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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의 희망, 주님의 열심_박득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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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4-02-02 13:56 / 조회 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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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희망고문'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젠 '희망 찬 새해를 맞이하길 기원합니다' 라는 덕담조차 꺼려집니다. 너무 공허하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오늘 희망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희망은 모든 악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럼 인간은 어떤 희망도 품지 않고 사는 게 현명한 걸까요? 니체도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닐 겁니다. 그는 같은 저서에서 '모든 좋은 것은 멀리 돌아가는 길을 통해 목적에 다다른다.' 라고도 말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멀리 돌아간다는 건 좋은 것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는 걸 뜻합니다.


문제는 거짓 희망입니다. 그건 세상과 교회의 불의한 지배동맹세력이 대다수 민중에게서 분노와 혁명의지를 빼앗아 자기들 입맛에 맞게 길들이기 위해 애용하는 무기입니다. '그냥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마침내 도래할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낙수효과이론과 기복신앙입니다. 작년 성탄절을 보내면서 제가 가장 큰 은혜를 입은 말씀이 있습니다. '만군의 주님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이사야 9:7) 저는 이 말씀에서 진정한 희망을 찾았습니다.


여기서 ‘이것’이란 한 아기의 탄생으로 시작된 정의와 평화가 온전히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굳게 세워지는 것을 뜻합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당대의 온갖 불의와 거짓에 저항하는 사명을 감당하면서 그 나라가 굳게 세워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온 몸으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열심이 그 나라를 굳게 세우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고통만 연장시키는 근거 없는 희망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의 열심이 온 우주와 인류를 향한 신실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어떤 존재도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정의와 평화는 사랑으로 그런 존재들 편에 섬으로 시작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정의와 평화는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이사야는 그걸 알았습니다. 더 나아가 그 나라는 그 어떤 폭력에도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역시 확신했습니다. 하여 그 나라는 한 아기의 탄생으로 시작될 것이라 노래합니다.


우리는 이사야가 내다 본 것을 이미 돌아보는 놀라운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래로 오늘까지 정의와 평화를 품고 있는 하나님나라는 끈질기게 자라 왔습니다. 그 나라는 겉보기엔 세상의 어떤 것보다 작은 겨자씨 같아 보이지만, 모든 것을 이겨내는 생명력, 즉 사랑의 힘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가시적인 결과에 초조해하거나 연연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저는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열망하는 투쟁현장에 갈 때마다 생명력을 품고 있는 겨자씨들을 만나는 놀라운 기쁨을 누립니다. '그렇다, 나는 결코 외롭지 않구나!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진정한 동지가 이렇게 많구나!' 주님의 열심을 온 몸으로 확인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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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실천연대 고문 박득훈 목사
성서한국 사회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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