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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저항하는 그리스도인의 탄생 ②] 교회 여성, 기생관광을 규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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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7-06-20 13:57 / 조회 2,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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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그리스도인의 탄생 ②] 교회 여성, 기생관광을 규탄하다



강성호


2015년에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평신도운동’, 2016년에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개혁운동’이라는 주제로 일제의 강제점령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한국교회 안팎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교회개혁’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봤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인 올해에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저항하며 개혁자의 길을 걸었는지,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저항의 길을 함께 걸어 봅시다.


글 싣는 순서
1. 예수는 어떻게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는가?
2. 교회 여성, 기생관광을 규탄하다
3. 기독 청년들의 교회개혁 이야기
4. 증오에 대한 죄책 고백, 88 평화통일선언
5. 천세용의 저항적 자살과 성공회 사제들



한국교회사에는 미지의 영역이 많습니다. 전문적인 연구 인력이 두텁지 못한 탓도 있을 테고, 신학의 다른 영역에 비해 큰 관심을 받지 못한 분위기도 한몫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미지의 영역이 많다는 건 그만큼 넘어서야 할 기존의 인식이 상당하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한국교회사가 목사・남성 중심의 서사로 구성되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여성의 눈으로 본 한국교회사는 찾으려고 해도 찾기 쉽지 않습니다. 물론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여성 교역자 11인의 삶을 구술사로 정리한 <여교역자 입을 열다>(임희국 엮음, 새물결플러스)나 초기 한국교회에서 활약한 여성들을 소개한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이덕주 지음, 홍성사)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해결되지 못한 지점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기생관광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사에서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역할과 활약은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들은 교회에서 밥만 하는 여성들의 역할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대신, 여성들의 한(恨)을 풀어주는 일을 위해, 여성들의 인간화를 위해 끊임없이 저항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1967년에 만들어진 초교파 여성단체였습니다(홈페이지 http://kcwu.org). 처음에는 분열된 교회를 여성들의 힘으로 하나가 되게 하겠다는 포부에서 출발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인권이 유린당한 현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구속자 석방운동, 원폭피해자 돕기운동, 기생관광 반대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기생관광의 실태


한국의 관광산업은 1960년대에 약 49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약 660만 명으로 무려 13배의 양적 성장을 보였습니다. 1978년에는 처음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한 해에 100만 명을 유치했다고 선전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인이 전체의 40%를 차지했지만,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인 관광객의 비중이 서서히 증가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1973년에는 80%의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1973년 9월에 일본이 대만과 국교를 끊으면서 일본인 관광객의 발길이 한국으로 향한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 봅니다.


여기서 우리가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건 일본인 관광객의 85% 이상이 남성들만의 단체 관광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주로 일본의 하층 노동자나 농민이었습니다. 회사에서 보너스 투어를 시켜 준다거나 농협에서 조합원을 단체로 이끌고 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계 모임이나 친구들끼리의 모임으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한국을 찾는 목적이었습니다. 바로 ‘기생파티’를 즐기기 위한 것이었죠. 요즘 말로 하면 섹스 관광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자체적으로 조사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기생파티를 여는 곳은 27개 업소였습니다. 이 조사에서 파악되지 못한 업소가 더 많겠지만 말이죠. 27개 업소 가운데 14개의 요정이 서울에 있었습니다. 부산에 7개, 경주에 4개, 제주도에 2개의 요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각 지방의 큰 호텔에 부설되어 있는 ‘한국관’도 일본인 관광객에게 기생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국내 여행사는 “기생의 서비스가 만점, 남성의 천국”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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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관광은 일본인들을 상대로 국가가 공식적으로 운영했던 성매매 관광이었다. 사진은 접객 여성들이 호텔에 출입할 때 사용한 등록증(출처: 1972년 10월 5일자 경향신문)



