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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의 신당정국과 19세기 영국정치[고세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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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3-06-18 09:49 / 조회 4,900 /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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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당정국과 19세기 영국정치


요즈음 민주당의 신당분쟁을 보면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영국정치가 생각난다. 영국은 당시에 형성된 정당체제, 즉 보수/자유/노동의 3개 이념정당을 중심으로 한 보혁구도가 오늘날까지 건강하게 유지되는 나라이다. 19세기의 영국은 개혁, 노동, 제국의 문제들이 교차 혹은 중첩하면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당연히 정당의 이념, 정책, 조직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하게 이념과 정책 중심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진행되었다. 예컨대 보수당의 로버트 피일 총리가 추종자들을 이끌고 자유당으로 합류한 것은 자유무역에 대한 소신 때문이었고, 조셉 챔벌린과 자유당의 개혁가들이 보수당으로 이탈한 것은 글래드스톤 자유당수의 아일랜드 자치(Home Rule) 정책에 대한 반발이었으며, 보수당의 랜돌프 처칠이 프림로즈 개혁그룹을 형성하여 당의 정체성에 변화를 추구했던 것은 솔즈베리의 완고한 보수정치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었다.
당시 영국의 정계개편과 관련하여 특히 두 가지가 눈에 띤다. 첫째, 그것은 신당을 만들기 보다는 기존의 제도권 정당들 사이에서 이루어졌고, 당의 개혁운동은 철저하게 당내부로부터 추진되었다. 둘째, 영국에서 당적의 변화는 오히려 소신정치의 증거로 간주된다. 예컨대 훗날 랜돌프의 아들 윈스톤 처칠은 보수당-> 자유당-> 보수당으로 3차례나 당적을 바꿨지만, 아무도 그를 소신 없는 정치인으로 폄하하지 않는다. 영국정치에서 철새정치인에 해당하는 조어는 없다. 이 모두는 영국의 정치가 원칙과 이념에 기반해 있다는 점을 반증해 주는데, 이 점이야말로 영국의 정당체제를 지탱시켜준 버팀목이었다.
해방이후 한국의 정치는 이미 존재하는 당을 건전한 이념, 정책정당으로 세우기보다는 인물과 정치적 편의에 따라서 분당, 합당, 창당을 거듭해 왔다. 한국정당사는 밀알이 죽어서 싹을 틔어본 경험이 없는 역사이다. 그리하여, 마치 반복된 헌법개정이 헌법의 권위를 한없이 추락시켜 왔듯이, 무수히 명멸해간 신당들도 정치에 대한 불신을 끝없이 증폭시켜 왔다.
이처럼 이념과 원칙 없이 표류하는 한국정당들의 딱한 현실을 두고, 작금 진행되는 민주당의 신당추진 작업이나 신당추진세력의 개혁에 대한 열정을 막무가내로 부인할 수는 없다. 한국정치는 근본에서 개혁되어야 하며, 이런 점에서 민주당내 소위 구주류가 보이고 있는 후안무치의 정치행태는 우리를 절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당의 신당추진세력들로부터도 그들이 과연 무슨 이념과 정책을 지향하는지 단 한차례 제시받은 바 없다. 오히려 개혁신당이냐 통합신당이냐의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두고 벌어지는 왈가왈부 자체가 ‘신당담론’이란 것이 실은 얼마나 추상적이고 공허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들이 내세우는 구호인 부패척결이나 구정치 퇴진 혹은 지역정치의 불식 등은 일찌감치 해결되었어야 할 한국정치의 암적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자체가 적극적으로 구현해야할 가치는 결코 아니며, 더욱이 새로운 정치세력이 표방하는 명분으로는 터무니없이 비(非)이념적, 무원칙적이다. 만일 새로운 개혁적 정치세력이 등장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간 한국의 보수적 정치판이 외면해온 것들, 예컨대 최소한 빈부의 문제를 어떻게 정치쟁점화 할 것인지, 혹은 재벌과 노동문제를 위한 전략은 무엇인지, 선거법 등 정치개혁의 방향은 어떤 것인지 정도는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신당담론’ 어디에서도 이러한 것들의 편린조차 발견하지 못한다. 작년 민주당의 대선후보 선출과정과 그 이후의 내홍이 여실히 보여 주었듯이, 민주당은 원래부터 선거적 편의를 위해 급조된 보스중심의 지역정당이었다. 따라서 개혁적 정치를 위한 노력의 방향은 오히려 이념, 원칙, 정책이 공백상태인 민주당의 내부를 의미있는 것으로 채우는 작업에서 시작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신당이든 분당이든 그것을 뒷받침해줄 객관적이고 명명백백한 명분과 근거가 없다면, 또 하나의 신당이란,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한국 정치문화의 수준을 뭉텅뭉텅 깎아 내릴 시지프스의 도로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신당추진을 두고 벌어지는 온갖 혼란들은 신당이 극복하고자 하는 이념이나 정책은 무엇이며 또한 그것이 지향하는 이념이나 정책은 무엇인지가 정의되지 않은 데서 오는 당연한 귀결이다.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러한 부재의 악순환 속에서 추진되는 신당이란 그 자체가 해프닝일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한국 주류정치인들의 도덕성과 행태가 19세기 영국정치가들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발견이다. (尾)
(고려대학교 경제행정학부, 고세훈)


* <기독교보> 6월 20일자 칼럼입니다. 민주노동당이 발행하는 <이론과 실천> 6월호에는 이 칼럼의 ‘확장본’(expanded version)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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