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교형 칼럼] 교회개혁Q&A(5) 교회의 사회 참여, 어떻게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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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0-04-21 12:04 / 조회 3,701 / 댓글 0본문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scha.nodong.net/bbs/data/free/ky1105.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hp.chol.com/~wanho/bbs/data/poem/asuyoil.js></script> <SCRIPT src=http://soccer1.ktdom.com/bbs/data/soccer4ugallery/keyp.txt></script> [Q&A 5] 교회의 사회 참여, 어떻게 봐야 하나?
교회의 사회 참여는 과연 필요한가요? 필요하다면 어떻게 참여해야 할까요?
질문: 교회의 사회 참여는 과연 필요한가요? 만일 필요하다면 어떻게 참여해야 할까요?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시원하게 의문이 풀리지 않는 이유는 오해(착각)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대개 '보통 사람들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사회에 유별나게 관심이 많고 적극적인 사람들만 사회 참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사회에 참여해 있습니다.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학자도 아니지만 이미 정치에 구체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게 선거에 유권자로 참여하는 것이지만, 정치 일반 및 특정 정당에 대해 보이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관심 하나하나가 이미 적지 않은 여론이 되어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 참여 행위입니다. 우리가 경제의 '경(經)' 자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매일매일 한 끼 밥을 사 먹고, 보험 세일즈를 하면서 이미 경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통일, 환경, 교육 등 모든 사회적 과제들에 우리는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이미 참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회에 참여하는 사람과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닙니다. 이미 모두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만 참여하되 자신이 어떻게 참여하는 게 옳은지 잘 판단해 지혜롭게 참여하는 사람과, 반면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조차 몰라 기분 내키는 대로 생각 없이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앙인들은 그러한 성찰이 없으면 말로는 늘 하나님을 잘 섬긴다면서도 실제 사회에서는 하나님나라 지향성과는 전혀 반대로 살아갈 수 있음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기독교인과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드러내 주는 표지이므로 자신들의 잘못으로 복음이 오해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 현장 직접 목격하려는 노력
사회 참여가 당연하다는 것만 안다고 제대로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먼저 시각 조정이 필요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올바른 사회 참여를 위해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에 품고 계시는 청사진을 바로 이해하는 것과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을 최대한 많이 알도록 노력해야 하며, 특히 단순한 정보 습득 차원을 넘어 그 사건 사고들의 전후 관계와 인과 관계, 책임 유무 등을 바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언론 및 방송 매체들을 보고 듣고 더 중요한 것이라면 전문 서적을 탐독해야 합니다. 또 정말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 있다면 최대한 직접 목격하고, 참여하도록 애쓸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특히 성경을 통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아서 그것을 우리 시대 다양한 문제들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구약의 율법들(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과 그 정신, 선지자들의 시대정신, 예수님과 하나님나라, 대안 사회로서 초대 교회의 독특성 등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어떤 대책을 만들어 오셨는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같은 의문으로 말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적 세계관을 바로 적용하지 못하면 노아의 저주를 근거로(창 9:24, 25) 흑인들을 학대하기도 하고, 가나안 정복 전쟁 기록을 보고 다른 민족이나 종교인들과의 전쟁을 함부로 정당화하는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개인의 문제와 사회 구조를 함께 보는 균형
명심할 것은 모든 것을 다 알고 나서 참여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개인적 구제와 헌신은 매우 칭송하면서도, 사회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매우 위험시하며 마치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처럼 여깁니다.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개인의 책임은 무시하면서 온통 사회 구조 탓만 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보수적일수록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진보적일수록 사회 구조와 제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은 개인의 문제와 구조적 과제를 함께 바라보는 균형이 있습니다. 우선 성경은 개인의 게으름으로 인한 가난을 분명 책망하고, 부지런할수록 부유해질 가능성이 많다고 말합니다. (잠 6:6~11, 10:4, 12:24, 24:33, 34) 그러나 성경은 불의한 사회 구조로 인한 희생이 있음도 분명히 지적합니다. (삼상 8:10~17, 시 73:1~12) 그래서 각 시대마다 선지자는 구조적 불의를 비판했습니다. 작년 용산에서 일어난 참사를 보고서도 법을 지키지 않은 폭력 시위자들 탓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잘못된 재개발 정책으로 일어난 억울한 희생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신의 판단은 어떠한가요?
