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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독교는 왜 세상에서 버림받게 되었는가[구교형/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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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3-06-08 17:03 / 조회 5,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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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구교형의 시시비비
기독교는 왜 세상에서 버림받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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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형 목사.
지금 한국기독교의 형편이 어렵기는 어렵다. 정부당국의 조사에서 뿐 아니라 교계 스스로의 조사를 보아도 한국기독교의 교세는 크게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단순한 교세의 감소만이 아니라 한국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거리에서, 각 가정에서 만나는 기독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은 부정적이다 못해 위태하기까지 하다. 물론 그들의 말과 주장들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목사로서 그런 지적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가슴 아프고 슬픈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너희가 몰라서 그렇지 좋은 면들도 많다"라고 얼버무리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한 영혼구원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잘못은 솔직히 시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증해야 할 진리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 글은 그런 심정을 담았다. 그러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기독교를 싫어하게 되었는가?

1. 제1원인: 우선은 기독교인이 싫어서다. 왜 싫을까? 온갖 좋은 말은 다 하고 돌아다니지만, 정작 더 희생적이거나 더 헌신적이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 온갖 위선과 거짓을 자행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사이비나 이단, 어떤 특정 기도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버젓한 간판을 달고 있는 정통 교회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평범한 기독교인들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자화상이다.

오죽하면 판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재판이 바로 교회 내 분쟁이라고 한다. 어떻게 판결해도 패소한 측에서 몰려와서 항의하고, 싸우고, 욕하고…. 또 큰 사건만 터지면 그 속에는 어김없이 장로님, 권사님의 직함들이 거론되곤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를 정말로 싫어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를 종교탄압, 기독교탄압이라고 반발한다. 과연 그럴까. 현재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을 대개는 약 20% 정도로 잡는다. 그런데 사회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정관계 주요인사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평균의 2배 가까운 약 40% 정도라고 한다. 종교대비로 최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져간다는 것은 결국 외부적 탄압이 아니라 기독교인 스스로도 자기 모습에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가장 먼저 그걸 인정해야 한다.

2. 제2원인: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기독교의 복음진리, 교리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여타 다른 종교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길(진리)은 오직 하나다. 그리고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라는 유일성의 강조다. 그런데 이게 인간본성과 현대인들의 마음에 도무지 들지 않는다.

우리는 본성상 죄인인 인간이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싫어한다. 게다가 부처님, 공자님 말씀도 예수님 말씀만큼이나 좋은 건데 굳이 예수님만 진리라고 하는 것은 무슨 독선이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원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가치가 확산되어 가는 이 시대에 기독교는 매우 시대에 뒤떨어진 가부장적이고, 배타적인 이미지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제법 한다하는 지식인들은 모두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기독교를 공격하고 그것들은 어김없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예수는 없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들과 도올 김용옥 교수의 강의는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도전들에 대해 기독교는 오래 전부터 대답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인들의 의문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일방적이고 이미 믿고 있는 우리 끼리만의 고백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는 가운데 기독교에서 진지한 답변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하나 둘 씩 멀어져 갔고, 신앙의 회의를 품고 고민하던 교회 안 젊은이들도 하나 둘 씩 떠나가며 교회를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인터넷에는 지금 기독교와 복음신앙을 부인하는 수많은 안티 사이트들이 성황 중이다. 그 사이트를 이끌고 있는 운영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어린 시절 신앙생활의 경험을 가진 젊은이들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분노하며 기독교를 없애야 한다고 흥분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참다운 진리가 무엇이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과격한 호소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받은 성도들이라면 우리는 그들을 탓하고 욕하기 전에 성실하게 대답을 해 주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들을 더욱 화나게 하고 있다. 기독교계의 베스트셀러 중에는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것은 거의 없고, 이미 그런 대로 잘 믿고 있는 우리 자신의 메아리 없는 자화상을 더 강화시키는 방법에만 골몰해 있다. 나는 오늘날 이런 추세들을 보며 좀 과장되게 말하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교인쟁탈전을 통해서 얻어지는 "그래도 우리교회는 부흥한다"는 허구, 그리고 개인전도와 나 혼자 깨끗하게 살기식 영성훈련은 결코 이 시대의 대안이 아니다. 마치 최신예 전략병기를 들고나선 적군 앞에서 새총으로 몇 명의 적병에게 부상을 입힌 것에 즐거워하는 것과 같다.

민심이 중요하다. 정치인들만 민심을 얻어야 하는 게 아니라 교회도 민심을 얻어야 한다. 80년대의 인기가수 이광조의 노래 가운데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게 민심이다. 지금의 기독교는 세상사람들에게는 가까이 하고 싶어도 너무 멀다. 기독교인들의 사고방식과 언어, 표현, 의사소통 방식에 이르기까지 일반인들이 볼 때는 비상식을 넘어 몰상식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민심이 떠난 결과다. 이광조의 노래는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을 난 잊을테요" 복음에 접하기에 앞서 먼저 기독교라는 틀에 질려버린 사람들. 기독교가 총체적으로 난도질 당하고 있는 현실은 바로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멀어서 실망, 아니 분노한 사람들(민심)이 떠나는 모습이다. 이 추세에 대한 거시적 안목과 대안을 하루 속히 모색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의 유럽교회화는 불을 본 듯 뻔하다.

물론 몇몇 교회들은 지금도 열정적 전도와 생동감 있는 교회 분위기로 탈바꿈하여 착실히 성공한 예들도 꽤 많다. '열린예배'나 '태신자 운동'같은 예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멀리 보면 이 시대의 대안이 결코 아니다. 그런 시도들을 헛되다거나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열광적 분위기를 잡는다고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몇몇 교회들의 성공사례에만 도취되어서 백성들의 민심잡기(텃밭 가꾸기)를 소홀히 한다면 잠시 후 아무리 둘러봐도 더 이상 부흥을 경험하지 못하는 시대가 올까 두렵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백성들의 마음을 찾아들어 가려는 노력들을 나는 감히 거시적 전도요, 하나님나라 운동이라 주장하고 싶다.

요즘 나는 시시비비라는 말을 즐긴다. 현실 기독교가 욕먹어도 싼 부분들(제 1원인)은 부인하며 가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있는 사실을 없는 듯 가리고 숨길수록 교회는 더욱 위선적이 되어가고 민심은 더욱 멀어져 간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러나 시대와 추세가 변한다고 복음의 핵심적 가치와 내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제 2원인). 복음을 싫어하는 세상 사람들의 거부감은 적당히 얼버무려 희석함으로써('모든 종교는 결국 다 똑같다. 결국 착하게 살라는 것이고 예수님도 그걸 말씀하셨고, 교회는 지금까지 선한 일을 많이 해왔다'는 식) 해결할 수 없다.

첨단 우주과학 시대와 민주주의 시대가 와도 여전히 인간은 죄인이고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온다. 우리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변증해 내야만 한다.
구교형 (2003-06-05 오전 12: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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