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설] 도덕적 주권회복, 신학교부터 [기독신문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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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5-06-09 16:47 / 조회 4,619 / 댓글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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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선교단체와 대학의 기독청년들이 컨닝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일반학교에서도 푸른시험보기운동 등 컨닝을 배제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컨닝이 얼마나 일반화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컨닝은 작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큼 보편화되면 우리 사회는 점차 도덕적으로 회복불가능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컨닝은 일반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학교에서의 컨닝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만큼 심각성을 더해 가고 있다. 주의 종을 기르는 선지동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신학생 모두가 컨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몰지각한 소수의 학생들이 신학생으로서의 신분을 망각한 채 부정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부정행위를 질타하면 오히려 부정행위자들이 더 큰 소리를 친다. 그런 학생을 대하면 도저히 앞으로 목회자 될 분 같지 않다는 어느 신학교 교직원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신학교는 학생들에게 신전의식(Coram Deo)을 가지도록 교육하고 있다. 그럼에도 컨닝과 같은 시험부정행위가 늘어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살아계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시험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컨닝(cunning)이라는 단어는 원래 ‘영리하다, 교활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일본인들이 시험부정에 대해 사용하고, 우리도 따라 사용하고 있다. 구미인들은 컨닝이라는 말 대신 ‘속이기’(cheating)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신학교는 부정직한 종을 키우는 곳이 아니다. 차제에 학교 당국은 컨닝에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 바란다. 미국 대학의 경우 컨닝하다 적발되면 대부분 제적된다. 졸업 후 컨닝 사실이 밝혀지면 졸업마저 취소되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 국가고시에서 컨닝하다 적발되면 시험무효화는 물론 몇 년간 국가고시에 응시할 자격이 박탈된다.
우리는 컨닝으로 좋은 점수를 받는 신학생이기보다 비록 성적이 낮더라도 주님 앞에 정직하고 양심적인 목회자를 더 원한다. 그럼에도 계속 컨닝을 한다면 그런 학생은 신학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신학교는 경건을 훈련하는 곳이다. 시험에서도 경건이 드러나야 한다. 시험감독 없이도 정직하게 시험이 치러지는 풍토가 조성되기 바란다. 신학교에서부터 도덕적 주도권이 회복된다면 한국교회의 앞날은 밝아질 것이다.
학원선교단체와 대학의 기독청년들이 컨닝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일반학교에서도 푸른시험보기운동 등 컨닝을 배제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컨닝이 얼마나 일반화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컨닝은 작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큼 보편화되면 우리 사회는 점차 도덕적으로 회복불가능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컨닝은 일반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학교에서의 컨닝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만큼 심각성을 더해 가고 있다. 주의 종을 기르는 선지동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신학생 모두가 컨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몰지각한 소수의 학생들이 신학생으로서의 신분을 망각한 채 부정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부정행위를 질타하면 오히려 부정행위자들이 더 큰 소리를 친다. 그런 학생을 대하면 도저히 앞으로 목회자 될 분 같지 않다는 어느 신학교 교직원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신학교는 학생들에게 신전의식(Coram Deo)을 가지도록 교육하고 있다. 그럼에도 컨닝과 같은 시험부정행위가 늘어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살아계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시험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컨닝(cunning)이라는 단어는 원래 ‘영리하다, 교활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일본인들이 시험부정에 대해 사용하고, 우리도 따라 사용하고 있다. 구미인들은 컨닝이라는 말 대신 ‘속이기’(cheating)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신학교는 부정직한 종을 키우는 곳이 아니다. 차제에 학교 당국은 컨닝에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 바란다. 미국 대학의 경우 컨닝하다 적발되면 대부분 제적된다. 졸업 후 컨닝 사실이 밝혀지면 졸업마저 취소되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 국가고시에서 컨닝하다 적발되면 시험무효화는 물론 몇 년간 국가고시에 응시할 자격이 박탈된다.
우리는 컨닝으로 좋은 점수를 받는 신학생이기보다 비록 성적이 낮더라도 주님 앞에 정직하고 양심적인 목회자를 더 원한다. 그럼에도 계속 컨닝을 한다면 그런 학생은 신학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신학교는 경건을 훈련하는 곳이다. 시험에서도 경건이 드러나야 한다. 시험감독 없이도 정직하게 시험이 치러지는 풍토가 조성되기 바란다. 신학교에서부터 도덕적 주도권이 회복된다면 한국교회의 앞날은 밝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