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교회 칼럼] 교회다움을 찾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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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6-06-19 17:37 / 조회 33 / 댓글0본문
교회 개혁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흔히 교회 운영과 권력 구조의 개혁을 떠올린다. 담임목사에게 집중된 권한을 견제하고, 목회자 세습을 반대하며, 평신도의 참여를 확대하여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세우고자 한다. 또한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교회 재산의 사유화를 막고자 한다. 이러한 과제들은 물론 반드시 개혁되어야 할 중요한 일들이다. 교회개혁 운동은 지난 20여 년 동안 이러한 문제들을 꾸준히 제기해 왔고 그 결과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 운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교회개혁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과연 이것으로 교회가 개혁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너져가는 집을 보수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집을 고치는 일이 끝이 아니다. 고쳐진 집에는 사람이 살아야 하고, 그 집은 무언가로 채워져야 한다. 개혁된 제도를 가진 교회가 반드시 개혁된 교회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이 그 안에 모이는지, 그 교회가 누구를 향해 문을 여는지가 더 중요한 물음일 수 있다.
예수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환전상들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상을 둘러 엎으셨다(마 21:12-17; 막 11:15-19; 눅 19:45-48; 요 2:13-22). 우리는 이 장면에서 성전의 부패한 구조를 꾸짖으시는 예수의 개혁성을 본다. 하지만 복음서가 훨씬 더 자주 보여주는 예수의 모습은 성전 안의 예수가 아니다. 예수는 병든 사람들 곁에 머무셨고, 죄인이라 불리던 사람들과 식탁을 나누셨으며, 사회가 밀어낸 사람들을 찾아가셨다. 예수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성전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의 자리였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를 만난 곳은 성전이 아니었다. 그때 예수는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고통의 자리로 가던 길이었다. 한 사람의 고통을 향해 가던 길에서 또 다른 사람의 고통을 만나며, 예수의 발걸음은 늘 그렇게 이어졌다. 고통에서 고통의 자리로, 눈물에서 눈물의 자리로.
예수는 성전 안에 머물며 하나님을 자기 손 안에 쥔 듯 말하는 이들이 가득한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참 하나님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그 마음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몸으로 보여주시고 그곳에 머무셨다. 예수가 가신 자리에는 탈취당하고 쫓겨난 사람들, 슬픔을 혼자 감당하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예수는 그들을 흩어진 채로 두지 않으셨다. 그 자리에서 서로가 서로의 이웃이 되는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났다. 예수의 개혁은 단지 제도를 바로잡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밀려난 사람들이 함께 모여 회복의 삶을 살아가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었다. 예수의 그 걸음을 따르는 것, 그 회복을 이어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오늘 교회에게 주어진 개혁의 과제인지도 모른다.
교회 운영과 권력 구조의 개혁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교회의 개혁이 완성되지 않는다. 제도를 고친 교회가 스스로를 개혁된 교회라 여기는 순간, 개혁은 멈춘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밀려난 이들은 성전 밖으로 나오신 예수를 기다린다. 그곳이 오늘 교회가 갈 자리이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잃어버렸던 교회다움을 다시 만나게 될지도.

- 이수연 목사 (새맘교회, 교회개혁실천연대 후원교회)
- [후원교회 칼럼] 교회에서의 가스라이팅 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