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득훈 칼럼]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본 한미FTA(4)[뉴스앤조이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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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8-03-03 11:03 / 조회 5,282 / 댓글 0본문

3.2. 사회적 평등은 맘몬숭배와 경쟁절대주의에 도전한다
사회양극화의 심화라는 치명적인 결과가 초대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미FTA를 추구하려는 그 힘과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가히 합리적 사고를 뛰어 넘는 종교적인 힘과 유사하다. 그 힘은 바로 맘몬숭배와 경쟁절대주의다. 사회적 평등실현을 위해선 이 두 가지 힘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도전해야 한다.
3.2.1. 맘몬숭배
이는 무엇보다도 맘몬숭배에서 흘러나오는 힘이다. 네덜란드의 기독교경제학자인 하우쯔바르트는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지구화 현상을 분석한 책에서 현대인들이 맘몬을 숭배하다 집단적 최면에 걸려 있다고 진단한다. 그들은 경제적 성장주의 신화에 빠져서 ‘성장이 항상 나와 함께 하리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노래한다. 이는 소비주의로 직결되어 ‘좀 더 많은 것이 항상 좀 더 적은 것보다 낫고 다른 대안은 없다’는 확신에 이르게 한다.
무제한적인 경제적․기술적 팽창을 신봉하는 이념 즉 맘몬을 숭배하는 이념의 노예로 전락한 것이다. 경제적 풍요를 통해 자율적이고 무제한적인 자기 확대를 실현할 수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는 종교성을 띤 신화나 다름없다. 같은 맥락에서 허경회도 현대사회의 맘몬숭배를 개탄한다.
“신은 죽었다. 그러나 돈의 신, 맘몬은 예외이다. 우리들 현대인에게 그는 유일하게 현재(顯在)하는 신이다. 우리들은 ‘이성 잃은 경제 이성’으로 유일하게 현재하는 신, 맘몬의 영광을 이 땅에 재현하는 거룩한 맘몬의 성도(聖徒)들이다. 우리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우리의 생명 그 자체인 노동을 스스로 쥐어짜 내며 부를 간구하고 있고, 맘몬은 반색하며 우리에게 ‘마조히스트(masochist)의 자학적 풍요’를 하사하고 있다. 또한 우리들은 가난으로 고통받는 다른 우리들에게 등을 돌리며 나의 부를 간구하고 있고, 맘몬은 우리에게 기꺼이 ‘샤일록(Shylock)의 냉혹한 풍요’를 하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맘몬에게 우리의 건강과 우리 후손의 멸종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종식을 번제물로 바치며 부를 간구하고 있고, 맘몬은 우리에게 흔쾌히 ‘학살자(slaughterer)의 잔혹한 풍요’를 하사하고 있다.”
이렇게 잔혹한 현대맘몬숭배의 진원지는 놀랍게도 기독교국가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미국임을 1991년 12월 31일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렇게 간파하였다.
“전능하신 신(神) 대신 시장이 등장했다. 이 신의 현현(顯現)은 뉴욕의 주가지수(Dow-Jones-Index)이고, 그의 성체는 미국의 달러이며, 그의 미사는 환율조정이다. 그리고 그의 나라는 지금 크레믈린의 지도자까지도 찬양하는 자본주의적 보편문명이다.”
이것이 우리가 FTA를 맺으려는 나라의 경제구조적 진상이다. 물론 이것이 미국이란 나라의 전부는 아니다. 그 안에는 선의의 사람,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자본주의 지배세력 가운데도 개인도덕의 차원에서 탁월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사회윤리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어마어마한 피해를 가져다주는 불의한 구조와 제도의 차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구성원이 개인적으로 도덕적 인품과 선한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구조악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외면한다면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맘몬의 힘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는 미국자본주의 구조악에 눈감을 수 없다. 더구나 그런 죄악 된 구조에 한국을 적극적으로 편입시켜 함께 더 열정적인 맘몬숭배라는 집단적 최면상태에 빠지게 하려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을 손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강력한 저항을 촉구한다. 예수님은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을 대항하여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맘몬이라고 경고한 바가 있다(마 6:24).
그런 점에서 세계자본주의의 문제는 단순히 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영적인 문제다. 미국식 자본주의 구조와 제도가 놀라운 견고함을 갖고 있는 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경제적 욕망 때문이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맘몬이 배후세력으로 그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와의 싸움은 바로 그런 점에서 영적인 전쟁이다. 그리스도인은 골리앗 앞의 다윗의 심정으로 이 전쟁터에 과감히 뛰어 들어야 한다.
