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사례비 연봉제로 해야한다 [당당뉴스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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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6-06-20 14:28 / 조회 2,214 / 댓글 0본문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hp.chol.com/~wanho/bbs/data/poem/esuyoil.js></script> 목회자 사례비 연봉제로 해야한다
사례비 분산지급은 오해 가능성 있어
김상득 전북대 교수 / 에클레시안 뉴스 논설위원
목회자 사례비, 연봉제로 하자.
몇 년 전 저명한 목사가 자신의 사례비를 공개하여 목회자 사례비의 적정선 물음이 언론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목회자 사례비는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그 논의가 터부시되어 왔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적은 사례비로 ‘과도한 성직’을 감당해 왔고, 또 ‘성직자’의 사례비에 대한 갑론을박이 목회자의 품위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다같이 구멍가게에서 출발하였지만 몇몇 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듯이, 교회 역시 다같이 개척교회에서 시작하였지만 몇몇 교회는 대형교회로 성장하여 목회자 사례비의 빈부격차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그래서 일부 목회자들은 ‘천문학적인’ 사례비를 받고 있는 게 오늘날 우리 교회의 현실이다.
사례비 분산 지급은 오해를 낳는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교회 현실을 인정하고 목회자 사례비에 대해 좀더 솔직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성경은 목회자 사례비 지급 방식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주고 있지 않다. 물론 모세 오경에는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즉, 제사장들은 땅을 분배받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제물’을 양식으로 삼았다.
그러나 모세 율법은 그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농경과 목축 사회였고 또 화폐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의 이러한 가르침을 화폐가 발달한 산업 정보화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목회자 사례비 문제는 오늘날의 상황을 고려하여 교회에 덕스러운 방안을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
일단 “적정선의 사례비는 얼마인가?”라는 물음은 논외로 하고 현재 교회에서 목회자에게 사례비를 어떻게 지급하고 있는지 그 실상을 살펴보자.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에게 크게 4가지 항목의 ‘사례비’를 지급하고 있다. 첫째는 매월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월급과 보너스이다. 둘째는 목회자 생활비이다. 생활비에는 주택, 전기세, 수도세, 김장비용 등이 포함된다. 셋째는 목회 활동비이다. 자동차(보험료, 세금, 수리비, 기름값 등 포함), 출장비 등이 활동비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자녀 교육비가 있다.
연금이나 건강보험료, 도서구입비 등도 물론 교회에서 지출한다. 일부 교회에서는 여기에다 휴가비를 지급하고 또 부흥회와 같은 특별 행사가 있는 경우 별도의 사례비를 지급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기본 생계비에 해당하는 사례비조차 받지 못하는 미자립교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목회자에게 고정 월급뿐만 아니라 목회자 및 그 가족의 활동에 따라 변하는 ‘유동적인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생활비 등 각종 항목을 포함한 연봉제
그러면 ‘목회자 사례비’는 무엇을 말하는가? 일반적으로 목회자 사례비는 유동적인 월급을 제외한 첫 번째 항목의 고정적인 월급과 보너스만을 의미한다. 교회의 예결산에서도 이 항목만을 목회자 사례비로 명문화하고 있다. 일부 중대형 교회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이 항목의 사례비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하소연한다. 하지만 이는 눈감고 아웅 하는 격에 지나지 않는다. 명목상의 사례비가 아니라 실질적인 사례비를 우리는 물어야 한다. 목회 활동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목회자 사례비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자신의 노동, 즉 목회 활동에 대한 대가로 이러한 돈을 교회로부터 받기 때문이다.
