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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에 묶인 리더쉽[박득훈 200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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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5-06-27 16:26 / 조회 3,46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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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호 표지이야기] 권위주의에 묶인 리더십 ico-offline1.gif
한국교회, 건강한 세대교체의 길은 / 섬기는 지도자상 회복해야

박득훈(weak) weak52@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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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십 교체와 관련된 사태 뒤에는 권위주의적 지도자에 대한 흠모와 맹종이 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요즘 교계의 리더십 교체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노라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뒤진 집단이 교회라는 비판에 대하여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우리 국민은 군부독재정권 밑에서 많은 피를 뿌리며 권위주의 통치를 물리치고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과 정권을 선택할 수 있는 대의민주주의 길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사회적 약자의 억울한 고통을 정의롭게 끌어안아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대장정에 올라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여전히 일부 권위주의적 지도자의 카리스마에 눌리고 매료되어 절차상의 대의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대형교회 담임목사와 대형 선교단체 대표들은 아무 문제없다는 듯 당당하게 리더십을 아들 혹은 사위에게 세습해주고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가 70세 정년을 맞는 내년에 은퇴하겠다고 거듭 천명하자 최근 해당 교단 총회는 은퇴 선언이 헌법에 벗어난다는 억지 논리를 펴가며 철회를 촉구했습니다. 광성교회의 경우, 원로목사가 강력 추천한 목사를 후임자로 청빙했지만 원로목사측과 담임목사측 갈등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거짓된 성령의 종을 구분하라

리더십 교체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일부 교회 문제로 치부하고 눈을 감는다면 한국 교회는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설지도 모릅니다. 유다 말기에 하나님은 부패한 유다를 아끼셔서 부지런히 특사와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비웃었습니다. 이에 역대하서 저자는 '백성을 바로 잡을 길이 전혀 없었다'라는 슬픈 결론을 내립니다(역대하 36:16). 이것이 예레미야가 받은 메시지였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제 유다는 나라를 잃고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고 눈물을 뿌리며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렘 25:11). 한국 교회는 말기 유다처럼 회복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리더십 교체와 관련된 사태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통절한 회개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선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는 명제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여 기본적 상식과 양심 이하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자기 기만적 관행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교회의 도덕적 수준이 하나님이 부여하신 세상의 기본적 상식과 양심의 수준에도 못 미치면 하나님은 한탄하십니다(겔 5:7). 교회는 세상의 기본적 상식과 양심의 수준은 물론이고 그것을 뛰어넘어 더 비범하고 탁월해져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상식과 양심의 수준에서조차도 용납될 수 없는 리더십 세습, 권위주의적 리더십 그리고 권위주의 리더십에 대한 맹종을 성령이 지지하는 바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성령의 이름으로 자신의 영광과 권세를 누리고자 하는 욕망이 낳은 산물입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인간의 마음이 교회 현장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지 간파하고 이를 교회에서 퇴출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둘째, 권위주의적 지도자상을 떨쳐버리고 섬기는 지도자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리더십 교체와 관련된 사태 뒤에 숨어 있는 것은 권위주의적 지도자에 대한 흠모와 맹종입니다. 건강한 리더십 교체가 한국 교회에서 이루어지려면 우상화된 권위주의적 지도자상을 무너뜨리고 섬기는 지도자상을 새로 세워야 합니다.

우상화를 조심하라

한국 교회는 군부 독재의 권위주의 시절을 통과하면서 권위주의 지도자상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모방하고 적극 수용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형식으로는 권위주의 통치에서 벗어났지만 내면적인 면에서는 학대받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피학증(masochism)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권위주의에 대한 강한 저항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그만 위기만 닥쳐도 권위주의에 대한 묘한 향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더 심각한 증상을 앓고 있습니다. 카리스마로 교인을 매료시키고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여 물량적 성과를 이룩함으로써 대형 교회를 이룰 능력만 있으면 그들을 탁월한 지도자로 존경하고 절대적인 충성을 보냅니다. 아들이나 사위에게 리더십을 세습해도, 설교 시간에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성도에게 퍼부어도, 교회 재정에 대한 횡령과 배임 행위로 실형을 받아도 성도들은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권력으로 백성을 억누르고 있는데 백성들은 오히려 그들을 좋아했습니다(렘 5:31). 고린도교회에 거짓 사도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진리와 거짓을 황금 비율로 배합한 후 뛰어난 언변으로 설파했습니다. 그들은 권위주의자들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종으로 부려먹고, 잡아먹고, 얕보고, 심지어는 뺨을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든 것을 용납했습니다. 겸손한 진리의 사람이었던 바울은 버리면서 말입니다(고후 11장).

한국 교회는 이런 어리석은 자리에서 벗어나 진정한 지도자상을 예수님으로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설득력 있게 가르치고, 온몸으로 실천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영적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로 사람을 억압하지 않았습니다. 죄인에게 자유를 주시고 선택의 여백을 언제나 남겨주셨습니다. 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무능한 존재로 버림을 받으셨습니다(막 15:29~32).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을 우리의 그리스도로 세우셨습니다. 섬기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으려고 애쓰는 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섬기는 지도자상을 회복할 때 바른 리더십 교체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셋째, 아무리 탁월한 지도자라고 해도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충성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은 아무리 신앙심이 깊어도 모두 성화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언제나 유혹과 시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충성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게 되고 절대 권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부패의 지름실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자기나 다른 동역자에게 성도들의 존경과 충성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습니다(행 14:8~18 / 고전 1:10~17 / 고전 1:10~17).

지나친 충성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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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교회 박득훈 목사.
기하성 총회가 조용기 목사의 은퇴선언 철회를 촉구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조용기 목사의 탁월함을 폄하하거나 시샘해서가 아닙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조용기 목사를 지나치게 존경했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과 행동 가운데 심각한 오류가 있었지만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얼마 전 교계 원로들이 공적으로 회개하는 자리에서 늦게나마 잘못을 고백하였지만 이미 한국교회 전체에 퍼진 폐해를 걷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뿌리깊은 관행으로 자리잡은, 한 지도자에 대한 지나친 충성을 제거한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보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코앞에 두고 건장한 모세를 데려가셨고 젊은 여호수아를 세웠습니다. 여호수아는 훌륭한 리더가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렇게 건강한 리더십 교체를 경험해야 합니다.

박득훈 / 언덕교회 목사

2005년 0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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