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자료

문서자료

칼럼 [공적헌금 칼럼⑤] 헌금이야말로 시민사회에서 가장 공적인 경제행위입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7-10-28 09:33 / 조회 2,447 / 댓글0

본문

[공적헌금 칼럼] 헌금이야말로 시민사회에서 가장 공적인 경제행위입니다



황병구 / 한빛누리 본부장,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돈 즉, 화폐의 쓰임새는 주로 가치의 교환을 위한 매개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상품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받고 그 가치에 해당하는 금전을 지불하는 행위가 가장 일반적인 예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돈의 쓰임새를 두루 관찰한다면 조금 다른 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화폐는 시장에서처럼 사적 재화의 상호 유통을 돕는 데에만 사용되지는 않는다는 관점이다.

먼저는 벌금과 과태료 같이 범죄나 과실에 대한 대가를 금전으로 벌충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는 자신이 대사회적으로 저지른 잘못을 갚는 일종의 공적 행위이다. 또 하나가 있다면 이는 사회간접자본이나 공공재를 사용하고 지불하는 수수료들인데, 가까이는 도로 사용료나 발급 수수료가 있겠고, 과거에는 전기, 수도, 방송, 통신 등 민간사업체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영역을 준정부 기관이 공급하고 여기에 따르는 실비를 요금으로 징수하는 경우였다. 한때 전기세, 수도세처럼 유사 세금의 일종으로 불렸던 기억도 있다. 이 역시 사회의 공적 기능이 돌아가도록 기여하는 구성원들의 분담으로 볼 수 있겠다.

무엇보다 시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세금과 시민 생활의 보장을 위해 징수되는 사회보험료들이야말로 이 경제행위를 더욱 구체적으로 특징짓는다. 물론 그 유형과 성격에 대해서는 목적과 대상에 따라 더욱 상세히 구분되겠지만, 공통적인 특징은 이 역시 공적 용도로 쓰인다는 것이다.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사적으로 유용하는 일에 대해서는 큰 범죄로 여겨 엄벌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 후진국과 선진국을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벌과금, 수수료, 세금과 사회보험료까지를 의무적인 금전 부담이라고 한다면, 자발적인 금전 부담 역시 비근한 관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조합비 또는 회비라고 일컫는 한 조직의 구성원들이 자체 규정을 통해 그 조직의 운영과 사업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금하는 금전 역시 공적인 성격을 지닌다. 적어도 그 조합과 기관의 설립 목적과 회원들의 합의에 부합하도록 집행되어야 하고 이를 어긴 경우 이를 공금횡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단어로 표현한다. 나아가 기부금 또는 후원금이라고 불리는 공익적 조직의 운영과 사업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탁하는 금전이 존재한다. 이 경우에는 더욱 공적인 성격을 가지는데, 그 공익적 조직이 더 투명하지 않고 소통이 없다면, 기부금과 후원금을 더 모금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확언하건대 교회의 헌금은 기독 신앙인들에게 가장 숭고한 헌신의 표시이다. 온 세상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 오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섬김의 삶을 본받아 살겠다는 성도들의 순종 표시이다. 사실 헌금을 앞서 설명한 벌금, 과태료, 공공재 이용 수수료, 세금, 보험료, 조합비, 회비, 기부금, 후원금 등등과 동일 선상에서 관찰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한 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숭고한 헌금이 공적이기는커녕 사사로이 소수의 편익과 안락을 위해 소요되거나 특정 집단의 명예와 만족을 높이는 일에 투여된다면 이는 공금횡령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며, 사회적인 민망함 정도가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치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 경험이 되고 만다.

여기서 돌아볼 지점은 이 사회에서 공공의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던 많은 기관 및 단체 역시 점점 사익적 조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대학과 병원의 학생과 환자 유치 경쟁이 이를 바로 보여 준다. 심지어 정부 부처나 지자체도 공공성을 잃어 가고 있다. 지역이기주의를 떠올린다면 이는 자명하다. 동시에 한국교회의 많은 교단과 지역 교회, 선교 기관이 공익적 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자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돌아보면 더욱 처참하다.

윌리엄 템플 주교는 "교회는 비회원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협동조합"이라는 강력한 표현으로 교회의 공공성을 강조한 바 있다. 사실 숭고한 희생적 헌금이 시민사회에서 그저 자발적 기부금의 일종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으로도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게다가 그것도 세제 혜택을 차등 적용받는 불신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당황스럽다. 앞서 열거한 벌과금이나 수수료,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조합비나 회비, 기부금이나 후원금이 가진 기초적인 공적 의미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자기중심적 교회의 현실이 가장 뼈아프다. 헌금이야말로 시민사회에서 가장 공적인 경제행위라는 인식을 가져오는 것도 선교의 일부라는 각성이 필요하다.

돈 즉, 화폐의 쓰임새는 실로 가치의 교환을 위한 매개이다. 헌금이 본연의 숭고한 가치를 의연히 매개하려면, 지금처럼 수치스럽게 공사를 다투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가장 공적인 경제 공동체로서 교회, 가장 공적인 경제 주체로서 성도, 가장 공적인 경제행위로서 헌금의 정체성을 주장할 일이다. 예수께서 이 시대에 기도를 다시 가르쳐 주신다면 이렇게 한마디를 덧붙이실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의 이름도 거룩하게 하시고, 오늘 우리에게 가장 공적인 정체성을 얻게 하소서!"



- 이 글은 뉴스앤조이 2017년 10월 25일(수)자에 실렸습니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3921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