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방인성 칼럼] 혼동하는 권위와 권위주의[뉴조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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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6-11-03 17:21 / 조회 3,922 / 댓글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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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터교회 방인성 목사, 직분을 앞세워 목소리 높이는 것은 잘못
2006년 11월 01일 (수) 방인성 ( ispang )
목회 초기에 원로목사님과 내가 당회 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에 권사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다른 성도들의 불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말씀하시면서 얼마나 안절부절 하시는지 옆에 있는 내가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다. 어렵게 권사님의 말씀이 마치자 원로목사님께서 “권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으셨다. 이때 질문하시는 목사님의 표정과 위엄에 나도 놀랐다. 권사님은 “아니요, 아니요, 성도들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 드릴 뿐…” 하며 채 말씀을 끝내지 못하셨다. 잠시 사무실의 분위기는 무거웠고 그것으로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이후로 나는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모른다.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스스로들 잘 소화하신 것 같다.
원로목사님의 영향인지 아니면 보수적인 우리 교회의 전통인지는 몰라도 목사의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성도들이 새로 온 젊은 목사인 나에게도 “주의 종님,” “제사장님”, “주의 사자”등등의 호칭으로 불러주었다. 원로목사님 옆에는 어렵기도, 쑥스럽기도 하여 감히(?) 가시는 분은 몇몇 특정의 권사님들이셨다고 한다. 우리 교회 성도들께서는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이 몸에 잘 배어 있으셨다. 목사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리지 않으려고 목사님께 대부분의 일을 맡겼다. 그래서 인지 성도들은 내가 고생하러 왔다고 얼마나 마음을 다해 대접해주시는지 몸 둘 바를 몰랐다. 이렇게 극진한 대접에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하였다. 대부분의 일을 목사에게 맡기고 바라만보는 성도님들을 볼 때 같이 일을 하려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원로목사님은 재정은 물론 교회의 중요한 권한은 혼자 짊어지고 계셨다. 보통 권한의 집중은 폐쇄적이 되기 쉽다. 그래서인지 우리 교회 당회는 외부에서 알기 힘들었고 소문으로 들어 성도들은 눈치를 채는 정도였다. 어느 날 당회에서의 큰 소리가 오고가는 것을 처음 경험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자유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교회 문화에서 한번 발언을 시작하면 자신이 의도했던 것보다 격렬하게 말하게 된다. 하여튼 우리 당회의 토론 모습은 심각했다. 나는 선임 장로님께 당회가 이렇게 큰소리로 오고가면 회의 진행하기 힘들다고 말씀을 드렸다. 나의 말을 들은 장로님은 놀라시면서 그러지 않도록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목소리가 큰 사람이 많고 경상도 억양 때문에 더 크게 들렸을 거라고 위로해 주셨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목사는 말씀과 인격의 권위가 있어야하고 일군들과 성도들도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범으로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제도적인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을 앞세워 목소리 높이는 것은 권위주의다. 우리 교회가 이것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 주에 계속)
방인성 / 성터교회 목사
성터교회 방인성 목사, 직분을 앞세워 목소리 높이는 것은 잘못
2006년 11월 01일 (수) 방인성 ( ispang )
목회 초기에 원로목사님과 내가 당회 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에 권사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다른 성도들의 불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말씀하시면서 얼마나 안절부절 하시는지 옆에 있는 내가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다. 어렵게 권사님의 말씀이 마치자 원로목사님께서 “권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으셨다. 이때 질문하시는 목사님의 표정과 위엄에 나도 놀랐다. 권사님은 “아니요, 아니요, 성도들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 드릴 뿐…” 하며 채 말씀을 끝내지 못하셨다. 잠시 사무실의 분위기는 무거웠고 그것으로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이후로 나는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모른다.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스스로들 잘 소화하신 것 같다.
원로목사님의 영향인지 아니면 보수적인 우리 교회의 전통인지는 몰라도 목사의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성도들이 새로 온 젊은 목사인 나에게도 “주의 종님,” “제사장님”, “주의 사자”등등의 호칭으로 불러주었다. 원로목사님 옆에는 어렵기도, 쑥스럽기도 하여 감히(?) 가시는 분은 몇몇 특정의 권사님들이셨다고 한다. 우리 교회 성도들께서는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이 몸에 잘 배어 있으셨다. 목사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리지 않으려고 목사님께 대부분의 일을 맡겼다. 그래서 인지 성도들은 내가 고생하러 왔다고 얼마나 마음을 다해 대접해주시는지 몸 둘 바를 몰랐다. 이렇게 극진한 대접에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하였다. 대부분의 일을 목사에게 맡기고 바라만보는 성도님들을 볼 때 같이 일을 하려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원로목사님은 재정은 물론 교회의 중요한 권한은 혼자 짊어지고 계셨다. 보통 권한의 집중은 폐쇄적이 되기 쉽다. 그래서인지 우리 교회 당회는 외부에서 알기 힘들었고 소문으로 들어 성도들은 눈치를 채는 정도였다. 어느 날 당회에서의 큰 소리가 오고가는 것을 처음 경험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자유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교회 문화에서 한번 발언을 시작하면 자신이 의도했던 것보다 격렬하게 말하게 된다. 하여튼 우리 당회의 토론 모습은 심각했다. 나는 선임 장로님께 당회가 이렇게 큰소리로 오고가면 회의 진행하기 힘들다고 말씀을 드렸다. 나의 말을 들은 장로님은 놀라시면서 그러지 않도록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목소리가 큰 사람이 많고 경상도 억양 때문에 더 크게 들렸을 거라고 위로해 주셨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목사는 말씀과 인격의 권위가 있어야하고 일군들과 성도들도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범으로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제도적인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을 앞세워 목소리 높이는 것은 권위주의다. 우리 교회가 이것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 주에 계속)
방인성 / 성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