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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목회자의 타락과 신학자의 직무유기 (하종호, 신학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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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3-09-13 11:13 / 조회 5,751 /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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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목사가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사건은 절대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수치스런 일이다. 그 수치스러움은 교계의 원로가 구속되었다는 사실보다도, 구속될 정도로 중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나 기독교대한감리회는 마치 목사들에게 치외법권이라도 있는 듯이 모멸감 운운하면서, 김 목사의 구속이 정부의 기독교 탄압의 일환인 것처럼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기까지 하였다. 하기는 교회 재정의 투명한 운용과 공개를 요구하는 장로들을 신본주의에 도전한다는 죄명으로 출교시키는 판이니 김홍도 목사의 구속은 동료 목사들에게 가히 충격적이고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김홍도 목사의 구속과 관련해서 금란교회와 교계 지도자들이 늘어놓은 구차한 변명과 항변은 재삼 거론할 가치도 없다. 그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비신앙적인 궤변에 불과한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교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셈이다. 김 목사의 구속은 단순히 공금 운용상의 문제이기보다는, 그동안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비성경적인 권위주의와 신학적 일탈이 누적되어 온 결과로 봐야 한다. 교회 통치를 위해 바리새인 못지 않게 구약의 율법을 변용시켜, 샤머니즘과 이원론에 물든 한국인의 의식 구조에 그것을 주입해 온 목회자들이 적지 않다. 거기서 한 술 더 떠 개인의 치부와 명예욕을 위해 하나님과 교회를 이용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죄악을 먼저 회개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자기 변명이나 합리화도 호소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목회자들 못지 않게 이 땅의 신학자들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삼박자 축복론의 장단에 맞춰 한국 교회가 춤을 추면서 세속화되고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복음을 값싸게 포장해서 설파할 때에, 신학자들은 그들을 엄하게 꾸짖으면서 복음이 왜곡되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했다. 교회에서는 신본주의가 우선하므로 교회 재정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터무니없는 논리에 대해 신학자들은 그 부당성을 공개적으로 지적했어야 했다. 기업을 세습하듯이 담임 목사직을 뻔뻔스럽게 세습하거나, 자기 아들이 담임할 개척 교회 건축비로 백 수십 억 원의 교회 예산을 멋대로 전용한 대형 교회 목사들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엄중 경고했어야 했다. 신학교에 갓 들어온 아들이 자기 아버지가 목사 고시 위원이 되자 재빨리 고시를 봐서 합격했을 때, 해당 교단의 신학자들은 진상 조사와 관계자 문책을 요구했어야 했다. 신학자들은 교회가 대(對)사회적인 사명을 소홀히 하지 못하도록 촉구하고 독려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우리 사회에 넘치도록 선도했어야 했다.


 

신학이야말로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고양이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분야다. 신학적 이론이 뒷받침되지 않는 목회와, 목회적 실천과 무관한 신학 이론이 모두 온전할 수 없음은 너무도 자명하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신학은 그런 차원 높은 종합과 통일을 이루지 못함으로써, 그리고 상당수의 신학자들이 교권주의자들과 일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횡포에 맞서지 못한 채 학자의 양심과 기개를 스스로 접음으로써,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두르는 삯꾼 목자들을 방치하고 말았다. 결국 교계 원로가 파렴치범으로 구속되는 수치스런 사태가 초래된 데에는 신학자들의 무책임한 방임주의가 한 몫을 한 셈이다.


 


 

목사를 대제사장에 견주고 신성불가침한 목사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는 식의 협박성 설교를 들으면 웬만한 교인들이야 겁먹고 주눅들기 마련이지 않겠는가? 그러면 신학자들이라도 시시비비를 따졌어야 했건만, 그들은 자신의 신학적 권위를 포기하고 목회자들의 탈선을 방조 내지는 묵인한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실로 탐심을 물리치지 못하는 목회자들과 파수꾼의 사명을 저버린 신학자들의 합작품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된다. 이제라도 신학자들이 각성하여 올곧은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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