주택을 교회로부터 제공받았다면 그 목회자는 주택 전세에 필요한 실질적인 비용을 월급으로 교회에서 받는 것이나 진배없다. 구입한 도서를 교회 도서관에 비치하지 않고 개인이 소장한다면 도서구입비 역시 목회자 사례비에 해당된다. 전기세 전화세 수도세 등도 마찬가지이다. 또 실제로 대부분의 근로자 월급에는 이러한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근로자는 자신의 월급에서 건강보험료를 지불한다. 근로자는 자신의 월급에서 생활비를 지급한다. 근로자는 자신의 월급에서 주택비용을 지출한다. 휴가비 역시 근로자의 월급에 포함되어 세금이 매겨진다. 자녀 교육비조차도 월급에 포함되어 그 액수만큼 세율에 매겨진다. 교회에서 이를 직접 지출한다고 월급에서 제외한다면 다른 근로자와의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유동적 생활비, 목회자가 직접 지출해야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여러 항목으로 분산 지급해 온 목회자 사례비를 하나의 항목으로 통일시켜야 한다. 아마 분산 지급된 모든 항목을 합하면 목회자의 실질적인 사례비는 적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에 소재한 A 교회 목회자가 보너스를 포함하여 월 200만원의 고정 사례비를 받는다고 하자.
그런데 교회에서 33평형 아파트를 제공하고, 아파트 관리비, 전화세 등 각종 공과금을 납부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자녀 등록금 일체를 납부해 주었다고 하자. 이 정도 생활을 하자면 적어도 월급이 500만원은 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명목상의 사례비를 들어, 이 교회 목회자 사례비가 월 200만원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이는 억지에 불과하여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목회자 사례비의 분산 지급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사항은 ‘유동적인 사례비’, 특히 생활비 물음이다. 대부분의 경우 생활비 관련 청구서를 가져오면 교회의 재정 담당자가 이를 직접 은행에 납부한다. 그런데 생활비는 목회자와 그 가족이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그 금액이 달라진다. 전기, 전화, 수도 등은 쓰는 만큼 비용이 청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활비 지출방식으로 인해 쓴 웃음을 자아내는 해프닝이 종종 벌어진다. 미국 C 교회에서 창립 20주년 기념부흥성회 강사로 한국의 저명한 목사를 초청하였다.
그런데 성회가 끝난 다음 숙박비가 예상과는 달리 엄청나게 많이 청구되어 재정 담당 장로가 명세서를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국제 전화비가 일주일 동안 $700(약 70만원)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속된 말로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격언이 있듯이, 자신의 교회와 집에서 사용하던 습관대로 미국에 와서도 국제전화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이 강사 목사는 교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은 것이다.
인간, ‘거지 근성’과 ‘공짜 심리’의 노예?
내 주머니에서 내 소유의 돈을 직접 지출하지 않고 누군가가 무조건 대신 납부해준다면 우리 인간은 ‘절제’와 ‘절약’의 미덕을 실천하기 어렵다. 목회자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이러한 심리적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국제 전화의 경우, 호텔 전화를 이용하지 않고 전화카드를 이용하면 50% 이상 절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돈이 지출된다면 국제전화를 그렇게 무절제하게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낭비의 희생자는 누구인가? 바로 교인이다. 교인의 헌금이 기도와는 달리 목회자의 무절제로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이다. 생활비를 교회에서 직접 지출하기 때문에 생긴 이러한 낭비를 최소화하자면 ‘공짜’ 심리를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 방법은 교회에서 목회자에 대해 매월 일정액의 생활비를 사례비에 포함시키고, 그 사례비에서 생활비를 목회자가 직접 지출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사실 ‘생활비’라는 개념은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듯이, 생활과 관련되지 않는 지출 항목이 어디 있는가? 실제로 미국 M 교회에서 이런 에피소드가 하나 발생하였다. 모 교회 연말 결산 공동의회에서 담임목사와 교인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목회자 생활비 지출에서 “강아지 밥값 $10, 고양이 밥값 $5” 항목이 눈에 띄어 어느 교인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자, 담임목사는 “그것 역시 생활비의 일부”라고 대답하였기 때문이다.
