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교회 내에서 여성의 리더십에 대하여 ① (뉴스앤조이 7/23)
페이지 정보
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4-07-23 17:28 / 조회 367 / 댓글 0본문
'은혜로만/믿음으로만' 칭의됨의 복음과 그 복음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의로운 나라, 새 창조의 질서(갈 3:28)
바울은 율법의 행위들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만,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인이 되고 구원받음의 진리, 곧 자신의 칭의의 복음을 변증하는 맥락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율법(시내 언약의 법)의 통치 시대가 끝나고 믿음의 시대가 옴으로써 너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중략) 유대인도 없고 헬라인도 없으며, 종도 없고 자유자도 없으며,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다. 왜냐하면 너희 모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즉, 바울의 칭의의 복음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이 무엇을 타고나는가, 무엇을 이루었는가는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내포하는 진리다. 칭의의 복음의 이 보편성, 무차별성을 가장 포괄적으로 천명한 것이 갈라디아서 3장 28절이다. 그곳의 맥락에서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지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도 없고 헬라인도 없다"만 선언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구태여 그에 더하여 "자유인도 없고 노예도 없다,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다"라고도 선포한다.
그리하여 갈라디아서 3장 28절은 그리스도의 복음, 즉 "은혜로만, 믿음으로만의 구원"의 복음의 능력, 즉 이 타락한 세상의 전형적인 차별들을 모두 폐지하여 하나님나라의 샬롬, 즉 "정의와 평화와 만인의 행복"(롬 14:17)을 실현하는 힘을 가장 포괄적으로 표현한 선언이다. 그래서 이 말씀은 기독교 사회윤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대표적으로 인종적 차별, 그것도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심지어 구속사적 차별도 이제 해소되고, 상전과 노예의 신분적 차별도 해소되며, 남자와 여자의 성적 차별도 해소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자녀들이 된 것이다. 또 그렇기에 초대교회 안에서는 상전들과 노예들이 함께 형제의 공동체를 이루며 성찬식에 참여하고 예배드린 것이며,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더 이상 노예로 받지 말고 형제로 받으라는 혁명적 권면을 한 것이다. 또 그렇기에 바울은 가정생활과 교회 생활에서 남녀의 동등성과 상호주의를 혁명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는 곳에서는 항상 노예해방이 일어나고, 여성해방이 일어나며, 만민의 인권 의식이 증진되고, 모든 인종을 초월한 한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 곧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만 일부 보수 교회들, 특히 한국의 보수 교회들에서는 유독 남녀의 성적 차별의 해소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도리어 그들은 남녀 차별이 성경적이라고 우겨 대기까지 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남녀의 동등성과 상호주의(고린도전서 7장)
고린도전서 7장에서 바울은 부부 생활에 대한 금욕주의자들의 질문을 받고 결혼, 이혼, 성생활에 대해 자세히 가르친다(고전 7:1-16). 그 가르침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원칙을 따라 부부 생활에 철저히 적용하는 것이다.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성적)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의 (성적) 권리를 빼앗지 말라."(고전 7:2-5)
바울의 이 가르침에 나타나는 남편과 아내의 철저한 동등성과 상호주의를 음미해 보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이 한다"는 말은 고대나 현대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수긍되는 말이겠지만, 뒤이어 나오는 "이와 같이 남편도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아내가 한다"는 말은 얼마나 충격적인가? 또 성관계를 잠깐 중단함에 있어서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 합의해야 한다는 원칙은 얼마나 파격적인가?
바울은 이어서 고린도전서 7장 10-16절에서 이혼에 관해 가르친다. 여기서도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원칙에 따라 남편과 아내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자들로 인식하고 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합니다. 사실 내가 아니라 주께서 명하시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중략)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마십시오."
남녀를 완전히 동등하게 취급하고 그들의 의무를 상호주의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첫째, 이혼을 금지한다. 둘째로는 남편과 아내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가르침을 줌으로써 자신이 남편은 아내를 쉽게 버릴 수 있고 아내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유대교적 가르침을 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 고린도전서 7장 12-16절은 혼합 결혼의 상황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즉, 부부 중 한쪽만 그리스도인이 되고 한쪽은 전통적인 우상숭배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고전 7:12-13)
유대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는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 정결한 것과 불결한 것을 구분하고, 불결한 것과 닿으면 불결해진다는 원칙을 천명한다. 이 성별(聖別)의 원칙을 가장 강조한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런데 열성적인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이 완전히 뒤집어진 것이다. 혼합 결혼 상태에 있는 부부들에게 이혼하지 말고 결혼 상태를 유지하라고 권하면서, 믿지 않는 남편이 믿는 아내로 인해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않는 아내가 믿는 남편으로 인해 거룩하게 된다는 원칙을 그 신학적 근거로 삼고 있다.
바리새인이었던 그가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복음 때문이다. 바로 예수로부터 그 원칙이 나왔다. 예수가 문둥병자를 만지셨다. 그런데 예수가 더러워진 게 아니라 오히려 문둥병자가 깨끗해졌다. 혈루병 앓는 여인이 예수를 만져서 예수가 더러워진 게 아니고 혈루병 앓는 여인이 깨끗해졌다. 예수께서 즐겨 하신 죄인들과 창기들과 세리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잔치로 예수께서 더러워진 것이 아니고 그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 예수의 이 위대한 원칙을 바울이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제 그것을 혼합 결혼에 적용한다.
