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아직 교회를 사랑하고 있습니다(한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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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3-10-11 14:37 / 조회 171 / 댓글 0본문
아직 교회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2013년 예장통합 참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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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방지법은 통과될까? 저는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노원나눔의집 소재 위탁형 대안학교에서 학업 중단 위기의 중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교육 전도사로도 있었지만 교회 밖의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지금 제겐 더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교단 총회 참관인 모집 글을 본 후, 어쩌면 세습 방지법이 통과되는 역사적 순간에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겠다는 기대로 별다른 고민 없이 참관 신청을 한 걸 보면 여전히 교회에 대한 질긴 미련(?) 혹은 작은 기대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참관했던 날은 화요일이었고 세습 방지법 관련 안건은 수요일에 예정되어 있었기에 초기의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경험이었습니다.
화요일에는 연금재단의 비리와 공천 의혹에 대해 긴 시간 논의와 발언이 이어졌는데, 씁쓸하기도 했지만 더 솔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컸습니다. 총대들의 여전히 하늘을 향한 눈과, 딛고 선 땅에 대한 혼란을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총회 참관을 신학생 필수 과정으로 제안합니다 참관하러 명성교회를 찾아가는 길에 한 선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총회 참관을 하러 간다는 말에 그 선배는 깜짝 놀라며 "네가 어떻게 거길 가니?"라고 되물었습니다. 이 선배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도 받았고, 지금은 5년째 부목사로 재직하고 있는데 학부만 졸업한 제가 어떻게 그곳을 갈 수 있는지 너무나도 의아해했습니다. 그 선배는 홈페이지 생중계를 통해 총회를 지켜볼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어렵지 않게 참관을 신청한 저로서는 선배가 더 신기했지만 많은 이들이 관심은 있지만 방법을 모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학교에는 목회자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인 신학대학원(M.div)이 운영됩니다. 특별히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에는 전국에 7개의 신학대학원이 있고, 가장 규모가 큰 장로회신학대학교에는 거의 1000명 가까운 학생들이 목회자가 되기 위해 학문과 경건에 힘쓰고 있습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헬라어, 목회실습 등의 필수 과목 이수는 물론 한 학기에 해당하는 시간을 경건 학기라 이름하며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면서 강제된 예배와 봉사 시간을 통해 경건의 삶을 훈련하기도 합니다. 신학교에서 학문하는 시간은, 아무래도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신학교이기 때문에 그 교단의 교리와 문화를 자연스레 습득하는 기간이기도 하고, 비판적 문제 제기로 인해 낙인이 되기도 하는 정말 말 그대로 교단 목회자 양성 과정입니다.
총회 참관 후기를 쓰면서 신학생들에게 이 참관이 다양한 연유로 매우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회를 지켜보고 한 공간 안에 지내 보니 해당 교단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온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교단에 소속된 신학생들은 자신이 알든 알지 못하든 그 교단의 옷을 입고 강단에 서고 목회 생활을 이어갑니다. 신학교 안에서 충만한 성령의 기쁨에 모든 것이 은혜요 모든 것이 감사의 고백인 그 시간 동안 정작 직면해야 할 현실과 교단의 대표 격인 총대들의 발언을 듣고 자기의 성찰로 가져올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목회라는 이상만 갖기도, 그렇다고 너무 현실적이기도 애매한 '목회자'라는 그 자리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담겨 있는 그릇인 교단에 대해 한 번쯤은 비판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총회 참관은 경건과 학문에 정진하며 성서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의 목회 준비생들이 지금의 배움과 현장에 대해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랑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은 저소득 가정, 그중에서도 정말 바닥의 삶을 사는 가정에서 자라온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모든 것을 이해하고 상대의 허물을 덮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제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잘 알고 그에 대해 상대에게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그 한 존재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지인들이 어떻게 거길 갔냐고 많이 물었습니다. 맨날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나 하고 교회도 잘 나가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인정은 잘 안되지만. 아직 사랑하고 있나 봅니다. 내가 나고 자라고 삶의 이유를 알게 해 준 한국교회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꾸 한국교회에 대한 쓴소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쓴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라는 미명으로 모든 불의에 눈감고 뒷짐 지기보단 비판적 의식으로 문제를 들여다볼 줄 아는 목회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의 총회 참관으로 주체적 사고가 가능하진 않겠지만 신학생들에게 현실을 인식하고 그 현실 안에서 목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초석이 놓였으면 좋겠습니다.
총회는 끝났지만 앞으로 할 일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앞장서 주니 든든하고 고맙습니다. 한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진행하는 분들이 있어 작은 용기라도, 작은 목소리라도 낼 수 있으니까요. 세습 방지법이 총회 바깥의 몸싸움과 어렵지 않게 들려오는 소문에 비해 너무나 쉽게 통과되었으니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지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했으니 말입니다.
내년 총회 참관에는 현재 목회 현장에 있는 선후배 동기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이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혁명은 일상부터, 개혁은 주변에서부터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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