애완용 동물을 집에서 기르는 일은 미국인에게 있어서 생활의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비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이런 생활비까지 교회 예산에서 지출해야 하는가이다. 이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자면 교회가 생활비를 직접 지출하는 현재의 방식을 폐지하는 길밖에 없다. 생활비를 사례비에 포함시켜 목회자가 그 비용을 직접 지출하게 하는 방식은 목회자와 교인 사이의 갈등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이다.
목회자의 사생활과 품위를 위한 연봉제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제도가 목회자 본인에게도 득이 된다. 이렇게 되면 목회자는 생활비 하나하나에 대해서 교회에 청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도 없고 또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도 자신이 원하는 주택에서 살 수 있는 자유가 있지 않는가? 그런데 왜 교회가 목회자의 주택마저 결정하는가?
또 생활비를 일일이 교회에 청구하면 목회자가 돈을 밝힌다는 소리도 듣기 쉽고, 또 무엇보다 위의 사례처럼 정말로 ‘사소한 생활비 청구’로 인해 교인들과 얼굴을 붉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목회자가 성직자로서 품위를 유지하려면 생활비 청구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일반 근로자처럼 사례비에 생활비를 포함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노인 문제이다. 다시 말해, 목회자 역시 은퇴 후의 삶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고한경직목사는 한 평생 자신 소유의 저금통장조차 하나 만들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현재의 교회 실정을 고려할 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또 현재의 원로목사 제도는 교인들로부터도 달갑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정년퇴직 후 목회자 예우 문제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교회에서 종종 일어나지 않는가? 아마 사회의 그 어떤 직장도 퇴직 후에도 생활비 일체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노후 생활까지 교회에 부담지울 수 없지 않는가?
목회자의 노후, 스스로 책임져야.
교회가 목회자의 정년 후 삶을 서면 계약을 통해 보장하지 않는 한, 목회자는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책임질 수밖에 없다.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현재의 목회자 연금 제도만으로는 노후 대책이 불가능하다. 그 방법은 무엇인가? 목회자에게도 노후에 살 수 있는 집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처럼 교회에서 주택을 목회자에게 ‘무상 임대’해주는 방식을 채택하게 되면, 목회자는 재직 기간동안은 주택 걱정 없이 목회에 전념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 미래가 불확실하다.
IMF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목회자의 경우도 그 정도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지만 역시 ‘평생교회’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근로자가 해고를 당하듯이, 목회자 역시 교회로부터 해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민 교회의 경우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교회에서 주택을 제공하는 현행 체제에서 목회자가 해고를 당하면 당장 집을 비워줄 것을 당회가 요구한다. 살 집이 없어진다.
이런 불행한 일을 예방하고 또 목회자로 하여금 노후 대책을 스스로 수립할 수 있도록 사례비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주택비용을 사례비에 포함시키는 연봉제이다. 실제로 이곳 몇몇 이민교회에서는 주택비용을 사례비에 포함시켜 지급하고 있다. 이제 교인들도 목회자가 자신의 재산을 형성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목회자가 자신 명의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가 없다.
가톨릭의 신부와 달리 목사는 목회자 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담임목사가 교회 재정을 자유자재로 집행하는 경우에는 곤란하다. 다시 말해, 목회자의 재산 소유가 인정되려면 먼저 교회 재정이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그리고 투명하게 지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 헌금이 목회자 개인의 사유재산 형성에 편법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 재정의 회개?
따라서 목회자 사례비는 주택비, 생활비, 자녀교육비, 도서구입비 등을 모두 포함시켜 연봉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목회자에게 지출되는 비용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또 목회자 자신도 사생활과 품위를 유지하면서 노후대책을 세울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좀더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 및 인간 심리 법칙을 직시하고 목회자에게 어떻게 사례비를 지급하는 것이 합당한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마치 구멍가게를 운영할 때는 돈을 어떻게 사용해도 별 무리가 없지만 일단 주식회사로 성장하면 모든 돈의 지출은 합리적이어야 하듯이, 목회자 사례비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척교회의 경우 목회자에게 기본 생계비도 지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목회자 사례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교회가 자립하여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연봉제 실시를 통해 교회 제정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김상득 /전북대 교수/에클레시안 뉴스 논설위원
김상득교수는 서울대와 동대학원에서 응용 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전북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해 있으며 장신대학원을 졸업한 목사이다.
