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총회 참관기] 금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총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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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9-10-13 16:10 / 조회 2,237 / 댓글 0본문
제 94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참관기
박병철 부장(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대학부/교단총회공동대책위원회)
통합 교단은 한국을 대표할만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규모면에서는 부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1500여 명의 총대가 모이는 총회라는데 기대도 많이 되었다. 규모를 자랑하는 교단인 만큼 목회자들의 가슴에는 300만 성도 운동의 뱃지가 달려있었다. 이미 총회를 참관하기엔 참관자로서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그러니 더욱 후기가 냉소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총회는 전체적으로 의장의 진행을 속행하려는 의지와 총대들의 끊이지 않는 확고한 자신의 주장을 필역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많은 의견들은 동의를 얻어 진행 되었다. 가부의 물음에 있어서 부에 대한 답변은 요청과 동시에 확인 발언이 이어졌다. 충분히 답변에 대해 듣는 여유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많은 숫자의 총대들이 모인 회의이기 때문에 회의의 빠른 진행을 위해 반론은 가급적 피하려는 의장의 태도로 비춰졌다. 역시 민주주의적 회의 진행의 심각한 맹점인 다수결 논리가 잘 반영된 회의라 평가된다. 언제다 다수의 목소리 큰 총대들의 합의는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형태로 진행 되었다. 의장의 몇 가지 발언은 소수의 의견은 무시해도 괜찮다는 태도로 비춰졌다. ‘반대의견은 두 명 밖에 없네요.’ 라고 하거나, ‘반대는 한명도 없습니다.’ 하는 발언들이 그러하였다. 다수의 압박 속에서 소수의견은 다수의 압력을 견뎌내지 못하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많은 숫자가 모여 회의를 진행하려니 진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처리였을 것이라 이해는 되면서도, 큰 규모가 움직이는 것이 소수의 의견을 안고 가기에는 속도가 너무 느려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 점에서 ‘한 영혼을 귀히 여기라.’는 목사들의 설교와 ‘300만 성도 운동’으로 더욱 큰 규모를 추구하려는 이중적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역시 나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
첨예한 안건은 역시 돈과 관련한 사안들이었다. 임기에 관련한 문제, 연금에 관련한 문제, 총회의 주식과 펀드, 부동산에 관한 문제 등. 청소년 부서에 관한 안건에서도 있어서도 소외될 수 있는 소수에 대한 배려보다는 기존의 운영 체제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제안이 기각되었다. 자신의 의견을 확고히 하기 위해성서의 구절들을 인용하는 모습을 보며 작위적 해석으로 비춰지는 모습도 있었다. 사실 이런 점에서는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많지만 신학적 관점의 차이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단 사이비 문제에 대한 위원회나 신학적 관점이 다른 목회자를 이단으로 판단하는 지점에서 기독교의 배타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소망교회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총회에 대한 기대보다 소망교회에 대한 기대가 더 컸던 것 같다. 재벌 교회의 규모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강한 인상은 그 큰 교회에 교회 버스가 보이질 않았다는 점이다. 총회를 위해서 어딘가에 숨겨둔 것일까? 강대상과 파이프오르간이 주는 첫 인상이 무척 강하게 다가왔다. 총회 참관은 이미 그러한 자본의 막강한 힘으로 포장되어 나에게 비춰졌다. 비단 소망교회만 물적 풍요를 자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인상을 지우는 일은 참관을 마치는 순간까지 지워지지 않았다. 많은 안건들의 첨예 관심사가 재정적인 부분이었다. 이를 볼 때, 체제와 물적 규모를 확보하고자 하는 움직임과 부의 획득이 동반 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박병철 부장(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대학부/교단총회공동대책위원회)
통합 교단은 한국을 대표할만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규모면에서는 부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1500여 명의 총대가 모이는 총회라는데 기대도 많이 되었다. 규모를 자랑하는 교단인 만큼 목회자들의 가슴에는 300만 성도 운동의 뱃지가 달려있었다. 이미 총회를 참관하기엔 참관자로서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그러니 더욱 후기가 냉소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총회는 전체적으로 의장의 진행을 속행하려는 의지와 총대들의 끊이지 않는 확고한 자신의 주장을 필역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많은 의견들은 동의를 얻어 진행 되었다. 가부의 물음에 있어서 부에 대한 답변은 요청과 동시에 확인 발언이 이어졌다. 충분히 답변에 대해 듣는 여유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많은 숫자의 총대들이 모인 회의이기 때문에 회의의 빠른 진행을 위해 반론은 가급적 피하려는 의장의 태도로 비춰졌다. 역시 민주주의적 회의 진행의 심각한 맹점인 다수결 논리가 잘 반영된 회의라 평가된다. 언제다 다수의 목소리 큰 총대들의 합의는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형태로 진행 되었다. 의장의 몇 가지 발언은 소수의 의견은 무시해도 괜찮다는 태도로 비춰졌다. ‘반대의견은 두 명 밖에 없네요.’ 라고 하거나, ‘반대는 한명도 없습니다.’ 하는 발언들이 그러하였다. 다수의 압박 속에서 소수의견은 다수의 압력을 견뎌내지 못하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많은 숫자가 모여 회의를 진행하려니 진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처리였을 것이라 이해는 되면서도, 큰 규모가 움직이는 것이 소수의 의견을 안고 가기에는 속도가 너무 느려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 점에서 ‘한 영혼을 귀히 여기라.’는 목사들의 설교와 ‘300만 성도 운동’으로 더욱 큰 규모를 추구하려는 이중적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역시 나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
첨예한 안건은 역시 돈과 관련한 사안들이었다. 임기에 관련한 문제, 연금에 관련한 문제, 총회의 주식과 펀드, 부동산에 관한 문제 등. 청소년 부서에 관한 안건에서도 있어서도 소외될 수 있는 소수에 대한 배려보다는 기존의 운영 체제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제안이 기각되었다. 자신의 의견을 확고히 하기 위해성서의 구절들을 인용하는 모습을 보며 작위적 해석으로 비춰지는 모습도 있었다. 사실 이런 점에서는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많지만 신학적 관점의 차이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단 사이비 문제에 대한 위원회나 신학적 관점이 다른 목회자를 이단으로 판단하는 지점에서 기독교의 배타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소망교회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총회에 대한 기대보다 소망교회에 대한 기대가 더 컸던 것 같다. 재벌 교회의 규모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강한 인상은 그 큰 교회에 교회 버스가 보이질 않았다는 점이다. 총회를 위해서 어딘가에 숨겨둔 것일까? 강대상과 파이프오르간이 주는 첫 인상이 무척 강하게 다가왔다. 총회 참관은 이미 그러한 자본의 막강한 힘으로 포장되어 나에게 비춰졌다. 비단 소망교회만 물적 풍요를 자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인상을 지우는 일은 참관을 마치는 순간까지 지워지지 않았다. 많은 안건들의 첨예 관심사가 재정적인 부분이었다. 이를 볼 때, 체제와 물적 규모를 확보하고자 하는 움직임과 부의 획득이 동반 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