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목사님께 드리는 장로의 충언[신흥식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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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3-02-20 23:29 / 조회 4,927 / 댓글 0본문
목사님께 드리는 장로의 충언
권력에 대한 집착 과감히 버리고 섬기는 종이 되소서
80년대까지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던 한국의 기독교가 9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히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물론 물질의 풍요가 간절함을 실종케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IMF보다 훨씬 심각한 위기가 도적처럼 다가오고 있는데, 목사님들은 능력만 허락하면 지구상의 어느 정치체제에서도 누리기 어려운 독단적 권력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것을 '은혜스러움'이라는 말로 포장해서 평신도들을 오도한다. 그러는 사이에, 기독교는 빛과 소금의 신앙도, 자기 비움의 신앙도, 사회에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신앙도 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불신자들의 빈정거림과 냉소의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장로와 적당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자기 버림의 성경적 원리에 충실하면 이런 지경은 면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목사가 절대적인 부분을 책임져야 한다. 레위기 4장 속죄제의 규례에서 제사장의 속죄제물이 평민의 속죄제물보다 훨씬 많았던 것을 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만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매달릴 때 하나님의 긍휼과 함께 하심이 필연적으로 따른다고 설교는 하는데, 막상 목사님들의 삶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죄송하지만 훨씬 세속적이다. 계급의식이 세상 사람보다 강하다.
목사라는 명칭은 직분의 의의를 강조하는 것으로서, 교회 내에서 구별된 지위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웨스트민스터 정치조례에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치조례에 근거하고 있는 몇몇 장로교단에서조차 이 부분은 슬쩍 삭제해버렸다. 물론 목사의 위상에 별로 도움이 안되니까 그랬을 것이다. 과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분들인가? 미스바로 가서 온갖 수치심을 무릅쓰고 통회자복하소서.
언젠가 군목안수를 하는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다. 축사를 맡은 목사님(노회장도 역임하시고 목회의 연륜이 어느 정도 쌓인 분이다) 가라사대 "목사가 되면 군대에서 별을 달고 장군이 되어 수천 명의 졸병을 거느리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위상이 달라진다"고 축하를 해준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섬김의 자세를 더욱 가다듬어야 한다고 해야 할 목사님의 의식의 편린을 보는 듯 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어느 예배에서인가, 설교 중에 자신의 교회에 대한 비전을 설명하는 가운데, 24장로를 거느리는 교회(본문이 계시록이었음)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으면서, 목사의 계급의식이 저렇게도 군대적이고 거느림 선호주의에 깊숙이 빠져 있나 싶어 답답해했던 적이 있다.
또 장로·집사·권사 임직식을 가보면 가관이다. 거의가 천편일률적으로 설교를 포함한 예배 후의 임직순서에 권면의 순서가 있다. 임직예배에 적절한 설교를 했으면 됐지 무슨 권면이 설교와는 별도로 필요하단 말인가? 그런데 듣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새로 임직된 분들은 온통 목사에게 잘 하라는 것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성경 구절이 필수과목으로 인용되면서…. 또 그런 내용이 잘 나타나야 순서 맡는 일에 잘 불러준다고 한다.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라는 말은 듣기 어렵다. 하나님은 어디로 가셨나? 예수교에서 예수는 어디로 가버리고 그 자리를 목사님이 찬탈해서 독재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성령을 한숨 짓게 하는가? 물론 전적으로 목사의 책임이라기보다 어리석은 장로들의 속물근성적 충성과 평신도의 샤먼적 정서와 무지가(죄송하지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한 몫을 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권력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사전을 보면 권력이란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어느 집단에서든지 권력은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목사님들이 그렇게 집착을 하지 않아도, 적어도 교회 공동체에서는 목사님을 중심으로 권력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목사의 위상을 제사장처럼, 사제처럼 더 강하게 하려고 함으로써 기독교의 쇠락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손봉호, 김인수 장로님들이 태동시켰던 어느 모임에서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한국의 개신교 목사님들이여 과연 예수를 믿는 분들입니까?" 하면서 울먹일 때 지금은 아직 희망을 포기할 때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독교의 쇠락이 전적으로 목사님들의 책임이라는 말을 겸허하게 수용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장로는 책임이 없느냐는 수준에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는데 결단코 도움이 안 된다.
목사를 비판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잘(?) 교육이 되어 있고, 또 샤먼적 정서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 나라의 기독교 사회에서, 필자와 같은 쓴 소리를 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점을 코람데오의 인격을 발휘해서 들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하나님의 때가 도적처럼 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소서. 중세에 면죄부를 팔아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곧 창세 이래 가장 위대한 역사를 멸시하였던 과오를 하나님께서 계속 인내하시리라고 안이하게 생각하지 마소서.