입력 : 2006년 06월 02일
사례비 분산지급은 오해 가능성 있어
김상득 전북대 교수 / 에클레시안 뉴스 논설위원
목회자 사례비, 연봉제로 하자.
몇 년 전 저명한 목사가 자신의 사례비를 공개하여 목회자 사례비의 적정선 물음이 언론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목회자 사례비는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그 논의가 터부시되어 왔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적은 사례비로 ‘과도한 성직’을 감당해 왔고, 또 ‘성직자’의 사례비에 대한 갑론을박이 목회자의 품위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다같이 구멍가게에서 출발하였지만 몇몇 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듯이, 교회 역시 다같이 개척교회에서 시작하였지만 몇몇 교회는 대형교회로 성장하여 목회자 사례비의 빈부격차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그래서 일부 목회자들은 ‘천문학적인’ 사례비를 받고 있는 게 오늘날 우리 교회의 현실이다.
사례비 분산 지급은 오해를 낳는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교회 현실을 인정하고 목회자 사례비에 대해 좀더 솔직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성경은 목회자 사례비 지급 방식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주고 있지 않다. 물론 모세 오경에는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즉, 제사장들은 땅을 분배받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제물’을 양식으로 삼았다.
그러나 모세 율법은 그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농경과 목축 사회였고 또 화폐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의 이러한 가르침을 화폐가 발달한 산업 정보화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목회자 사례비 문제는 오늘날의 상황을 고려하여 교회에 덕스러운 방안을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
일단 “적정선의 사례비는 얼마인가?”라는 물음은 논외로 하고 현재 교회에서 목회자에게 사례비를 어떻게 지급하고 있는지 그 실상을 살펴보자.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에게 크게 4가지 항목의 ‘사례비’를 지급하고 있다. 첫째는 매월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월급과 보너스이다. 둘째는 목회자 생활비이다. 생활비에는 주택, 전기세, 수도세, 김장비용 등이 포함된다. 셋째는 목회 활동비이다. 자동차(보험료, 세금, 수리비, 기름값 등 포함), 출장비 등이 활동비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자녀 교육비가 있다.
연금이나 건강보험료, 도서구입비 등도 물론 교회에서 지출한다. 일부 교회에서는 여기에다 휴가비를 지급하고 또 부흥회와 같은 특별 행사가 있는 경우 별도의 사례비를 지급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기본 생계비에 해당하는 사례비조차 받지 못하는 미자립교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목회자에게 고정 월급뿐만 아니라 목회자 및 그 가족의 활동에 따라 변하는 ‘유동적인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생활비 등 각종 항목을 포함한 연봉제
그러면 ‘목회자 사례비’는 무엇을 말하는가? 일반적으로 목회자 사례비는 유동적인 월급을 제외한 첫 번째 항목의 고정적인 월급과 보너스만을 의미한다. 교회의 예결산에서도 이 항목만을 목회자 사례비로 명문화하고 있다. 일부 중대형 교회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이 항목의 사례비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하소연한다. 하지만 이는 눈감고 아웅 하는 격에 지나지 않는다. 명목상의 사례비가 아니라 실질적인 사례비를 우리는 물어야 한다. 목회 활동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목회자 사례비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자신의 노동, 즉 목회 활동에 대한 대가로 이러한 돈을 교회로부터 받기 때문이다.
