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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애희 칼럼] 말할 권리, 연대할 책임: 증언과 연대의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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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8-06-27 16:34 / 조회 2,331 /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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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평등한 교회 READY? ACTION!] 말할 권리, 연대할 책임: 증언과 연대의 ‘미투’



김애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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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해 왔고, 말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말할 겁니다.”


무대에 오른 여성이 그날의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가끔 울음이 터지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중단되는 일은 없었다. ‘듣기’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조언이나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방해되지 않도록, 숨죽인 채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뿐이었다.


주저되는 시도였다. 공론의 장으로 나올 피해자가 있을지조차 장담하기 어려웠다. 종교의 장에서는 흔치 않은 시도였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다고 해도 당사자가 대중 앞에 나서는 일은 여전히 두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하기’ 참가자들에게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노라 약속했다.


‘듣기’ 참가자에 대한 확인도 중요한 사항이었다. 사전 신청을 받았고, 중요사항을 일일이 확인하는 선별과정을 거쳤다. 일체의 녹음과 촬영도 허용하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염려와 달리 그날의 일을 거침없이 고발했다. 그리고 여전히 ‘경건한 목자’로 살아가고 있는 가해자를 향해 분노했다.



기독여성에게 가장 어려운 장벽


‘미투’ 운동이 만들어낸 변화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성폭력은 더 이상 은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피해당사자는 들어주는 이들이 있다면 어디든 거리낌 없이 피해 경험을 말하기 시작했다. 종교계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목사님’이, ‘전도사님’이 했던 추행과 폭행을 SNS를 통해 고발하거나, 카메라 앞에서 증언했다.

교회 안에서 자행되는 성폭력은 전혀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몇몇이 모여 대화를 나누다 보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권사님’, ‘집사님’에 대한 기억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곤 한다. 목사님이 한동안 설교하지 않고 기도원에서 은둔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지난 5년간 집계된 성폭력 범죄자의 직업군 중 종교인이 가장 많았다는 경찰청 자료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 ‘믿음’과 ‘사랑’만이 존재할 것 같은 신앙공동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행실 나쁜 누군가의 일탈’, ‘둘이 있는 공간으로 찾아간 잘못’ 등 흔히 성폭력 사건은 개인적 문제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기실, 세상의 모든 폭력행위가 그렇듯 성폭력은 불평등한 위계 구조에서 발생한다. 어떤 형태든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위계적 하위존재에게 강제한다는 말이다. 우리들의 교회 현장은 어떠한가? 많은 이들에게 교회는 차별적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조직은 수직적이고, 소수 엘리트에 의한 정보독점과 의사결정은 일상적이다. 미국의 신학자 로즈마리 류터는 ‘기독 여성에게 가장 어려운 장벽은 분노와 자신감을 죄악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순종은 미덕이나, 주장은 불경하다. 이 때문에 대개 교회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면 어이없게도 피해자는 ‘조용히 넘어가지 않고, 공동체에 분란을 일으키는 자’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반면 가해자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적 영역을 통해 당당히 범행을 부인하거나, 합의하에 가진 관계라는 식의 변명을 한다. ‘모함’이라는 말을 통해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피해자에 비해 강력하게 집중되어 있는 자신의 압도적 영향력을 십분 이용하는 것이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피해자의 말은 묻히고, 가해자는 변함없는 지위를 누리게 된다.



낮은 성평등 감수성과 교회 성폭력


성폭력 뿐 아니라, 성 자체에 대한 한국교회의 민낯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목사, 장로가 될 수 없음을 신앙의 전통인양 으스대는 교단들이 거대한 교세를 자랑한다. 안수가 허용된 교단에서는 청빙을 하지 않으므로 여성 교역자의 설 자리는 없다. 결정과 집행이 앞에 선 남성의 전유물이 되는 동안, 여성들의 자리는 주방과 안내석으로 굳어졌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교회의 성폭력은 낮은 성 평등 감수성에서 자란 암세포와 같다. 죄의식 없이 범죄가 저질러지고, 공동체는 이를 범죄로 인지하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더 큰 상처를 받고, 조용히 사라지면 그만이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달라져야 한다. 피해자는 교회공동체가 앗아갔던 권리를 스스로 찾아 말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불행한 기억에 갇힌 채 암울한 삶을 사는 무기력한 ‘희생자’가 아니라, 자신에게 가해졌던 범죄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성폭력 ‘생존자’들의 ‘말하기’는 스스로 진화해 온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 이들의 용기에 화답할 책임이 있다. 그에 앞서 당사자의 입이 되어주기는커녕, 그 입을 막는 데 급급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신앙인의 연대는 선택이 아닌 의무이며, ‘우는 이와 함께 울라’는 성서의 명령에 대한 마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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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 YWCA 4월호 소식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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