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연대에서 메일이 왔다. 개혁연대와 인연이 되어 후원을 시작한
나는 1년에 한 번 하는 총회에 참석하거나, 가끔씩 오는 활동 보고서를 보는 것이 관심의 전부였다. 기도회, 강좌 등으로
초청하는 메일을 자주 왔지만, 정작 시간을 내기 어려워 내용만 확인하고 메일을 지워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도 무수히
받는 수많은 메일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고전읽기(기독교강요) 강좌도 그렇게 내용만 확인하고 정작 지우기가 뭐해 그냥 놔
둔 채로 지나쳤다. 그러다 다시 한 번 내용을 볼 기회가 있었다.
"고전읽기 강좌(칼빈의 기독교강요 초판), 오세택 목사, 매 주
화요일, 총 8주, 수강료 없음."
무척 당겼다. 무엇보다 공짜가 아닌가?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거
마감되는 거 아니야? 얼른 개혁연대에 전화했다. 다행히도 접수가 되었다. 교재가 웬만한 서점에 없어 인터넷서점에서 사야
하는데, 아무래도 강좌 시작하는 날까지 책이 오지 않을 것 같아 걱정했다. 다행히도 목요일 저녁 신청한 책이 금요일 오전에
왔다.
회사에서 혜화동 개혁연대 사무실까지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것도
문제였다. 눈치를 보며 회사를 조금 일찍 나와도 제 시간에 겨우 맞춰 도착하거나, 조금 늦을 수밖에 없었다. 저녁식사를
걸러야 할 판이다. 그런데 개혁연대에서 김밥을 미리 주문해 주신단다. 김밥은 1인당 천원, 그런데 함께 수강하게 된 한
집사님께서 앞으로 먹을 도시락 값을 모두 지불해 주셨다. 먹을 것도 공짜였다. 강의도 공짜, 도시락도 공짜!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강좌에 참석한 분들은 다양했다. 내가 다니는 언덕교회 식구 5명을
비롯하여 대학생, 유치원 교사, 가정주부, 그리고 교회에서 출교당한 집사님도 계셨다. 내가 한 번도 안 빠지고 강좌를
끝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지하철 4호선을 운행하시는 김남진 집사님이 꾸준히 참석하셨고, 나와 방향이 같아 함께 전철을
타고 집에 가며, 말벗이 되어 주셔서 심심하지 않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오세택 목사님은 어떤 식으로 강좌를 진행하실지 궁금했다. 일방적으로
내용을 요약해 주실까, 아니면 각자 책을 읽어 오게 하고 돌아가며 요약 발췌하도록 하실까. 후자라면, 좀 피곤할 텐데….
아니나 다를까, 강의 첫날 그렇게 하신단다. 부담감이 밀려 왔다.
더구나 기독교강요 초판은 문체가 오늘날과 많이 다를 뿐 아니라,
번역도 거칠어 쉽게 읽히지 않았다. 강의실에 빙 둘러 앉아 기독교강요의 개요와 칼빈이 글을 쓴 배경에 대해 읽은 소감을
나누었다. 당시 칼빈은 이교도 취급을 받으며 박해받고 추방당한 상태였다. 그는 국왕에게 그가 믿는 신앙에 대해 절박한
심정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변론해야 했다.
강좌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이런 칼빈의 절박한 상황에 공감했다.
당시 칼빈과 개신교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박해를 감수해야 했고,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그런데 오세택 목사님의 질문은
뜻밖이었다.
"그러면 지금 우리의 상황은
그때보다 좀 나은가요? 목숨을 걸 사안은 없나요?"
"그래도 지금은 신앙을 지킨다고 해서 박해받을 일 없고, 목숨이
위협받는 일이 없지 않은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라고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목사님은 지금 우리의 현실은 칼빈
당시보다 더 낫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우리가 믿음을 지키려면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고, 목숨 걸고 살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부끄러웠다. 겨우 믿음을 지키며, 가끔씩 타협하고 현실에 순응하는 나를 발견했다. 강좌가 진행될수록 온전치 못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또한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배우는 희열을 느꼈다. 성경 전체와 사도신경, 주기도문이 새롭게
다가왔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나의 기도의 표본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에 대해 생각해 본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세상
교회들은 이렇게 가르친다. 예수 믿으면 상위 2% 안에 들 수 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 자신이 종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바뀌는 것이며, 하위 2%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사람들은 꼭대기를 지향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낮아짐'과
'종됨'을 지향한다."
이용관 / 교회개혁실천연대
회원·언덕교회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