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득훈 칼럼]교회가 올라야 할 장엄한 고지[뉴조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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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6-05-22 12:05 / 조회 4,451 / 댓글0본문
교회가 올라야 할 장엄한 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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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에 다시 한번 아무개 장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열심을 품은 교계지도자들의 움직임이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물론 요셉과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선한 사람이 나라의 실권자가 되어서 정의와 평화로 섬기게 되는 것은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고지론’과 ‘승리주의’라는 무서운 유혹이 파고들 수 있습니다. 고지론과 승리주의의 함정 고지론의 약점은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높은 지위와 권력을 차지해 고지를 장악해야만 그 영향력으로 하나님나라의 뜻을 펼쳐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비전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리차드 마우가 <무례한 기독교>란 저서에서 우려한 승리주의의 함정이 있습니다. 물론 궁극적 승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약속해주신 바이기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힘차게 정진해야 합니다. 그러나 승리주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은 역사의 매 국면에서 항상 승리를 쟁취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그 승리의 힘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확장해갈 수 있는 것처럼 부추깁니다. 승리주의에 함몰되면 하나님나라 확장을 빙자하여 권력을 추구하고 휘두르게 됩니다. 물리적 힘을 추구하는 교회의 비극 교회사는 고지론과 승리주의 함정에 빠져 물리적 힘을 추구한 교회들이 자초한 비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비극은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는 로마제국에 십자가를 전쟁승리의 상징으로 빌려주는 대신 국가권력의 날개아래 자신을 보호하고 확장하려 했습니다. <킹덤 오브 헤븐>이라는 영화에서 잘 그려졌듯이 회교도들을 상대로 한 중세 십자군전쟁에서도 십자가는 기독교를 수호하는 전쟁의 정당성과 승리를 보장하는 거대한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이런 비극은 개신교 선교역사로도 이어집니다. 영국정부가 자유로운 마약 무역를 강요하기 위하여 중국과 마약 전쟁을 벌인 직후, 수많은 영국선교사들이 중국으로 밀려들어갔습니다. 그 중에 깨어 있는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모든 선교사들이 일 년 내내 행한 선보다 마약이 일주일 동안 미친 해악이 더 크다.’ 한국교회 역시 많은 지도자들이 물리적·세속적 힘에 의지해서 자신을 보호하고 확장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들어 왔습니다. 독재정권 하에서는 침묵 내지는 동조를 통해 그들의 날개 그늘 아래 거하였습니다. 민주화가 되어 정부와 대통령의 힘이 약해지자 툭하면 시청 앞 광장으로 무수한 성도들을 끌어 모아놓고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습니다. 기독교정당을 창당하는가 하면 또 다시 장로 대통령을 만들어 청와대를 장악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비리를 파헤치는 방송국을 위협하는가하면 최근엔 다빈치 코드 영화상영 금지를 위해 사법권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정말 갖춰야 할 힘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갖춰야 할 진정한 힘 예수님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칼과 몽둥이의 힘으로 자신을 제압하려 할 때, 오직 말씀과 평화의 힘에 의지하였습니다(막 14:43~49). 이를 이미 내다본 예리한 유다는 일찌감치 예수를 팔아넘겼고, 뒤늦게 깨달은 다른 제자들은 줄행랑을 쳤습니다. 실로 교회가 '오직 말씀'과 '평화의 힘'에 의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세상이 폭력과 권력에 의지할 때 교회는 말씀이 담고 있는 영적 힘, 즉 평화의 힘을 기어이 믿어야 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우리의 창조적 항거가 물리적 폭력으로 전락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물리적 힘에 영적 힘으로 맞서는 장엄한 고지에 올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평화의 힘에만 의존함으로써 장엄한 고지에 오르셨습니다.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예수님을 따를 것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박득훈/언덕교회 목사,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