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목회칼럼] 추석선문 (방인성, 뉴스앤조이 200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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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3-09-13 11:07 / 조회 5,023 / 댓글 0본문
<목회칼럼> 추석
선물
작은 선물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나누자
우리 교회 앞에 사는 아주머니는 교회는 나오지 않지만,
목사인 나를 보면 아주 반갑게 인사하신다. 만나면 가끔은 동네 쓰레기와 주차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추석 명절도 가까워
오는데 성터교회에서는 바자회 안 여냐"고 묻는다. 해마다 열렸던 바자회를 올해는 계획하지 않았기에 너무 미안했다.
지난 월요일 동사무소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해서 갔더니, 우리 교회가 이웃을 잘 도와서 구청에서 표창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교회가 마땅히 하는 것인데 무슨 표창이냐"고 정색을 하며 시상대에는 오르지 않겠다고 하고, 이왕 나온 것이니 표창장만 가지고 왔다.
우리 성도들이 힘껏 이웃을 섬기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고, 교회나 목사가 표창을 받는다는 것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명절이 되면 더욱 위축되는 가난하고 외로운 우리의 이웃이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하고, 이웃들은 교회가 어떻게 하나를 바라보고 은근한 기대를 갖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는 와중에도 명절이 되면 늘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선물'이다. 누가 누구에게 얼마나 많은 선물을 주고받았는가 하는 관심이 꺼지지 않는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선물론]에서는, 선물은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거나 더욱 많이 가진 몫을 내어버림으로써 부의 차등에서 오는 갈등·불화·적개심을 해소하는 공존 공생의 지혜였다. 선물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독점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사람끼리 평등하게 나누어 갖는다는 공동체를 위한 아름다운 매체요 수단인 것이다.
나의 처음 목회지에서 성도들이 준 과다한 선물을 돌려보낸 일로 한 성도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있었다. 7년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나와 아내 앞에서 울면서 그때 자신을 무시했다며 하소연하는 것이다. 그분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다시 그런 일이 있어도 똑같이 행동하리라 마음먹었다.
계란 한 판을 주시거나 파김치를 그릇에 담아 주신 것은 얼마나 좋은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감동의 선물은 양말과 사탕을 꽁꽁 싸서 주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 성도들이 넘겨짚어서 "우리 목사가 선물 받고 싶은가 보다"라고 잘못 생각할까 걱정이 된다.
솔직히 말해 선물을 받는 것은 좋지만 양심이 둔화되는 것은 더 손해가 아닌가? 뇌물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서도 뇌물 없이 일이 안 되는 풍토와 그런 의식이 서글퍼질 따름이다. 고향의 부모님과 어르신들께, 그리고 이웃간에 서로의 감사와 사랑의 표시로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정이 이번 추석에 있어야겠다.
작은 선물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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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동사무소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해서 갔더니, 우리 교회가 이웃을 잘 도와서 구청에서 표창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교회가 마땅히 하는 것인데 무슨 표창이냐"고 정색을 하며 시상대에는 오르지 않겠다고 하고, 이왕 나온 것이니 표창장만 가지고 왔다.
우리 성도들이 힘껏 이웃을 섬기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고, 교회나 목사가 표창을 받는다는 것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명절이 되면 더욱 위축되는 가난하고 외로운 우리의 이웃이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하고, 이웃들은 교회가 어떻게 하나를 바라보고 은근한 기대를 갖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는 와중에도 명절이 되면 늘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선물'이다. 누가 누구에게 얼마나 많은 선물을 주고받았는가 하는 관심이 꺼지지 않는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선물론]에서는, 선물은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거나 더욱 많이 가진 몫을 내어버림으로써 부의 차등에서 오는 갈등·불화·적개심을 해소하는 공존 공생의 지혜였다. 선물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독점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사람끼리 평등하게 나누어 갖는다는 공동체를 위한 아름다운 매체요 수단인 것이다.
나의 처음 목회지에서 성도들이 준 과다한 선물을 돌려보낸 일로 한 성도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있었다. 7년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나와 아내 앞에서 울면서 그때 자신을 무시했다며 하소연하는 것이다. 그분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다시 그런 일이 있어도 똑같이 행동하리라 마음먹었다.
계란 한 판을 주시거나 파김치를 그릇에 담아 주신 것은 얼마나 좋은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감동의 선물은 양말과 사탕을 꽁꽁 싸서 주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 성도들이 넘겨짚어서 "우리 목사가 선물 받고 싶은가 보다"라고 잘못 생각할까 걱정이 된다.
솔직히 말해 선물을 받는 것은 좋지만 양심이 둔화되는 것은 더 손해가 아닌가? 뇌물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서도 뇌물 없이 일이 안 되는 풍토와 그런 의식이 서글퍼질 따름이다. 고향의 부모님과 어르신들께, 그리고 이웃간에 서로의 감사와 사랑의 표시로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정이 이번 추석에 있어야겠다.
방인성 (2003-09-09 오후
2: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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