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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회포럼 교회개혁분과별 토론,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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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8-06-10 12:25 / 조회 2,4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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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부터 3일까지, 용인청소년수련원에서 진행된 2008 기독교사회포럼에 다녀왔습니다. 기독운동가들의 재교육과 화합을 목적으로 마련된 기독교사회포럼의 올해 주제는 ‘실용주의에 맞서는 기독교, 멈춰 바라보다’였습니다.

첫날에는 최형익(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가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노선 평가와 촛불의 의미‘에 대해 발제하고, 박득훈(언덕교회 목사), 나핵집(기장 평화공동체운동본부 목사), 손은정(성문밖교회 목사)가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주제발제 후 △ 이명박 정부 후 남북관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FTA문제, △대운하문제, △이랜드를 중심으로하는 비정규직문제, △교회개혁 등을 중심으로, 각 주제별 분과 토론이 이뤄어졌습니다.

개혁연대가 담당했던, 교회개혁분과에서 논의되었던 토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발제 내용>>

한국교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실용주의에 대해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남오성 교수님이 발제하고, 각각 소위 복음주의진영과 진보진영의 운동에 대한 대안적 반성에 대해 뉴스앤조이 주재일 기자님,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도임방주 간사님이 각각 발제했습니다.

남오성 교수는 이명박이 말하는 실용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을 추구하는 방법론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실용주의의 특징이 무엇인지, 또 이런 특징이 가진 위험성을 '탈이념, 경제성장 지상주의, CEO리더십'으로 제시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탄생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한국교회와 이명박 정부간에 어떠한 공통점이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먼저, 실용주의 정부의 탈 이념적 경향은 한국교회 탈 복음적 경향과 통한다. 복음 즉 예수이념을 포기한 교회는 더 이상 교회로서 의미가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또 '경제성장 지상주의는 교회성장 지상주의와 맞닿아 있다.', '목회자들의 권위주의적 리더십 역시 공통점으로 지적했는데, 이는 교회성장이라는 실용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평신도 중심의 민주적인 권력분산 리더십보다는 목회자 중심의 독재적인 권력집중형 리더십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실용주의에 대처하는 실용적인 방법은 무엇이 될수 있을까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먼저 '올바른 성서 읽기를 통해, 대처해야 한다. 성서가 말하는 바를 정확하게 본연의 뜻에 맞게 바로 알고 한국교회가 보여온 모습 간의 차이를 확인하고, 그 간극을 좁히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를 위해 깨어 있는 설교자의 양성이 요구되어 합니다. 올바른 성서 읽기를 통해, 배우고 발견한 바를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주재일 기자는 '실용주의가 어떠한 논리체계에서 출발했는지에 대해 먼저 짚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성은 희랍의 이성이 근대 과학과 만나면서, 자기정체성을 갖고, 실용은 그런 흐름에 대한 저항논리였다. 검증 가능하냐를 되묻는 작업이었다. 서양철학사에 대한 반론이라는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자기 성찰의 도구라면 의미있지만, 방향을 상실하면, 문제가 된다. 관념의 자기 성찰적 도구로 사용할 때 건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이를 자기 변명을 설명하는 구실로 전락되기도 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교회사적 사건이 신사참배 문제였다. 감옥에 가면 누가 교회를 지킬 것인가라는 대응논리와 정교분리를강조해왔지만, 약자의 희생앞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사학법 개정논란과 같이 기득권이 침탈되는 상황에서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정교분리를 주장하지만, 한번도 일관성이쓴 주장을 해온 바는 정작 없다'

실례로 쇠고기 사건에 대해 조용기 목사와 오정현 목사의 발언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같은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여전히 우리시대가 어떠한 지경에 와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증언해야 한다. 그들의 신앙과 논리로 자기 성찰없는 행보를 드러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프간 사태에 대해 진보진영에선 보수진영에 대해 너희들 이렇게 될 줄알았다라는 고소한 속내가 있진 않았는지 묻고 싶다. 그러면서 '한국교회 반성해야 한다'고 인터뷰했다. 자기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울림이 없었다.

그런 의미의 내재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건강한 공동체들이 연대해야 한다'라고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대추리나 이랜드노동자을과 함께한 부활절 연합예배와 같이, 각자의 현장에서 살다가, 사안에 따라 사건의 현장으로 모이는 역동적인 연대를 말했습니다. 진보 보수를 떠나, 어른들의 네임벨류와 재정적 지원없이, 운동하는 건강한 공동체들에 애정을 가지고, 응원하면서 살아야가야 하지 않겠나.

