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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 여성 안수 거부는 '보수 신학'이 아니라 '꼼수 신학' (뉴스앤조이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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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4-07-10 13:32 / 조회 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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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교회 여성 차별의 역사 

 

올 초에 읽지 말아야 할 책을 읽고, 새롭게 일을 벌이게 되었다. 그 책은 <여성이 만난 하나님>(강호숙, 넥서스CROSS)과 <처치 걸>(베스 엘리슨 바, IVP)이다. 강호숙 박사는 총신대에서 여성 리더십을 강의하다가 교단 여성 정책과 배치된다고 해직된 후 지금껏 교회의 차별과 싸우는 분이고, 엘리슨 바도 미국 남침례교의 여성 차별적 정책으로 쫓겨난 후 그 일을 밝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민주·평등·인권 의식이 보편화하고 AI가 못하는 게 없는 21세기에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합법적인 정통 기독교 교단·교회들이 여성의 지위를 얼마나 무시하고,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는지 엄연한 현실로 들려주었다. 

 

나도 지금까지 교단과 교회의 남녀 차별 철폐와 여성 안수 운동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두 책을 읽으며 감 떨어질 때까지 그냥 앉아 기다리기엔,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하나님께 미안하고 세상에 부끄러웠다. 

 

신학적 정당성 문제는 다른 분의 기고에서 더 잘 다룰 것이기에 나는 과감히 생략한다. 다만, 구약성경을 살펴보면 성(남자와 여자)도, 민족(이스라엘과 열방)도, 신분(제사장과 일반 백성)도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 같은 표현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나라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제한적·일시적·기능적 상징과 예표였을 뿐 본질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예수의 죽음으로 성소 휘장이 찢어지고, 부정한 짐승을 먹을 수 없다던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더는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5)"는 하늘의 소리가 들림으로써 그 시대도 끝났다. 바울은 그것을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갈 3:28)"라는 말씀으로 확인했다. 

 

물론 그 후에도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한 기독교회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그래도 그건 성경의 해석과 시대적 이해가 부족해서 일어난 흘러간 역사였다고 치자. 그러나 도대체 언제까지 그래야 할까? 

 

창조의 동등성과 주님의 구속을 무효화하는 여성 차별 

 

같은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하고 과정을 다 밟아도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합동, 합신에 있는 한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 이걸 언제까지나 이해해야 할까?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강도사·목사의 길을 걷는 우리와 다르게, 여성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방금 신학교를 졸업한 20대 남성과 함께 전도사를 벗어날 수 없다. 

 

사실 모든 신학이 같을 이유는 없고, 자신의 신학과 성향에 따라 조금 더 보수적 교단, 또는 더 진보적인 신학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도 동의한다. 그리고 여성 안수를 거부하는 분들은 그것이 보수 신학이라고 한다. 

 

보수의 본뜻은 가치를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연히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다는 인간 창조의 대원칙(창 1:27)을 두고도, 여성은 목사나 장로 같은 교회의 책임적 직무는 맡을 수 없다는 고집이 어떻게 보수 신학일 수 있을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미국에는 흑인을 백인과 동등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교회와 예배조차 나눠 모였음을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근거는 흑인이 아버지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의 자손이라는 '아주 성경적이고 합법적인' 이유였다(창 9:24~25). 물론 지금 와서는 그런 해석, 그런 차별은 비웃음만 살 뿐이다. 그러나 얼마 후 성경을 들이대며 여성 안수를 거부하고, 다양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자랑스러운 이름들'은 인종차별과 똑같이 틀림없이 교회의 역사에서 '부끄러운 이름들'로 기억될 것이다. 

 

내가 총신 신학대학원생이던 1992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예장합동 교단 유명 교회를 담임하던 신○○ 목사가 맡았던 설교학 수업 중이었다. 신 목사는 신학교를 나와 봐야 결국 설교도 할 수 없는(강도권도 없고 목사도 될 수 없으니) 여자들이 왜 신학교에 오는지 모르겠다고 대놓고 비웃었다. 수업 듣던 100여 명 중 5~6명의 여성 학생들을 앞에 두고서 말이다. 

 

그 순간, 거기 있던 여성들은 있어도 없는 존재와 같은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았고, 많은 남자 신대원생들은 '하하하' 큰소리로 웃었다. 그 순간,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으로 나눠 왔던 휘장을 찢어 하나 되게 하신 공로(마 27:51, 갈 3:28)를 주의 복음 전하겠다는 신학생들이 무효로 만들었다. 

 

당시 나는 '저건 아닌데' 하는 마음을 갖고서도 그땐 용기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마 26:56). 얼마 후 공개 석상에서 소위 '기저귀 발언'으로 여성의 안수를 조롱한 임태득 총회장처럼 신 목사도 총회장이 되었다. 이 부끄러운 총회의 전통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신학 논쟁을 떠나 총회와 신학교는 결국 허용하지도 않을 여성을 왜 목사 후보생 길러 내는 신학대학원 과정에 입학시키는지 대답해야 한다. 만약 사관학교에서 장교 임관도 시키지 않으면서 여성을 계속 입학시킨다면 납득할 수 없는 것과 똑같다. 총회는 이제 와서 여성 강도사를 허용할 계획을 논의 중이지만, 결국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름만 같을 뿐 남자와 여자의 길이 다르고 그건 강도사가 아니다. 

 

여성 안수는 주님의 시대정신이다 

 

지난 6월 11일 여성 안수(목사·장로)를 여전히 가로막는 세 교단이 성경과 시대정신에 맞게 안수하도록 여성안수추진공동행동(여안추)을 출범하였다. 목사 안수만이 아니다. 사실 개교회 입장에서는 여성 목사보다 여성 장로가 더 중요하고, 현실적일 수도 있다.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교인 대표로 장로가 되어 당회에서 교회 운영을 함께 결정하고, 개교회의 대표로서 노회와 총회에서 교단 운영을 논의·결정하여야 마땅하다. 교회 교인의 70%를 차지하는 여성이 중요한 결정에서는 늘 빠진 채 음식 만들기와 손님 접대로만 칭송을 받는 한국교회 현실은 마땅히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혁을 위한 길은 쉽지 않다. 말이 나왔으니 잠깐 여안추의 현실도 호소해 보자. 참여 단체가 말이 10개 단체/교회이지, 마음은 원이로되 실무할 인원도, 재정도 부족한 곳이 태반이다. 출범식에 이어 여성 안수의 취지를 밝히는 릴레이 기고 운동과 서명운동, 대중 강연과 9월 총회 활동 같은 일들을 구상하고 있지만 버겁다. 

 

뜻이 있고 마음 있는 단체와 교회, 그리고 개인의 참여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뜻에 공감하는 분들의 적극적인 후원도 감히 요청드린다(국민 655201-01-683274 ㄱㅈㅁ). 우리 교단 남성 목사들만 해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여성 안수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분이 꽤 많다. 그러나 목사가 진정한 복음의 가치를 사수할 종이라면, 개인적 고백을 넘어 공적인 표현이 꼭 필요하다. 하나님의 교회와 목사 직분이 더는 세상에 조롱당하고 성도들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이제 행동해 주기를 충심으로 호소한다. 


구교형 / 성서한국 이사장,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 공동대표

 

※ 여성 안수를 지지하는 그리스도인 1000명 서명운동 

서명 링크: https://bit.ly/여성안수지지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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