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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위원 칼럼] '경계'를 잃고 '최전선'을 그은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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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6-09-22 17:52 / 조회 20 /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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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드발은 <경계를 살다>(비아토르, 2026)에서 ‘경계’와 ‘최전선’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녀에 따르면 ‘경계’는 우리에게 필요한 틀이자 존중되어야 할 구조를 제공한다. 그것은 경직된 규칙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동시에 성장시키는 내면의 힘이다. 반면 ‘최전선’은 타자를 밀어내기 위해 그어진 선이며, 적대와 공격성, 그리고 권력이 만들어낸 구획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열리는 교단 총회들을 되돌아보며, 오늘날 한국 교회가 건강한 ‘경계’를 잃어버리고 배타적인 ‘최전선’만을 겹겹이 치고 있다는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예장합동 총회가 열린 사랑의교회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총회를 향해 여성 안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우리 일행 앞을 난데없이 사랑의교회 보안팀이 가로막았다. 그들은 "이곳은 교회의 사유지이니 인도쪽 밖으로 나가라"고 요구했다. 인도와 물리적 거리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말그대로 ‘경계’인 예배당 앞마당 끝자락이었지만, 그들은 정확한 지점을 가리키며 ‘여기까지가 교회 땅’이라고 한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최전선’을 그어준 것이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할 교회가, 그것도 교단의 가장 큰 공적인 행사를 치르는 와중에 자신들의 마당을 철저히 배타적인 ‘사유 재산’으로 규정하는 모습은 생경함을 넘어 충격이었다. 


또한, 예장고신 총회는 앞으로 ‘고신’이라는 명칭을 교단 소속이 아닌 타 단체가 쓰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무분별하게 사용된 이름이 고신 교회와 총회에 좋지 않은 이미지가 만들어 지고 선입견이 들게 한다는 이유이다. 이제 앞으로 일반 성도들이 ‘고신을 사랑하는 OOO’이라는 어떤 단체도 만들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신 총회는 ‘고신’이란 이름의 ‘최전선’을 만들 것이 아니라, 강단에서 외쳐져야 할 말과 외쳐서는 안되는 말의 ‘경계’를 만들어야 했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성별로 그어놓은 가장 견고한 최전선, 곧 여성 리더십의 현실이다. 전체 개신교인의 3분의 2가 여성임에도 리더십의 절대다수를 남성이 차지한 구조는 교회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이번 예장합동 총회에서는 여성 사역자에게 설교 권한을 주는 '강도권' 개정안마저 노회 투표 과정에서 좌초되는 퇴행을 겪었고, 예장통합에서는 여성 총대 1명 이상 의무 파송안이 과반수 찬성에도 불구하고 3분의 2, 정족수의 벽에 막혀 부결되었다.


지금 세계와 사회는 곳곳에서 국가와 인종, 이념과 계급, 세대와 젠더, 지역과 문화의 장벽으로 배제와 폭력의 ‘최전선’이 만들어 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화평이신 주님이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는(엡 2:14)’ 분을 머리로 모신 교회는 달라야 한다.


마당을 사유지라 부르며 빗장을 지르는 대형교회, 강단의 거룩한 ‘경계’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교단, 그리고 여성에게 자리를 내어줄 맘이 조금도 없는 남성 중심의 철옹성을 쌓은 총회. 이들은 모두 복음의 건강한 '경계'를 배제와 독점의 '최전선'으로 오작동시키고 있다. 교회가 이기적인 사유화의 벽을 허물고 잃어버린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일, 그것이 이 땅에 굳어버린 교회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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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영(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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