도임방주 간사는 이명박 정권과 기독교진보운동의 관계에 대해 발제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실용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견해와 역사의 서술에 대한 논의보다는 기독교 신앙 내지는 신학의 관점에서 보고, 소위 기독교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셨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실용주의가 그 개인의 기독교 신앙과 무관하지 않지만, 전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말할 수 없다. 이유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한다고 강조한다고 해서 그의 삶에 모든 기독교적 교리와 삶의 양태가 숨어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며, 그런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개인안에는 수많은 삶의 가치와 양식들의 서로의 역학 관계를 맺고 역동하며, 기독교 신앙은 그 중 3/1 이상 영향력이 있을 때 각각의 사안에 따라서 드러난다.

또 실용주의와 현실 기독교는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이명박 정권의 실용주의는 개별 사안보다는 전체와 맞짱뜨는 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중학생이 419 세대를 불러모은 이유가 되기로 할 것이다.

실용주의가 무서운 이유는 신념체계를 마구 흔들어 놓고 중층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알 수 없는 인간의 속을 경고 없이 뒤집어 놓는다는 것에 있다. 신념조차 시장에 내다 팔고, 신념이 옳고 그른가를 따진지는 것으로 전락될 수 있다.'

기독교 진보는 어떠한가?

이전에 보수, 복음주의 진영이라고 생각했던 영역이 그 이전 진보 영역과 섞이면서 서로를 ‘대충, 사안별’로 규정한다. 사안에 따라, 진보와 보수를 규정한다.
기독교 진보는 머리는 진보며 손과 팔은 중도이고 발은 보수로 향하는 느낌이다. 이에 요즘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이전 보수의 영역, 중도의 영역이 들어와 이끌고 있다는 느낌이다. 기독교의 진보도 결국 신념의 하나라는 말은 패배주의적 뉘앙스로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의 영역을 분명하게]해야 한다는 요청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독교 진보라는 것은 결국 [전체]안에서 진보로 치환되고 싶어 한다. 선별적 신념의 하나인 [진보요소]들이 모두 진보로 둔갑해 버리는 일이 버리지게 된다. 현 수준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

진보진영에서 35살이 막내다. 시위에서 피켓을 들어야 하는 군번이다. 이는 청년 지도력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70-80년대 기독교 대중운동을 진행했거나 연배가 있으신 분들이 중심인 운동이며, 20-30대는 여전히 손과 발의 역할에 머물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과거 친정에 흡수되었던 10년 전 인사들이 복귀하면, 문제는 더 심화될 것이다. 기독교 진보안에 다시 [전체]를 포괄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며 또다시 정권 대항이라는 시급성을 무기로 ‘지도와 대중을 고착화’하려고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촛불집회에서 배워야 한다. 촛불집회의 큰 특징은 ‘중심의 다양성, 다차원성’이다. 누군가 마이크를 잡아 리드하려는 순간 무시당하며, 각각의 지향을 그래도 인정하지 않고 하나로 몰아간다면 ‘매장’당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독교 진보진영은 아직 중심의 중심성, 차원의 일원성을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무슨 무슨 대책위를 꾸릴 때 보면 확연하다. 아직도 지도와 대중이 있는 것이다.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운동에서 드러나는 모순을 잘 지켜보고 개체의 중층적 요구가 표현되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다양한 세대간의 대화가 필요하다. 20-30대의 활동가들에게 자리를 주거나 발언건을 주는 방식 보다 좀더 적극적으로 다양함의 실체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고 발제했습니다.

<<질의 내용>>

교회개혁의 방법론, 내부에 진지를 구축하여, 자정운동을 해나갈 것인지, 교회를 나와, 대안적인 교회를 세워나가는 작업을 해야 할지, 또, 한국교회 개혁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교회개혁의 방법을 제시해달라 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사회를 맡았던 정운형 국장이 '교회개혁 단체의 실무자 입장에서 비관적인 좌절감을 겪기도 한다. 그럴수록, 건강을 지향하는 작은 교회간의 만남이 소중하다. 올해 작은교회들의 연대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도임방주 간사는 '한 개인의 중층적인 신앙을 존중하지 않으면 개혁은 안된다. 한 개인의 다양한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 한, 개혁은 없다'

주재일 기자는 '척박한 땅에서 싹을 띄워가고 있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을 존중해야 한다. 대화가능한 같은 동지와 함께, 더불어 하는 어떤 모색이 가능할까를 되물어야 한다. 여전히 개혁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여정이다.'

고 답변했습니다.


<<후기>>

토론 시간이 부족하여 심층적으로 논의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어디까지를 교회 개혁으로 봐야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고, 진보, 보수 진영간에 교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어떤 상을 구상해야 할지 더 논의해 나가야 될 과제로 남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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