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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성규 칼럼] 교회개혁Q&A(12) 무엇에 헌신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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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0-08-06 17:36 / 조회 3,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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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헌신해야 합니까?

헌신은 '몸과 마음을 바쳐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하는 것'


[질문] 무엇에 헌신해야 합니까?

비기독인에게는 낯설지만, 기독인에게는 헌신이란 말이 매우 익숙합니다. 상대적으로 많이 듣고,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3 때부터 다녔던 교회에서부터 부목회자로서 8년 넘게 시무했던 교회에까지 제 기억 속에 주일 오후(밤)에 드려지는 예배는 대부분 헌신 예배였습니다. 새해 첫 주일 당회의 헌신 예배를 시작으로 10월까지 전(도선교)회별, 교회 학교 부서별, 사역별 등등 한마디로 주일 오후 예배는 헌신 예배의 연속이었습니다. 경험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의 기독인이라면 누구나 저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헌신 예배 횟수만큼이나 수많은 헌신서를 작성했습니다. 1년에 수차례 하는 특별 새벽 기도회, 선교 후원 헌금, 여름 사역 후원 헌금, 새 생명 축제(총동원 주일)와 같은 특별 행사와 예배당 건축, 기물 구입, 기도원․선교 센터 건축, 목회자 사택을 살 때면 으레 헌신 예배와 함께 헌신서는 필수였습니다. 지난 30여 년간의 신앙생활 속에 제가 작성한 헌신서를 헤아려 보면 100장도 족히 넘을 듯합니다.

이 밖에도 교회 생활 속에서 주방 봉사, 교회 청소, 주차 안내, 노방 전도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우리 기독인에게 헌신이란 말은 매우 익숙합니다. 한마디로 제가 경험한 교회 생활은 그야말로 헌신 범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수많은 헌신을 하다 보니 우리에게 헌신의 진정한 의미는 사라지고, 특별한 행사나 집회를 통해 의례적으로 한 번 참여하거나, 교회가 감당해야 할 크고 작은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바른 헌신이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독인에게 헌신은 '몸과 마음을 바쳐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참다운 헌신은 그분의 부르심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과정 없이 무조건 교회 일에 참여하는 것을 헌신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헌신을 이해할 때, 성경에서 말하는 다음 세 가지 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인생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당신의 형상과 모양(창 1:26)으로 만드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간이 이 땅을 다스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창 2:15)

둘째,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합니다. 이는 반대로 모든 것을 바치지 않을 일이라면 헌신할 일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빌 3:13~14)

셋째, 나만을 위한 삶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4)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나만을 위해 살던 자가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

헌신의 출발은 무엇일까요. 헌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롬 6:23) 당연히 사망해야 할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서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롬 5:8) 헌신은 바로 이 사랑으로 인해 구원받았기에 조금이라도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구원받은 자가 자발적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기독인은 무엇에, 어떤 일에 헌신해야 할까요. 호세아 선지자와 사도 바울에게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호세아 4장 6절을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망했던 이유는 '지식' 곧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로 그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자신의 과거 전부를 배설물로 여기는 이유에 대해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8절)라고 말합니다. 호세아나, 바울이나 동일하게 주장하는 것은 믿는 자는 그 어떤 일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먼저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서 '그리스도(하나님)를 알지 못하는 자'를 교회 일에 뛰어들게 하고, 그가 헌신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교회 일을 하다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비중 있는 일을 하다가 교회를 떠나는 일이 많은 한국교회의 현실을 볼 때, 그리 합당한 방법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알아 갈 때 인생의 목적이 확인됩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드신 목적을 찾았으니, 평생 모든 것을 바쳐 해야 할 일과 그 일의 목적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나 자신만을 위해 살던 자가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마 22:37~40)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헌신은 먼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하는 것입니다.

지식이라는 말을 들으니 책을 펴 놓고 공부하라는 것 같아서 겁이 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자만 신앙생활을 잘할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헌신하기로 결심했다면, 그것은 책상보다 일상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책의 제목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독인은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아 가고,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그리스도의 삶과 닮아 가게 될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나님께 질문하는 자로 헌신하십시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묻겠다는 자세를 통해 그리스도를 조금씩 알아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맡겨 주시는 '일'도 생겨날 것입니다.

정성규 / 부천 예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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