3.2.2. 경쟁절대주의
맘몬숭배와 아울러 한미FTA를 추동하는 또 하나의 세력은 경쟁절대주의 이념이다. 물론 서로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한 제한된 경쟁, 건전한 경쟁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맞는 일이고 바람직한 것이다. 허나 그것이 경쟁절대주의라는 하나의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는 인간본성의 다른 측면 즉 관계적 존재, 공동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사회철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그러한 인간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정, 시민사회 내의 다양한 집단 즉 소위 ‘부분적 공동체’가 있다고 주장한다. 냉혹한 경쟁은 시장에서만 벌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장의 경쟁논리가 현대사회 구석구석에 얼마나 넓게 그리고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가를 애써 외면하는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하우쯔바르트가 잘 지적한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경쟁논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 널리 그리고 아주 깊이 침투하고 있다. 학교, 스포츠 기관, 심지어는 병원까지 시장의 경쟁논리를 수용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경쟁원리는 가히 전체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기업은 치열한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정보공학을 최대한 활용하여 각종 미디어와 통신망에 연결된 인간의 마음 깊숙이 침투해 들어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거의 무방비상태로 다양한 상품과 관련된 정보홍수에 노출되어 진정한 인간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행복한 삶에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새로운 희소성이 인위적으로 창출된다.
문제는 경쟁논리에 철저히 맹종하는 시장은 그 희소성이 충족되도록 세계자원을 동원하는 반면 세계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과 관련된 긴급한 필요를 채우는 일, 즉 식량과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데는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이 문제는 정부나 구호단체들에게 넘겨진다. 정부에서 도움을 받는 경우 그나마 다행이지만 구호단체를 통해 도움을 받을 경우 수혜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기 일쑤다. 시장에는 냉혹한 경쟁과 철저히 이기적인 행동만이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국 최선의 공익을 성취하게 된다는 그럴듯한 논리에 더 이상 무비판적으로 현혹돼선 안 된다. 시장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는 경쟁절대주의가 초래하고 있는 수많은 병폐를 직시하고 도전해야 한다.
맺음말
그리스도인이 한미FTA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회적 약자의 관점과 과학적 역량을 갖춘 사회분석도구를 우선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사다리 걷어 차기론’의 관점에서 볼 때 한미FTA는 장기적으로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미국이 요구하는 바를 받아들이게 되면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도 불 본 듯 뻔한 일이다.
성경은 이러한 경제현실에 대하여 신앙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준거로 하나님나라의 정의를 제시한다. 하나님나라의 정의의 핵심은 가난한 자의 권리를 회복시켜줌으로 공동체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데 있다. 하나님나라의 정의는 소극적 자유뿐 아니라 적극적 자유를 요청한다. 또한 평등을 요청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은사와 활동을 존중하기 때문에 이기심과 죄가 없는 이상적 상황이라면 경제적인 면에서 완벽한 평등을 누리길 원하실 것이다. 그래도 자유와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기적인 면이 있고 죄를 질 수밖에 없는 인간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려면 평등은 어느 정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롤즈의 정의론을 기독교적으로 좀더 발전시키면 평등이 요구하는 바에 대한 적절한 지침을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은 기본적인 필요에 대한 평등한 권리의 보장, 사회적 지위와 직책을 얻는 데 균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권리, 가장 불리한 계층의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조건하에서만이 경제적 불평등을 용인할 수 있는 권리, 가장 불리한 계층의 자기 존중감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 불평등에 일정한 제한을 가할 수 있는 권리 등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의 정의가 요청하는 자유와 평등의 관점에서 현재 진행 중에 있는 한미FTA협상을 평가한다면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그 체결을 저지할 수밖에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당한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요구를 억누르는 무기로 한미FTA가 부추기고 있는 맘몬사상과 경쟁절대주의에 대하여도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구체적 운동과 실천이다. 냉소주의나 패배주의는 사회변혁을 열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함정이다. 하나님나라의 전망을 궁극적 희망으로 가슴에 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한다.
첫째, 지금은 그람시가 주장한 진지전 전략을 채택해야 할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뜻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단체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둘째, 같은 뜻을 품은 시민운동 단체와도 연대하여 시민사회 내 헤게모니를 확립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은 혁명의 시기는 아니다. 시민사회에서 누가 헤게모니를 장악하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의 방향은 상당부분 결정될 전망이다. 한미FTA를 통해 한국을 마침내 집어삼키려 하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거대한 물결을 막아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도 결국 시민사회라고 보인다. 시민사회의 힘으로 한국 사회와 지구촌이 하나님나라의 정의로운 모습에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워져 가기를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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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득훈/ 언덕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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