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애희 칼럼] 누구에게나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은 주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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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6-06-22 13:44 / 조회 2,340 / 댓글 0본문
누구에게나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은 주어줘야 합니다!
"어려운 시대에 드보라를 일으킨 것처럼 총신에도 여성 안수의 길을 열어 주시옵소서."
총신대 신대원에서 구약을 가르쳐온 박 교수는 여동문들과 함께한 송년회 자리에서 매년 같은 기도를 해왔습니다. 그날은 그간 한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던 총장도 설교자로 온다는 소식에, 전날 잠시 고민했지만 기도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결국 박 교수는 올해 초 학교로부터, 맡고 있던 수업이 폐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수년을 가르쳐온 ‘시편’ 강의는 남성 강사로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학교는 예정된 행정조치일 뿐, 오해라고 둘러댔지만, 행정조치로 인한 불이익은 여성강사들에게만 집중되었습니다.
박 교수는 ‘여성은 신학을 가르칠 수 없다’는 금기를 깨고 최초로 강단에서 구약을 가르쳐왔습니다. 사건이 터지고 수개월이 흘렀지만, 그들은 여전히 강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음 학기가 되어도 돌아가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2014년에도 여성의 목회학 석사과정 입학을 제한하도록 결의하여 물의를 빚었던 전력이 있어, 다시금 거센 비난을 받았음에도, 총신대는 여전히 묵묵부답일 뿐입니다.
1955년 한국 여성이 처음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감리교단에 이어, 기장(1957년) 교단과 예장 통합(1994년) 역시 여성 목회자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침례교와 예장 대신까지 여성 안수를 허용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여성 안수를 거부하는 교단은 예장 합동 교단과 예장 고신, 예장 합신 뿐입니다.
안수를 받을 수 없음에도 총신대를 선택하는 신학생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합니다. 2013년에만 전체 원우 410명 중 57명의 여학생이 입학했습니다. 학문공동체의 일원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말입니다. 몇 년전 모 신대원에 다녔던 후배가 좋은 성적에도, 장학금을 받지 못했던 사연이 떠올랐습니다. 졸업하더라도 목사가 될 수 없는 여성 학우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는 관행 때문이랍니다.
법적으로 안수가 보장되어도 여성들이 목회 현장에 뛰어들게 되면서 더욱 커다란 장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여성을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교단에서도 지도력을 갖고 정치에 뛰어드는 사례는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여성이 리더쉽을 발현하는 데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열등하며 의존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가치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견고하고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여성을 포함한 많은 교인들은, 여성들이 주방을 지키고, 남성들은 강단을 지키는 것이 안정감을 준다고 믿습니다. 여성 스스로 본인의 지도력을 불신하고 거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 구분을 하나님이 주신 질서로 학습하고,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관성을 스스로 내면화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입장이 다른 이들과의 의견을 나누는 일을 통해, 우리의 주장을 교정하거나 그 개념이 더욱 정교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통찰과 에너지를 얻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이견을 내는 일을 어려워하곤 합니다. 특히 교회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를 성장시켰던 교회의 가르침은 동시에 우리를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평등을 주장했을 때, 비신앙적이고 비순종적인 사람으로 취급되어 왔어 왔다고 말합니다. 인내와 순종을 미덕으로 가르쳐왔던 교회 문화에서, 자신의 생각을 당차게 주장하는 여성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직장을 다니느라, 식당 봉사나 교회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젊은 집사들은 비협조적이라고 눈치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비약적 성장의 이면에 한국교인의 70%를 이루는 여성 교인들의 헌신과 희생이 뒷받침되어 왔음을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성 안수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권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성이 가진 권력을 여성인 ‘나도’ 갖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인정하고 여성 역시 주어진 소명에 정직하게 참여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견해를 찾아내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교회의 성숙에 기여하는데서 오는 만족감을 느끼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지지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최근 들어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의 문제가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강남역 피살 사건을 두고 혐오범죄로 볼 것인지를 두고 뜨거운 설전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교회 여성들 역시 이를 계기로 가부장적인 교회 문화로 상처받았던 경험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 스스로를 위축시켰던 모든 것에 대해 두려움 없이 말하는 일의 위대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성숙을 가늠하는 척도는 강자가 얼마만큼 성공하느냐가 아니라 약자를 얼마나 잘 지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는 끊임없는 자기비판을 통해 변화되고,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한국교회가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습니다.
60호 소식지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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