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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기] 얼마나 더 아파야하는 걸까, 여전했던 '소통의 부재'(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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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3-11-19 13:11 / 조회 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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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아파야하는 걸까, 여전했던 '소통의 부재']

- 자기반성과 성찰이 결여된 오늘의 감리교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 입법의회를 다녀와서

스스로 노력하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여전히 어려운 것이 있다. 하나는 권위주의적인 사람과 대화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말이 앞서고 또 그러다보니 말이 많아지는, 가벼운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다. 굳이 따지고 본다면, 이 둘의 경우 모두 참다운 '대화'일 수 있게냐마는, 어찌되었든 그런 이들과 마주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내게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고, 견디기 버거운 것이었다.

'입법의회'를 통해 참다운 '대화'의 '장'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했던 것은, 어쩌면 희망을 살아내고 싶었던, 현실과의 동떨어진, 그리하여 상처로 일그러진 간격을 소홀히 여긴 내 탓이 크겠다. 혹시나 했고, 그래서 여전히 아프지만, 그 아득한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그 비슷한 꿈을 꾸는 '교회개혁실천연대'로부터 교단총회 참관단을 제의받았을 때,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아니, 총회면 총회지, 입법의회는 또 웬 말인가. 총회도 지루할 텐데, 더 지루한 입법의회를 말이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내게 여전히 어려운 것인 두 경우를 한 데 고이 모셔둔 '장'이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역시 몸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까닭에, 그 부담감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을 헤아렸는지, 괜한 여유로 늦장을 부렸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입법의회의 장소로 가는 내 발걸음은 내내 가볍지 않았다.

1.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그렇게 조금은 늦게 감리교단의 입법의회가 열렸던 정동제일교회에 도착했더니, '혹시나' 했던 생각은, '역시나' 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점잖게 꾸려진 회의의 겉모양과 총대들의 겉치레 뒤에는 계속해서 정리되지 않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이 때문에 오전에 예배로 열었던 입법의회는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또 구체적인 안건을 하나도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왜들 그러시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은, 비단 어린왕자 뿐만이 아니다. 그럴 듯하게 차려진 보여지는 모습 뒤에는, 그간의 감리교 사태를 겪으며 난무했던 온갖 불만과 불신이 가득했다. 때문에, 과연 지금 열리고 있는 입법의회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 입법의회 이전에 추려지고 정리되었어야 할 문제들(다시 반복된 감독회장 무효와 같은)이 갈피를 잃음에 따라 입법의회 자체의 효력, 그리고 의장의 자격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그 어수선하고 정리되지 않은 분위기는, 의장의 아주 미숙한 회의 진행 능력으로 가중되었다. 이와 같은 뿌리 깊은 불신과 불만이 가득한 상태에서, 모두에게 공정하게 돌아가야 할 발언기회와 그에 알맞은 발언시간은 그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 또, 정해져있지 않는 발언 횟수의 제안에 따라(혹은 정해져있다 해도, 지켜지지 않음에 따라), 때와 의견의 차이로 인해 오히려 정당한 발언은 분위기에 묻히기도 하는 씁쓸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2. 권위주의적인 언설의 해체, 그 아득한 꿈

바리새인들은 권위를 진리 삼았지만, 예수는 진리를 권위 삼았다던 어느 목사님의 뜻이 담긴 말마따나 그 풍경은 새삼스레 우리의 이상과 멀어진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물론, 구체적인 안건을 들어가기 이전에, 이미 벌써 입법의회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였던 까닭에 어쩔 수 없었겠지 않았나 싶으면서도, 발언권을 얻지 못해 약간의 고성이 오간 상황은 너도 나도 권위주의적인 언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 중에도, 차분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진행발언을 이어가는 이들도 눈에 띄었으나, 의장과 장정개정위원장이 보여주는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첫째 날임에도 불구하고, 또 구체적인 안건은 하나도 다뤄지지 못한 채, 시작도 제대로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뜨는 총대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그리고 다른 교단들보다야 낫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찾아보기 어려운 여성 총대의 수, 그리고 발언은 권위주의적인 남성이 주도하는 남성문화적 배경 아래, 자연스레 보이지 않았다.

