난다. 예장통합을 대표하여 그 자리에 선 장로, 목사 총대 중에 14명만 여성인 그 현실, 새까만 남성들이 가득한 회의장을 내려다볼 때 내가 느낀 안타까움은 그저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절망으로 느껴졌다. 목사 부총회장 후보들이 말하듯 여성에게 빚진 자로,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으로 자신이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을 목회자들이 삶으로 고백한다면 어찌 1500명의 여성 목사와, 871명의 여성 장로 중에 단지 14명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1500명 중에 단 1퍼센트의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 마저 허락하지 못할 수 있을까?
내년은 여성 안수 20년이 되는 해이다. 여성 안수가 제도적으로 통과했지만, 여성 목회자들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회를 주고 함께해 주지 않는다면 여성 안수 제도는 있으나마나한 제도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위원회가 신설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고, 여성 총대 의무제의 물거품은 안타까움이 큰일이다. 여성 총대 의무제를 시행해도 여성 총대 숫자는 74명으로 전체 총대의 5%도 되지 않는데, 그마저도 내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2/3가 여성인 교회의 총회에 생물학적으로라도 여성의 목소리를 낼 사람이 1%도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유독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분들에게만 상식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어머니의 사랑, 여성에게 빚진 자라는 허공의 외침들이 가득한 총회가 아니라 여성을 진정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여성과 함께 지도력을 나누고 발맞추어 갈 시대를 꿈꾼다면 과거 남성들의 전유물로 고착되어 버린 곳들을 나누려는 엉덩이를 떼는 행동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총회 기간 내내 흰 상의에 검정치마를 입고 혹은 녹색 상의를 맞춰 입고 종종 걸음으로 머리를 그물에 말아 넣고 바쁘게 움직이시던 분들과, 대접 받아 마땅하다는 걸음걸이로 총대의 자격을 얻고 총회에 참석하는 것이 엄청난 권력과 존경받을 자리에 올라온 것인 양 한창 거드름을 피우며 이것저것을 요구하던 어느 총대의 뒷모습과, 자신의 교회에서 총회가 개최된다는 이유만으로 참석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치워라 말아라, 해라 말아라, 화를 냈다가 말았다 하는 예의를 찾아볼 수 없는 총회 주최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과, 동성애를 조장하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자는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었던 동성애에 대한 실체를 고발한다는 만화 무더기와 서명지 앞에서 나는 차마 내년을 기약할 수가 없었다.
이 시대의 어두움을 밝히는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 삶에 비춰져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야만 함을 그 속에서 토해 내듯이 기도하며 가슴에 새기며, 이 자리에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성령의 일하심이 필요함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부디 내년 총회에는 여성의 자리가 보이지 않는 유리창을 열고 허리를 펴고 함께 바르게 설 수 있는 자리가 되고, 여성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지금까지 학습되어 왔던 틀을 조금씩 부수어 내어 여성은 봉사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예수를 만난 참자유가 여성의 삶의 현장, 총회 현장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를 꿈꿔 본다.
최성은 / 영등포산업선교회 노동선교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