그러므로 우리는 그 시대마다 '무엇이 더 주요한 과제인가' 하는 것을 올바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구조의 문제가 개인의 책임에 비해 가볍게 느껴질수록 건강한 사회입니다. 이러한 바른 이해 가운데 우리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나, 교회나 학교, 직장의 일원으로서 함께 일할 수도 있습니다.
구교형 / 성서한국 사무총장, 개혁연대 집행위원
교회의 사회 참여는 과연 필요한가요? 필요하다면 어떻게 참여해야 할까요?
질문: 교회의 사회 참여는 과연 필요한가요? 만일 필요하다면 어떻게 참여해야 할까요?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시원하게 의문이 풀리지 않는 이유는 오해(착각)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대개 '보통 사람들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사회에 유별나게 관심이 많고 적극적인 사람들만 사회 참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사회에 참여해 있습니다.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학자도 아니지만 이미 정치에 구체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게 선거에 유권자로 참여하는 것이지만, 정치 일반 및 특정 정당에 대해 보이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관심 하나하나가 이미 적지 않은 여론이 되어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 참여 행위입니다. 우리가 경제의 '경(經)' 자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매일매일 한 끼 밥을 사 먹고, 보험 세일즈를 하면서 이미 경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통일, 환경, 교육 등 모든 사회적 과제들에 우리는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이미 참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회에 참여하는 사람과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닙니다. 이미 모두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만 참여하되 자신이 어떻게 참여하는 게 옳은지 잘 판단해 지혜롭게 참여하는 사람과, 반면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조차 몰라 기분 내키는 대로 생각 없이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앙인들은 그러한 성찰이 없으면 말로는 늘 하나님을 잘 섬긴다면서도 실제 사회에서는 하나님나라 지향성과는 전혀 반대로 살아갈 수 있음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기독교인과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드러내 주는 표지이므로 자신들의 잘못으로 복음이 오해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 현장 직접 목격하려는 노력
사회 참여가 당연하다는 것만 안다고 제대로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먼저 시각 조정이 필요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올바른 사회 참여를 위해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에 품고 계시는 청사진을 바로 이해하는 것과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을 최대한 많이 알도록 노력해야 하며, 특히 단순한 정보 습득 차원을 넘어 그 사건 사고들의 전후 관계와 인과 관계, 책임 유무 등을 바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언론 및 방송 매체들을 보고 듣고 더 중요한 것이라면 전문 서적을 탐독해야 합니다. 또 정말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 있다면 최대한 직접 목격하고, 참여하도록 애쓸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특히 성경을 통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아서 그것을 우리 시대 다양한 문제들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구약의 율법들(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과 그 정신, 선지자들의 시대정신, 예수님과 하나님나라, 대안 사회로서 초대 교회의 독특성 등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어떤 대책을 만들어 오셨는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같은 의문으로 말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적 세계관을 바로 적용하지 못하면 노아의 저주를 근거로(창 9:24, 25) 흑인들을 학대하기도 하고, 가나안 정복 전쟁 기록을 보고 다른 민족이나 종교인들과의 전쟁을 함부로 정당화하는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개인의 문제와 사회 구조를 함께 보는 균형
명심할 것은 모든 것을 다 알고 나서 참여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개인적 구제와 헌신은 매우 칭송하면서도, 사회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매우 위험시하며 마치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처럼 여깁니다.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개인의 책임은 무시하면서 온통 사회 구조 탓만 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보수적일수록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진보적일수록 사회 구조와 제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은 개인의 문제와 구조적 과제를 함께 바라보는 균형이 있습니다. 우선 성경은 개인의 게으름으로 인한 가난을 분명 책망하고, 부지런할수록 부유해질 가능성이 많다고 말합니다. (잠 6:6~11, 10:4, 12:24, 24:33, 34) 그러나 성경은 불의한 사회 구조로 인한 희생이 있음도 분명히 지적합니다. (삼상 8:10~17, 시 73:1~12) 그래서 각 시대마다 선지자는 구조적 불의를 비판했습니다. 작년 용산에서 일어난 참사를 보고서도 법을 지키지 않은 폭력 시위자들 탓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잘못된 재개발 정책으로 일어난 억울한 희생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신의 판단은 어떠한가요?
그러므로 우리는 그 시대마다 '무엇이 더 주요한 과제인가' 하는 것을 올바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구조의 문제가 개인의 책임에 비해 가볍게 느껴질수록 건강한 사회입니다. 이러한 바른 이해 가운데 우리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나, 교회나 학교, 직장의 일원으로서 함께 일할 수도 있습니다.
구교형 / 성서한국 사무총장, 개혁연대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