3. 소통의 부재, 너와 나, 세대와 세대를 잇는 소통의 장, 그 아득한 꿈

얼마 전, 부산에서 열렸던 WCC 총회를 참석했던 여운 탓이었던지, 물론 총회가 아니라 입법의회라는 점을 주지하면서도, 발언권을 제한하자던 의회를 이끌어나가는 몇몇 목사들의 소통하고자 하는 모습에 비추어, '소통'에 있어서 아쉬운 것들이 많았다. 총대들의 구성 자체도 그랬거니와, 평신도의 관심, 그리고 청년과 여성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입법의회는, 무엇을 위한 것이며, 누구를 위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모두를 위한, 모두의 감리교회를 위한 입법의회라는 전제를 새삼스레 강조하지 않더라도, 굳이 총대가 아니더라도, 청년과 여성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참여를 독려하며, 모두에게 발언기회가 오가는 '소통의 장'으로 기대한다는 것은 아득한 꿈에 불과할까.

총회와 입법의회를 비교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타당할 수는 없겠으나, 그럼에도 그 분위기와 최소한의 노력에 있어서 배워야 할 점은 배워야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청년과 여성의 관심은 감리교의 미래와 건강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며 필요한 것인 까닭이다.

그리고 입법의회 자체는, 미래를 열기 위한, 그리고 미래를 열어주는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는 장이 아니던가. 목사와 장로들이 주축이 된 어르신들이 가득한 입법의회보다는, 젊은 목회자들과 평신도를 이루는 청년과 여성들이 가득 참여하는 입법의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득하다.

4. 아쉽고, 또 아쉽다

예장통합의 금번 총회에서 감리교에서 안타를 쳤으니, 통합은 홈런을 치자는 우스갯 소리를 붙여서 세습방지법이 통과되었다고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는, 안타까지로 인정해주는 타교단의 관대함이 새삼 놀라웠지만, 분명 그것은 안타가 아니라, 허울 가득한 헛방망이질에 아주 살짝 맞은 파울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임*** 교회의 세습은, '세습방지법'이라는 법의 문구조차도 무색하고 초라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세간의 이슈를 끌었던 세습방지법도 그러하거늘, 입법의회를 하면 무얼 하나. 입법의회의 정당성을 따져묻는 일도 물론 유의미하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정해놓고 또 개정하는 법들조차 지키지를 않지 않나. 나아가, 법의 문구는 언제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해야 한다. 때문에, 그래서 더욱 본래 취지의 뜻을 새겨 공감을 얻어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함께 뜻을 새기며 공감을 얻어나가는 과정을 어디로 갔을까.

선거법 관련한 개정과 교회 재정장부를 제한하는 법 개정과 관련한 이야기를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또, 그것들에 묻혀서 많은 평신도단체와 관련한 개정사항들이 정작 그 법과 관련된 평신도들은 제외한 채 목사와 장로들이 이리재고 저리재는 판단에 떠들고 싶지 않다. 다만, 여전히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결여된 모습으로 소란스러웠던 입법의회의 모습은, 다름 아닌 감리교의 현주소를 그대로, 또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5. 얼마나 더 아파야하는 걸까

얼마나 더 아파야하는 걸까. 얼마나 더 상처들을 남기고, 얼마나 더 나와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또 받아야하는 걸까.

많은 경우, 사람들은 대화하면서도 자기가 듣고 싶은 얘기'만'을 듣는다고 한다. 이는 일종의 선택적 들음이며, 그래서 오해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때문에, '진정한 대화'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뜻'을 듣는 것이고, 의미는 흔히 말에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다던 떼제의 어느 수사님의 말이 떠오른다.

'당장의 급급한 힐링에 목매지 않고, 상처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던, 한국 사회를 향한 지젝의 말은, 여전히 버겁지만, 그래서 또 '희망'이다. 여전히 아픈, 아니 더 아파야하는 우리네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부담스런' 기회를 준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야속하지만,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꾸며 희망을 살아내는 '벗'이 되어주어 다시 한 번, 감사하다.

- 김성수/ 교단총회공동대책위원회 참관단,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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