또한 이 원칙은 하나님의 영, 성령이 이 세상의 영, 악령보다 더욱 강하다는 위대한 기독교적 확신을 반영하고 있다(요일 4:4). 그리스도를 믿는 한 배우자를 통해서 가족 전체가 성령의 성화하는 힘의 영역에 들어오게 되고, 혼합 결혼의 자녀들도 거룩하게 된다고 한다.
오늘날과 같이 믿는 여자들은 많고 남자들은 아주 적은 세상에서, 고린도전서 7장 12-16절의 가르침과 상충해 논란되는 고린도후서 6:14-7:1의 말씀을 일방적으로 그리고 율법주의적으로 적용하여 우리의 신자 딸, 자매들에게 신자 배우자만 찾다가 홀로 늙어 가도록 하는 가르침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구속적 능력에 대한 믿음이 약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엄격한 남녀 동등성과 상호주의가 돋보이지 않는가? 바울은 믿지 않는 아내가 믿는 남편에 의해서 거룩해진다고만 말하는가? 믿지 않는 남편이 믿는 아내에 의해서 거룩해진다고도 말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 자녀가 다 거룩하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 본문에서도 믿는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에게, 그리고 그 사이에 난 자녀에게 거룩성을 전달하는 제사장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는 아내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남편이, 그리고 그 자녀가 거룩해진다는 것이다. 어디 남편만 제사장 노릇한다고 쓰여 있는가? 우리 주위에도 아내/어머니를 통해서 신자 된 남편/아버지가 얼마나 많은가? 사실 그 숫자가 남편/아버지를 통해 신자 된 아내/어머니의 수보다 훨씬 많다.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들인 개신교의 교역자들로서 가정에서 남편/아버지만이 제사장이라는 전혀 비성경적인 가르침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가장한 유교의 가부장적 윤리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어렵게 하고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바울은 이혼을 금지한 예수의 가르침을 최대한 적용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만약에 믿지 않는 배우자가 끝까지 이혼하자고 주장하면 그때는 이혼하라고 한다. 지옥 같은 결혼을 계속 유지하는 것보다는 도리어 이혼해서 화평을 얻는 것이 낫다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화평 가운데 지내도록 부르셨기 때문이다(고전 7:15). 고린도전서 7장 15-16절에서 바울은 비그리스도인 배우자가 그리스도인 배우자에게 이혼을 고집하면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면 이혼하라고 가르치는데, 여기서도 철저한 남녀 동등성과 상호주의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화평 가운데 지내도록 부르셨으니까. 아내여, 네가 남편을 구할 수 있을는지 어찌 알 수 있느냐? 남편이여, 네가 아내를 구할 수 있을는지 어찌 알 수 있느냐?"
갈라디아서 3장 28절 원칙의 확대된 적용(고전 7:17-24)
이렇게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원칙을 결혼 생활에 있어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적용하며 남녀 동등성과 상호주의를 가르친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25-40절에서 결혼, 무혼, 재혼 등의 문제에 대한 가르침을 이어간다. 그런데 그 가르침을 7장 1-16절에 바로 이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두 단락 사이에 결혼 생활과 아무 관계 없는 주제, 할례/무할례와 노예/자유인에 관한 가르침을 끼워 넣었다(고전 7:17-24).
즉, 할례받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자는 할례의 흔적을 지워 버리려고 하지 말고,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자는 할례받으려 하지 말라는 가르침과, 노예의 상태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혹 기회가 주어지면 자유인이 되는 것도 좋지만 대체로 걱정하지 말고 노예의 상태에 머물고, 자유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자는 노예 되려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끼워 넣었다.
본문은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원칙 중,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다"는 부분을 앞선 단락 7:1-16에서 부부 관계에 적용한 뒤, 이제 그 원칙 중 나머지 두 부분 즉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할례)도 없고 헬라인(무할례)도 없다, 노예도 없고 자유자도 없다"를 고린도 교회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살피면서 바울이 유대인/이방인 차별 없음만 천명하면 되는 상황에서 굳이 노예/자유인 차별과 남자/여자 차별도 없음을 천명하는 것에 유의했다. 이곳 고린도전서 7장에서도 남자/여자 차별 없음만 천명해도 되는 상황에서 바울이 결혼에 관한 자신의 가르침의 맥락을 끊어가면서까지 노예/자유인 차별과 남자/여자 차별도 없음을 삽입하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3장에서나 이곳 고린도전서 7장에서 바울은 은혜로만/믿음으로만의 칭의의 복음과 그 복음이 새로 실현하는 의인들의 공동체, 즉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 새 피조물의 공동체에서는 이 타락한 세상의 전형적인 차별들, 모든 불의와 갈등과 불행을 낳는 인종적, 사회 신분적, 성적 차별들이 해소된다 또는 해소되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 내에서 여자들의 가르치는 권세와 여성 교역자들의 안수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남녀동등과 상호주의의 원칙이 단순히 신앙의 "실천"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원리인 복음의 본질에 속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계속)
- 이전글[칼럼] 교회의 위기, 당신의 대안은 무엇인가? (평화나무 8/2) 2024-08-05
- 다음글[언론보도] 여성 사역자들은 비정규직…교회 성차별 없어져야 (뉴시스 7/20) 2024-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