주요 관광객이 일본인이었고, 이들 대부분이 기생파티를 찾으러 온 남성들이라 그런지 정부는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방조 내지 권장하기까지 했습니다. 한국관광협회에서 찍어낸 회원명부에는 기생파티를 여는 요정을 그냥 일반유흥음식점이라고만 간단히 명시하였고, 국제관광공사에서 만든 안내지도에는 호텔, 고궁, 주요 공공시설과 더불어 요정들의 위치를 한자와 일본어로 적어 두기까지 했습니다. 국제관광협회의 경우 ‘요정과’라는 부서가 있었고, ‘접객원 증명서’라는 허가증까지 발급했습니다. 심지어, 정부는 기생관광을 부양하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유흥음식세를 면제하고, 접객 여성에 대한 성병 검진과 서비스교육을 강화했습니다. 일본에서의 모집, 국내 관광회사에서의 인수, 요정으로의 알선, 기생파티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의 성은 국가적・조직적・집단적으로 착취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생관광 반대운동의 전개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창립될 때부터 매매춘 여성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졌습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람이 부당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며, 사람다운 대접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점에서 조국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매춘관광을 방조하고 권장하는 국가의 성 산업은 비성서적인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1970년대 초반부터 ‘기생관광 반대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기생관광 반대운동을 시작할 때 한국과 일본의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아시아의 평화를 논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일 간의 이슈를 그리스도인들이 연대하여 함께 해결하고자 했던 모임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기생관광 문제를 중요한 안건으로 다루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 기생관광 반대운동은 한국과 일본의 여성들이 연대하는 최초의 사례가 됩니다. 일본의 여성단체들도 기생관광 반대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일본의 여성단체와 연대하여 기생관광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기생관광의 실태를 조사하는가 하면, 한국정부에 관광 정책의 시정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발송하고 기생관광 반대시위를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1974년 2월 기생파티를 관광코스에서 제외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확인했지만, 그해 4월 여성신학자 이우정 회장이 중앙정보부에 연행되면서 기생관광 반대운동은 사실상 중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고 기생관광 반대운동이 완전히 좌절된 건 아니었습니다. 1979년 10․26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탄력을 받게 됩니다. 1980년 2월부터 5월까지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서울, 부산, 경주, 제주의 기생관광 실태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이때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었던 ‘서울의 봄’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12․12쿠테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 세력이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한 5․17쿠테타로 다시 시련을 맞게 됩니다. 실태조사 결과물인 <기생관광: 전국 4개 지역실태조사 보고서>는 1983년에 비로소 출간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의 기생관광 반대운동은 ‘더 스포팅 뉴스 사건’으로 활력을 얻게 됩니다. 1985년 10월 미국의 스포츠 주간지인 <더 스포팅 뉴스>가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의뢰로 별책부록을 한국특집으로 꾸몄는데, 여기서 기생파티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실려 있었던 사건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취재가 정부의 적극적으로 협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정부가 다시 기생관광을 조장할 것으로 판단하고 기생관광 반대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칩니다. 이때 변화가 생겼습니다. 기생관광을 ‘성 제국주의’, 즉 제국주의의 성 착취로 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제국주의와 관련된 다른 여성의 인권 침해 문제도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주최로 열린 ‘여성과 관광문화’ 국제세미나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건 우연이 아닙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운동이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시대적 한계이긴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기생관광을 비판하기 위해 여성의 가치를 정조로 환원하는 성차별적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접객 여성(기생)들을 선도와 보호의 대상으로만 여겼습니다. 이는 피억압자들을 침묵 속에 남겨놓은 역설로 이어졌습니다. 자신들을 부덕한 아버지로부터 딸을 구원하는 어머니로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접객 여성들은 그저 어머니의 구원을 기다리는 딸로 그려졌을 뿐입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기생관광 반대운동은 독재정부의 관광정책에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김영삼 정부가 성매매 관광 근절을 선언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습니다. 기생관광 반대운동은 여성의 성을 경제성장의 수단으로 동원한 군사정권에 대한 도전이자 성매매 쟁점을 여성운동의 의제로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적지 않은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기생관광 반대운동은 여성인권운동의 선구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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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성호
출판사 짓다
출판일 2016.05.12


책 소개
『한국 기독교 흑역사』는 한국기독교의 식민지 경험, 한국전쟁, 냉전, 군사독재, 산업화 등의 근현대사 흐름 속에서 한국기독교가 타협했던 역사적 과오를 추적한다. 호교론적 한국기독교사 서술의 한계를 지적하고 대항기억을 재생하기 위한 비판적 논점을 제시한다. ‘흑역사’ 진술은 단지 비판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기독교 왜곡의 원인과 현주소를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체질 개선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제1부는 ‘식민지 경험과 기독교’라는 주제로 한국기독교가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된 점, 침략전쟁을 지원하게 된 점, 교회의 생존과 보호라는 논리로 친권력을 내재화 한 점 등을 다루고 있다. 제2부는 ‘한국기독교의 왜곡된 정치 참여’라는 주제로 민간인 학살에 기독교가 가담한 일, 부정선거에 개입한 일, 반공주의를 내면화 한 일 등을 다룬다. 제3부는 ‘한국기독교의 사회적 추문’이라는 주제 하에 부동산에 저당잡힌 기독교의 민낯과 무례한 기독교의 태도, 친자본주의를 내재화한 역사를 다룬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 이 글은 65호 소식지에 실렸습니다.

∗ 글쓴이 소개: 강성호 님은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 현대사를 공부했고, 학창시절에 장로교회(고신)와 학생신앙운동(SFC)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일반 역사학의 관점에서 기독교 역사를 어떻게 재평가하고 서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고, 지금은 전남 순천에서 아내와 함께 골목 책방 <그냥과 보통>을 운영하면서 집필 활동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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