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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방인성 칼럼] 예수의 흔적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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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4-12-16 17:49 / 조회 1,746 /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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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흔적을 가져야 한다
[289호 메멘토 0416]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40일 단식을 마치며
newsdaybox_top.gif[289호] 2014년 11월 26일 (수) 14:13:10방인성 함께여는교회 목사 btn_sendmail.gif goscon@goscon.co.krnewsdaybox_dn.gif

2014년 8월 28일, 나의 61번째 생일, 일명 회갑의 아침을 광화문 광장 단식 천막에서 맞았다. 천막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이순신 장군께서 지긋이 내려다보시며 미안한 표정으로 축하를 건넨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의 명장으로서 지난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보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좀 더 뒤에는 세종대왕께서 쓴웃음 지으며 마지못해 나를 반긴다. 백성의 고통의 소리를 들어주어야 하는 왕의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했을 것이다. 더 멀리에 있는 파랑 기와집에 사는 사람은 ‘왜?’ 환갑날 아침을 맞은 사람이 광화문 광장 천막에서 미역국은커녕 일체의 음식을 사양하고 맹물로 배를 채우는지 관심도 없다. 딸 잃은 아빠가 46일이나 단식하며 절규하는데도 귀를 막고 있었는데, 누구인들 그의 눈에 들어올 수 있을까?


그런 우울한 아침에 우리 모두에게 기쁜 선물이 왔다.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단식을 풀었으니 살 수 있다는 소식으로 단식장은 들썩거렸다. 생명의 소리, 죽어가는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소리, 아니 억울한 죽음에 저항하는 몸부림의 새로운 결단의 소리였다. 그 생명의 소식만큼 값진 선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웃고 울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분노도 했다. 자식 잃은 부모들이 아니고 이웃들이,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외쳐주어야 마땅하다는 울림에 단식 시작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생명은 생명이 살린다!’


▲ 40일 단식을 마치는 날 광화문 연합 예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방인성 목사 ⓒ복음과상황 오지은

광화문 광장에 모인 이들, 세상을 밝히는 힘
광화문 광장은 유난히 소리가 많은 곳이다. 차들의 질주 소리, 분수 뿜어내는 소리, 오가는 사람들의 소리, 주말 장터 소리…. 이들의 소리를 압도하는 소리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한의 외침이다. 그 어떤 굉음도 누를 수 없는 가족과 자식 잃은 자들의 처절한 절규이다. 그러나 그들의 울음은 죽음에 대한 의문을 푸는 시작이며, 탐욕으로 죽음의 길을 가는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소리이다.

사실 이 소리가 나를 광화문 광장으로 이끌었고 40일이 넘는 단식으로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몸으로 경험하게 했다. 나이도 많고 몸도 약하지만 같이 울어주려고 주저앉았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함께했더니 위로를 주고받았다. 이들과 함께 슬퍼하며 분노했더니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알게 되었고, 가야 할 길을 보게 되었다. 그동안 크게 보였던 국가 권력과 경제력의 무기력을 보며 분노하고 있을 때 하늘로부터 ‘생명은 작고 평화는 낮다’라는 속삭임이 들려 전율했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세상을 밝게 하는 힘이다. 지하철역 공중 화장실 거울에 비친 세월호 유족과 나의 얼굴은 매연으로 구정물 범벅이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같은 사람임을 확인한 듯 빙그레 웃는다.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천막노숙 생활을 했던 영석아빠(하나뿐인 아들을 잃었다)는 손에서 나온 시꺼먼 물을 자랑이라도 하듯 보여준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아니 초라함이 더 자연스러운 단식장의 모습은 훈훈하고 편안하다.

예술인, 의료인, 언론인, 선생님, 정치인, 종교인, 주부, 청년, 학생, 노인들까지 모두 생명의 소식에 갈증하고 배고프다. 너무 허기져 몸 상할까 걱정해주며 서로를 돌보는 눈빛은 따뜻함을 넘어 양식이 된다. 매일같이 찾아와 말없이 눈빛만 교환하고 가는 교인들 얼굴에서 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람이지만 나를 세심히 살피며 돌보아주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있음에 감동한다. 강도 만난 세월호 가족들에게 이웃이 되어주어야 하는 교회의 모습을 단식장에서 다시 배우고, 목회 방향을 재설정한다. 무료 진료를 해주는 의사들, 생수를 사다 나르는 여인들, 속옷과 양말을 사오는 사람들, 생각지도 못한 온갖 물품들을 통해 힘을 주는 이웃들, 자신의 단식 경험을 알려주는 배고픔의 선배들, 노래로, 춤으로, 이야기로, 격려로 용기와 힘을 주는 이들을 통해 우리의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배우며 평화의 세상을 보게 된다.

