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자료

문서자료

칼럼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개혁운동 ⑤] 변절과 변명 사이에서 교회개혁을 생각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7-01-02 05:10 / 조회 2,189 / 댓글0

본문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개혁운동 ⑤] 변절과 변명 사이에서 교회개혁을 생각한다


김일환 목사


2015년에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평신도운동’이라는 주제로 다섯 편이 연재되었고, 올해부터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개혁운동’이라는 주제로 다섯 편의 글이 연재되는데요. 일제의 강제점령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한국교회 안팎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교회개혁’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봅니다. 선교사와 한국 기독교인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개혁하려는 시도, 교회 안에서 남녀차별 문제의 철폐와 평신도의 주체성을 확보하려는 노력, 장애인도 동등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알리는 운동, 일제의 황국신민화에 굴복하여 협력한 기독교인들의 모습과 그 후의 행동 등을 담을 예정입니다. 이 글들이 현재의 한국교회사를 삶으로 쓰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개혁을 위하여 분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 싣는 순서
1. 예수교 자유교회를 아십니까?
2. 조선 교인은 선교사의 하인(下人)이 아닙니다.
3. 교회에서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웬 말인가?
4. ‘훈맹정음’과 박두성
5. 변절과 변명 사이에서 교회개혁을 생각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았을 때 한국 기독교가 직면한 시급한 문제는 일제에 의해서 일본기독교와 통폐합된 교회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신사참배와 친일협력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중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친일협력에 대한 청산문제는 결국 교단의 분열을 가져올 만큼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해방 이후 신사참배 회개와 친일협력 청산에 대한 갈등과정과 미완의 해결상태에 대한 역사적인 서술과 평가 작업은 상당 부분 진행되어서 그것을 자세히 소개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신사참배를 하고 나아가 친일 협력을 했던 사람들의 변명과 논리를 되짚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변절에 대한 변명을 살펴보는 것이지요.


1945년 9월 18일에 장로교회 경남노회가 재건되면서 가장 먼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한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자숙안(自肅案)을 제시했습니다. 그 내용은 1) 목사, 전도사, 장로는 일제히 자숙하여 일단 교회를 사직하고, 2) 자숙 기간이 종료되면 교회는 교직자에 대한 시무 투표를 실시하여 그 진퇴를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해 9월 20일에는 평양 감옥에서 출옥한 교인 20여 명이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 평양산정현교회에 모여 “한국교회 재건의 기본원칙”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은, 1) 교회지도자(목사, 장로)들은 모두 신사에 참배하였으니 권징의 길을 취하여 통회 정화한 후 교역에 나아갈 것, 2) 권징은 자책 혹은 자숙의 방법으로 하되 목사는 최소한 2개월간 휴직하고 통회자복할 것, 3) 목사와 장로의 휴직 중에는 집사나 평신도가 예배를 인도할 것, 4) 교회재건의 기본원칙을 전국 각 노회 또는 지 교회에 전달하여 일제히 실행하게 할 것 등이었습니다.


이런 자숙안에 대해서 신사참배를 했던 교회 지도자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1938년 장로교회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할 때 총회장이었던 홍택기 목사는 “옥중에서 고생한 사람이나 교회를 지키기 위해 고생한 사람이나 그 고생은 마찬가지였고, 교회를 버리고 해외로 도피생활을 했거나 은퇴생활을 한 사람의 수고보다는 교회를 등에 지고 일제의 강제에 할 수 없이 굴한 사람의 수고가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심판주는 오직 하나님이신데 왜 인간들이 권징이니 자숙이니를 요구하는가?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처벌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홍택기 목사의 이런 주장은 신사참배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습니다. 나아가 신사참배를 한 지도자들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 굴욕을 참으며 수고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사참배에 대한 자숙문제는 하나님과 해결하면 된다는 논리를 잘 드러내 줍니다. 이런 논리는 이후 신사참배에 대한 대표적인 변명의 논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한국기독교역사학자는 홍택기 목사의 주장에 대해서 “반박할 수 없는 정연한 논리와 신학이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친일협력을 한 기독교 지도자들도 이와 동일한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1948년 9월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25명이었습니다. 물론 친일협력행위를 했지만, 당시 반민특위의 조사를 받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반민특위의 조사 자료를 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교회를 보존하고 유지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제의 강압정책에 형식적으로 순응하면서 합법적으로 교회를 유지했으며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1943년 장로교회 신사참배단 일행의 일본 이세신궁(伊勢神宮) 참배 사진을 1972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60주년 기념화보에 공개했던 유호준 목사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부끄럽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을 말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사진을 공개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신사참배와 친일협력에 대해서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현실 속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 굴욕을 감수해가면서 한 일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변명 속에 등장하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에서는 일제라는 거대한 현실적 폭력 앞에 노출된 인간의 나약함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누군들 그런 엄청난 폭력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항일독립운동을 한 사람들, 신사참배에 항거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부끄러운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사참배자나 친일협력자들은 부끄러운 변명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교회를 지키기 위해 수고하고 애쓴 사람이라는 변명을 지속적으로 논리화하면서 역사적인 왜곡을 초래했다는 것이 더욱 무서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사참배를 가결한 1938년 장로교회 제27회 총회에서 부총회장이었고,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던 김길창 목사는 위와 같은 변명의 논리로 장로교회 경남노회 안에서 신사참배 회개와 친일협력문제 청산을 방해한 대표적인 인물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197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기독교 교육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김길창 목사뿐만 아니라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신사참배와 친일협력문제에 대한 변명의 정당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면죄부를 주고 해방 이후에도 계속해서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신사참배와 친일협력 문제가 해방 이후 모든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문제의 뿌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변명의 정당화 유형은 한국교회 안에 깊게 내재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안에서 개혁이라는 주제가 거론될 때마다 개혁을 위한 시도와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논리로 이 변명의 논리가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오래된 신사참배와 친일협력의 문제가 오늘의 문제로 느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 소개
평신도, 교회를 세우다 : 평신도 중심으로 본 한국 기독교사
저자 김일환 | 출판사 밥북
정가 : 12,000원


『평신도, 교회를 세우다』는 기존의 선교사와 목회자, 또는 교단 중심으로 편중된 한국 기독교사를 평신도 관점에서 정리하여 주체적으로 활동한 평신도의 역할을 재평가했습니다. 이를 선교사와 목회자가 활동한 역사적 사실을 희석하는 차원이 아닌 다른 하나의 역사를 복원하는 의미로 서술하여 선교사, 목회자, 교단의 역사와 더불어 한국 기독교사를 온전히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책의 1장에는 평신도, 한국 기독교의 기초를 놓다, 2장에는 평신도, 자립적 한국 기독교의 틀을 만들다, 3장에는 민중 속에 뿌리내리는 한국 기독교와 평신도, 4장에는 부흥운동과 민족운동 속에서의 평신도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개혁운동’ 1~4화는 홈페이지-칼럼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쓴이 소개: 김일환 목사는 장로교(예장통합) 목사로 동국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공부했고, 서울장신대학교, 성공회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등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는 서울장신대학교 박사 과정(한국교회사 전공) 중입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