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교형 칼럼]강남목사들, 성경대로 저주표적설교해야한다[뉴조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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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5-09-08 14:57 / 조회 5,294 / 댓글 2본문
강남 목사들, 성경대로 저주·표적설교해야 한다(1) |
선지자 정신은 사적 분풀이가 아니라 사회화된 죄 구조를 지적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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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형(ku6699) ku6699@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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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이다. 우리 단체는 목회자가 자기 맘에 안든다고 제멋대로 성도들에게 저주를 선포하고(저주설교), 군기를 잡기 위해 특정인을 지명해서 시범케이스로 면박을 주는 설교(표적설교)하는 것을 대표적인 목회자 탈선사례로 꼽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성경 정신에 따라 올바르게 하지 않아 문제이지, 올바른 설교는 때로 저주와 표적이 들어가야 한다. 표적설교의 전형은 단연 나단 선지자 잘 알다시피 나단 선지자는 위대한 왕이라 일컬어지는 다윗 왕이 부하들은 전쟁터에 내보내놓고서도 한가로이 성벽을 거닐다가 행한 밧세바와의 간음사건과 이를 숨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살인교사사건을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알게 되었다.(삼하 11장) 그는 다윗의 범죄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분명히 지적할 필요를 느꼈고,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남의 것을 빼앗으려 했던 어느 부자의 이야기를 하며 다윗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다윗이 공분을 느끼자(삼하 12장5~6절), 기다렸다는 듯이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7절)라고 분명히 지적한다. 다시 말하지만 표적설교의 특징은 심각한 문제의 핵심을 에둘러 피하여 적당히 돌아가는 게 아니라, 정확히 지적하여 구체적으로 회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수사처럼 되뇌이는 '통석의 념', '유감표명' 같은 반응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죄로부터 돌아서도록 하는 것이다. 표적설교와 저주설교를 폭넓게 활용한 세례 요한 그는 험한 광야길을 마다않고 찾아와서 세례를 받으려하는 기특한 유대인들을 대면하자마자 악담을 퍼붓는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들에게 다가올 진노를 피하라고 일러주더냐?"(눅 3장7절) 전혀 뜻밖의 반응에 놀란 유대인들은 한결같이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을 때, 요한은 막연하게 "예수 잘 믿어라"고 하지 않고, 찾아온 사람들의 면면에 따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동포들을 등쳐먹는다고 온갖 욕을 먹지만 '그래도 이 직업만큼 안정되고 이 험한 시대에 고수입을 보장하는 일자리가 어디 있나'라고 생각하는 세리에게 "정해진 세금수입 이상을 더 받는 폭리를 취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꾸짖는다.(13절) 이번에는 백성들의 일상생활에서는 황제보다 더 큰 세도를 부리고 돌아다니는 군인들(일제시대 호랑이보다 무섭다던 순사를 생각해 보라)이 찾아왔을 때는 "아무에게나 힘으로 억지로 빼앗지 말고 주는 봉급을 만족할 줄 알고 살라"고 가르친다.(14절) 세례 요한은 바로 그게 하늘나라 새 백성으로 세례를 받을만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8절)이며, '좋은 열매'(9절)라는 것이다. 아마 이들은 처음에 '용한 선지자로 알려진 요한의 축복을 받고 그 대가로 적당히 헌금이나 하면 되겠지'라는 기대를 안고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습관화된 죄악의 굴레를 벗어버릴 결단 없이 적당히 종교적 위로나 얻기 원하는 그들의 속셈에 동조하지 않았다. 왕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요한의 이러한 표적설교, 저주설교는 결국 그의 죽음을 불러 왔다.(막 6장17~18절) 그러나 이렇게 정신이 번쩍 나는 자극적인 설교의 전형은 뭐니뭐니해도 예수님이다. 특히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온갖 자기 의에 빠져 폼 재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여지없이 저주를 쏟아 부으셨다. 마태복음 23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한 격앙된 주님의 욕설만 기록하고 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마 23장 13, 15, 23, 25, 27, 29절),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33절) 이게 바로 성경이 주장하는 마땅히 행해야 할 표적설교, 저주설교다. 그럼 지금 한국교회 강단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교회다움을 위해, 사회의 공의와 평화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설교는 하지 않으면서도 사사로운 이해관계와 정치적인 득실에 따라서는 멋대로 저주와 폭언, 폭력을 일삼고 있다. "헌금 많이 바치면 축복받고 인색하면 암 걸려 죽는다." "목사에게 대항하면 죽는다, 망한다." 제 맘에 맞는다고 복주고, 제 맘에 들지 않는다고 멋대로 저주를 선포하는 그런 강단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경험했는가? "예언자라는 것들, 입에 먹을 것만 물려주면 만사 잘되어 간다고 떠들다가도 입에 아무것도 넣어주지 않으면 트집을 잡는구나!"(믹 3장 5정/공동번역) 성경에서 선지자들이 나라와 백성들을 향해 독설을 퍼부을 때는 그러한 죄가 그저 개개인들의 허물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공동체적인 기반을 심각하게 허무는 습성이 되어갈 때 등장한다. 교회의 교회다움을 깨고 사회의 건강함을 무너뜨릴 때 선지자들을 거침없이 나라와 백성들을 향해 저주설교와 표적설교를 행했다. 그렇다면 2005년 대한민국 사회에 이러한 설교가 필요한가? 나는 감히 일확천금을 노리고, 부자만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념이 굳어져가는 우리 현실에서 이러한 불의를 바로잡아야 할 교회와 성도들이 오히려 이를 부추기고 돈을 숭배하는 원흉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악담을 퍼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교형 /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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