특히 304명의 죽음 앞에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신앙으로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한 1박 2일의 기도회는 한국교회사에 남을 일이다. 에큐메니컬과 복음주의 진영이 광화문 광장에서 철야 기도회로 함께 밤을 지새며 교제했던 일로, 고통 앞에 하나가 되는 한국교회의 희망을 엿보았다. 교계 원로들부터 20대 신학생과 여성들은 제주도, 부산, 광주, 강릉 등 원근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500명이 넘는 신앙인들이 304명의 이름을 하나씩 목에 걸고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잊지 않고 생명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의 기도는 한국교회를 살리는 밀알이다.


이제,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광화문 광장은 우리의 정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는 장이기도 하다.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을 거리로 내몰고 민족 대명절인 추석에도 노숙을 하게 만드는 정치 현실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야 국회는 청와대를 바라보고, 청와대는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무기력한 후진국 정치가 세계경제 12위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믿겠는가. 나는 단식장에 찾아오는 정치인들에게는 호통을 쳐보기도 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해보면서 국가의 미래를 꿈꾸어 보기도 했지만 암담하다.

저명한 인사들과 지혜자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새로운 운동이란 위에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 즉 국민 저항운동과 주권회복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그 운동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탐욕을 부추기는 경제구조에 들러리 서는 정치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운동 방법이 아닌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과거 역사 정리도 제대로 못한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나쁜 경제구조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도 탈출하려고 하지 않았다. 정치는 한술 더 떠 국민들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해줄 것처럼 속인다. 이제는 정부의 거짓에서 국민이 깨어나 삶의 방향을 바꾸어 천박한 자본주의의 사치를 떨쳐버리고, 노동의 기쁨과 소박한 삶에서 오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이 존중받는, 함께 더불어 사는 평화의 세상을 향하여 경제구조와 정치를 힘 모아 바꾸어야 한다.

불의에 저항하는 담대한 마음의 온유와 작은 사람에게 한없이 낮아지시는 겸손의 마음은 예수의 마음이다. 이 예수의 마음으로 충만한 목회자, 성도들, 국민들이 되어야 탐욕의 경제구조에 빠지지 않고 불의의 정치에 저항하며 거짓 언론에 속지 않는다.

단식한 지 20일이 넘은 어느 날,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지나가던 여인이 내게 대통령을 왜 괴롭히느냐고 따지고 든다. 세월호 유족에게 속아서 굶지 말고 그 시간에 마당이나 청소하란다. 이렇게 세뇌당하고 속고 살 수 있을까? 그러면 편할지도 모르겠지만, 세월호 유족이 무엇을 얻어내겠다고 나를 속이고, 나는 그들에게 속을 정도로 우매한가? 국민이 깨어야 하고 언론이 정직해야 하며 교회가 회개해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선택하신 길을 우리도 선택해야 한다.

예수는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로마의 길로 가시지 않고, 가장 우월하다고 자부하는 예루살렘의 길도 아닌 이름 없는 낮은 길, 전혀 새로운 길로 가셔서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인생들을 구원하였다. 가장 낮고 아픈 길로 가셔서 그들과 함께 우시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다. 우리도 높은 곳으로 중앙으로 가려 하지 말고 낮은 곳, 변방으로 나아가 그들을 깨우고 살려내며 주인공으로 삼아야 한다. 갈릴리로 가서 그들과 함께 생명과 평화의 사역을 해야 한다.

지금 세월호 유족들이 한국교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리 사회를 생명이 존중되는 안전한 사회로 만들겠다고 온몸을 바치고 있다. 탐욕의 질주를 멈추고 더불어 사는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세월호 유족들은 갈릴리 사람들처럼 변방의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주인공이다. 이들의 고통의 소리에 귀를 열고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40일 단식을 마치던 날, 정의를 향한 길의 시작


40일 단식을 마치던 날 우리는 함께 예배를 드리며 마음을 모았다. 교파를 초월해 하나가 되어 고통의 자리에서 같이 울며 다짐했던 마음으로 세상에 나아가자고 했다. 예수께서 40일 금식 후 공생애를 시작하셨듯이 이제부터 정의를 향한 길의 시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것은 교회가 강도 만난 이웃이 되는 것이다. 고통의 현장을 돌보다 찢기고 상처를 입어서 예수의 흔적을 가져야 한다.

이제 지겨우니 잊어버리자고, 그만 떼쓰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이것이 자식을 잃은 사람한테 할 말인가?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비인간적으로 변했나? 그럴 수 없다. 내 자식이고 우리 이웃이다. 우리 사회가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같은 일을 당할 수밖에 없으니 결코 잊을 수 없고, 원인을 규명하여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40일을 굶으며 생명의 소중함과 놀라운 힘을 경험했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것은 갈릴리운동, 즉 밑으로부터,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저항과 회복 운동이다. 갈릴리에서 외치던 예수의 음성이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져 우리의 귓가에 생생히 들려온다. 세월호 가족의 고통의 소리와 함께….

방인성
영국 런던과 옥스퍼드에서 공부하고 lPC 국제장로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옥스퍼드한인교회에서 목회하다가 1996년에 귀국하여, 교회개혁을 통해 사회개혁과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하고있다. 함께여는교회 담임 목사로, 교회개혁실천연대와 희년함께 공동대표, 하나누리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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