신흥식 / 동산교회 장로,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신흥식
권력에 대한 집착 과감히 버리고 섬기는 종이 되소서
80년대까지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던 한국의 기독교가 9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히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물론 물질의 풍요가 간절함을 실종케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IMF보다 훨씬 심각한 위기가 도적처럼 다가오고 있는데, 목사님들은 능력만 허락하면 지구상의 어느 정치체제에서도 누리기 어려운 독단적 권력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것을 '은혜스러움'이라는 말로 포장해서 평신도들을 오도한다. 그러는 사이에, 기독교는 빛과 소금의 신앙도, 자기 비움의 신앙도, 사회에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신앙도 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불신자들의 빈정거림과 냉소의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장로와 적당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자기 버림의 성경적 원리에 충실하면 이런 지경은 면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목사가 절대적인 부분을 책임져야 한다. 레위기 4장 속죄제의 규례에서 제사장의 속죄제물이 평민의 속죄제물보다 훨씬 많았던 것을 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만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매달릴 때 하나님의 긍휼과 함께 하심이 필연적으로 따른다고 설교는 하는데, 막상 목사님들의 삶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죄송하지만 훨씬 세속적이다. 계급의식이 세상 사람보다 강하다.
목사라는 명칭은 직분의 의의를 강조하는 것으로서, 교회 내에서 구별된 지위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웨스트민스터 정치조례에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치조례에 근거하고 있는 몇몇 장로교단에서조차 이 부분은 슬쩍 삭제해버렸다. 물론 목사의 위상에 별로 도움이 안되니까 그랬을 것이다. 과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분들인가? 미스바로 가서 온갖 수치심을 무릅쓰고 통회자복하소서.
언젠가 군목안수를 하는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다. 축사를 맡은 목사님(노회장도 역임하시고 목회의 연륜이 어느 정도 쌓인 분이다) 가라사대 "목사가 되면 군대에서 별을 달고 장군이 되어 수천 명의 졸병을 거느리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위상이 달라진다"고 축하를 해준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섬김의 자세를 더욱 가다듬어야 한다고 해야 할 목사님의 의식의 편린을 보는 듯 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어느 예배에서인가, 설교 중에 자신의 교회에 대한 비전을 설명하는 가운데, 24장로를 거느리는 교회(본문이 계시록이었음)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으면서, 목사의 계급의식이 저렇게도 군대적이고 거느림 선호주의에 깊숙이 빠져 있나 싶어 답답해했던 적이 있다.
또 장로·집사·권사 임직식을 가보면 가관이다. 거의가 천편일률적으로 설교를 포함한 예배 후의 임직순서에 권면의 순서가 있다. 임직예배에 적절한 설교를 했으면 됐지 무슨 권면이 설교와는 별도로 필요하단 말인가? 그런데 듣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새로 임직된 분들은 온통 목사에게 잘 하라는 것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성경 구절이 필수과목으로 인용되면서…. 또 그런 내용이 잘 나타나야 순서 맡는 일에 잘 불러준다고 한다.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라는 말은 듣기 어렵다. 하나님은 어디로 가셨나? 예수교에서 예수는 어디로 가버리고 그 자리를 목사님이 찬탈해서 독재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성령을 한숨 짓게 하는가? 물론 전적으로 목사의 책임이라기보다 어리석은 장로들의 속물근성적 충성과 평신도의 샤먼적 정서와 무지가(죄송하지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한 몫을 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권력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사전을 보면 권력이란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어느 집단에서든지 권력은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목사님들이 그렇게 집착을 하지 않아도, 적어도 교회 공동체에서는 목사님을 중심으로 권력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목사의 위상을 제사장처럼, 사제처럼 더 강하게 하려고 함으로써 기독교의 쇠락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손봉호, 김인수 장로님들이 태동시켰던 어느 모임에서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한국의 개신교 목사님들이여 과연 예수를 믿는 분들입니까?" 하면서 울먹일 때 지금은 아직 희망을 포기할 때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독교의 쇠락이 전적으로 목사님들의 책임이라는 말을 겸허하게 수용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장로는 책임이 없느냐는 수준에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는데 결단코 도움이 안 된다.
목사를 비판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잘(?) 교육이 되어 있고, 또 샤먼적 정서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 나라의 기독교 사회에서, 필자와 같은 쓴 소리를 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점을 코람데오의 인격을 발휘해서 들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하나님의 때가 도적처럼 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소서. 중세에 면죄부를 팔아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곧 창세 이래 가장 위대한 역사를 멸시하였던 과오를 하나님께서 계속 인내하시리라고 안이하게 생각하지 마소서.
신흥식 / 동산교회 장로,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신흥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