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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득훈 칼럼] 장엄한 실패, 교회개혁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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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9-07-29 11:48 / 조회 2,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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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설교단상] 장엄한 실패, 교회개혁의 길!


박득훈 집행위원(성서한국 사회선교사)



요한계시록 6장 9-11절[새번역]


9. 그 어린 양이 다섯째 봉인을 뗄 때에, 나는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또 그들이 말한 증언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10. 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거룩하시고 참되신 지배자님,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지배자님께서 땅 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어 우리가 흘린 피의 원한을 풀어 주시겠습니까?”
11. 그리고 그들은 흰 두루마기를 한 벌씩 받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과 같은 동료 종들과 그들의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그들과 같이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 아직도 더 쉬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최근에 제 목회 스승님의 장례를 위해 영국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참여한 장례식 중에 가장 은혜롭고 풍성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장례였습니다. 이렇게 죽는 게 참 잘 죽는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영국에 온 김에 마르크스(Marx) 묘지를 꼭 가보고 싶다고 하는 일행이 있어 저도 못 가본 터라 동행했습니다. 실제로 묘비 옆에 서보니 마음이 참 숙연해지더군요. 그 장소에서 조금 더 가다가 우연찮게 눈에 확 띄는 묘비와 마주쳤습니다.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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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 a spectacular failure, than a benign success”
보기 좋은 성공보다 장엄한 실패가 더 낫다


맬컴 맥라렌(Malcolm McLaren)이라고 하는 전위음악가인데, 그가 예술학교를 다닐 때 학교 선생님에게 들은 가장 소중한 조언을 요약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짧은 문장이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맞아,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이지!


요한계시록 본문을 보면 어린 양이 다섯째 봉인을 뗄 때, 요한은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습니다. “주님, 우리가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이 땅 위의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가 흘린 피의 원한을 풀어주시겠습니까?” 그들이 얻은 답은 무엇일까요? 첫째, 흰 두루마기 한 벌씩 받았습니다. “너희들이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멋진 삶을 살았으니 진정한 승리자구나!”라는 축하를 받은 것입니다. 둘째,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차기까지 아직 더 쉬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최후심판이 이루어지기 직전까지, 참된 그리스도인은 죽임 당함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장엄한 실패, 그게 바로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승리입니다. 저는 이것이 요한계시록을 관통하는 신앙이라고 확신합니다.


교회개혁운동을 하면서 제일 슬플 때가 있습니다. 그건 부패한 세력이 개혁세력보다 더 헌신적이고 열정적이고 끈질기고 단합도 더 잘하는 걸 목도할 때입니다. 담임목사직 세습하겠다는 사람들은 얼마나 끈질깁니까? 뒷심이 보통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꼬꾸라질 것 같더니 갈수록 뒷심이 더 커져요. 세습반대운동은 처음에는 굉장한 것 같더니, 뒤로 갈수록 점점 꼬리를 내리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개혁운동이 성공할 가능성이 가시권에서 점점 멀어지면 힘이 쭉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요한계시록적 신앙의 결여를 뜻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뭔가 가시적인 열매가 맺히면 ‘아! 우리가 바른 길을 걸어온 거구나!’ 하고 기뻐하며 안심하곤 합니다. 반면 죽어라고 노력해도 어떤 가시적인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이 길을 계속 가야하나?’ 회의와 피로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결국 될 만한 일에만 눈길과 발걸음을 돌리게 됩니다. 보기 좋은 성공을 흠모하면서! 그러나 역사의 진보에는 놀랍고 깊은 역설이 있습니다. 장엄한 실패의 길을 기꺼이 걸어간 사람들을 통해 역사는 한 걸음씩 결정적으로 진보해왔다는 사실입니다.


근데 역사가 아무리 진보해도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장엄한 실패를 각오하고 환영해야 합니다. 온전한 하나님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진보의 순간 차마 정상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한 봉우리에 오르면 잠시 숨을 돌리고 그 다음 봉우리를 향해 오르는 산악인 같은 존재입니다. 근데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 등산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에베레스트 산 정상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결코 ‘이만하면 됐다!’ 할 수 없는 거죠. 교회와 사회의 형편이 아무리 나아져도 또 비주류의 길, 저항의 길을 택합니다. 지배 세력의 눈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 그 삶이 평탄할 수가 없습니다. 장엄한 실패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영광스러운 숙명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정확히 그런 길을 걸어가셨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부활하셨지만, 이 땅에서 부활의 승리와 영광을 누리지 않으셨습니다. 40일 동안 제자들과 은밀하게 지내시다가 하늘로 사라지셨습니다. 궁극적 승리를 미래로 미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보기 좋은, 모든 사람들이 박수쳐주는 성공보다는, 장엄하고 극적인 실패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를 통해 참된 사랑의 길,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젖히셨습니다. 스데반이 순교 직전 절박한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 보았지요.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와 눈길이 마주쳤음에도 땅으로 내려오실 생각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하나님 우편에 서서 곧 죽을 스데반을 맞이할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장엄한 실패를 영광으로 받아들인 거죠! 그게 궁극적 승리로 가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장엄한 실패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영광스러운 숙명입니다. 저는 개혁연대가 그런 신앙을 회복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 동안 우리는 보기 좋은 승리를 종종 맛보았습니다. 교회문제가 잘 해결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교회개혁운동단체로 공신력과 신뢰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런 보기 좋은 성공의 자리에 머문다면 개혁연대의 사명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연대가 교회개혁운동의 길을 계속 가려면 '보기 좋은 성공보다 장엄한 실패'를 선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돌아보면 그게 우리의 초심이었습니다. 이제 마음을 다시 다잡고 우리 앞에 바위처럼 우뚝 서 있는 교계의 부패세력을 향해 계란 같은 우리 몸을 과감히 던집시다! 당장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해서, 낙심하거나, 의기소침해지거나, 뒤로 물러서지 맙시다!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오늘도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실 예수님, 눈물 젖은 우리 눈을 자랑스럽게 여기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 이 글은 72호 소식지 공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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