주택을 교회로부터 제공받았다면 그 목회자는 주택 전세에 필요한 실질적인 비용을 월급으로 교회에서 받는 것이나 진배없다. 구입한 도서를 교회 도서관에 비치하지 않고 개인이 소장한다면 도서구입비 역시 목회자 사례비에 해당된다. 전기세 전화세 수도세 등도 마찬가지이다. 또 실제로 대부분의 근로자 월급에는 이러한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근로자는 자신의 월급에서 건강보험료를 지불한다. 근로자는 자신의 월급에서 생활비를 지급한다. 근로자는 자신의 월급에서 주택비용을 지출한다. 휴가비 역시 근로자의 월급에 포함되어 세금이 매겨진다. 자녀 교육비조차도 월급에 포함되어 그 액수만큼 세율에 매겨진다. 교회에서 이를 직접 지출한다고 월급에서 제외한다면 다른 근로자와의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유동적 생활비, 목회자가 직접 지출해야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여러 항목으로 분산 지급해 온 목회자 사례비를 하나의 항목으로 통일시켜야 한다. 아마 분산 지급된 모든 항목을 합하면 목회자의 실질적인 사례비는 적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에 소재한 A 교회 목회자가 보너스를 포함하여 월 200만원의 고정 사례비를 받는다고 하자.
그런데 교회에서 33평형 아파트를 제공하고, 아파트 관리비, 전화세 등 각종 공과금을 납부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자녀 등록금 일체를 납부해 주었다고 하자. 이 정도 생활을 하자면 적어도 월급이 500만원은 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명목상의 사례비를 들어, 이 교회 목회자 사례비가 월 200만원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이는 억지에 불과하여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목회자 사례비의 분산 지급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사항은 ‘유동적인 사례비’, 특히 생활비 물음이다. 대부분의 경우 생활비 관련 청구서를 가져오면 교회의 재정 담당자가 이를 직접 은행에 납부한다. 그런데 생활비는 목회자와 그 가족이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그 금액이 달라진다. 전기, 전화, 수도 등은 쓰는 만큼 비용이 청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활비 지출방식으로 인해 쓴 웃음을 자아내는 해프닝이 종종 벌어진다. 미국 C 교회에서 창립 20주년 기념부흥성회 강사로 한국의 저명한 목사를 초청하였다.
그런데 성회가 끝난 다음 숙박비가 예상과는 달리 엄청나게 많이 청구되어 재정 담당 장로가 명세서를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국제 전화비가 일주일 동안 $700(약 70만원)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속된 말로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격언이 있듯이, 자신의 교회와 집에서 사용하던 습관대로 미국에 와서도 국제전화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이 강사 목사는 교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은 것이다.
인간, ‘거지 근성’과 ‘공짜 심리’의 노예?
내 주머니에서 내 소유의 돈을 직접 지출하지 않고 누군가가 무조건 대신 납부해준다면 우리 인간은 ‘절제’와 ‘절약’의 미덕을 실천하기 어렵다. 목회자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이러한 심리적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국제 전화의 경우, 호텔 전화를 이용하지 않고 전화카드를 이용하면 50% 이상 절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돈이 지출된다면 국제전화를 그렇게 무절제하게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낭비의 희생자는 누구인가? 바로 교인이다. 교인의 헌금이 기도와는 달리 목회자의 무절제로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이다. 생활비를 교회에서 직접 지출하기 때문에 생긴 이러한 낭비를 최소화하자면 ‘공짜’ 심리를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 방법은 교회에서 목회자에 대해 매월 일정액의 생활비를 사례비에 포함시키고, 그 사례비에서 생활비를 목회자가 직접 지출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사실 ‘생활비’라는 개념은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듯이, 생활과 관련되지 않는 지출 항목이 어디 있는가? 실제로 미국 M 교회에서 이런 에피소드가 하나 발생하였다. 모 교회 연말 결산 공동의회에서 담임목사와 교인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목회자 생활비 지출에서 “강아지 밥값 $10, 고양이 밥값 $5” 항목이 눈에 띄어 어느 교인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자, 담임목사는 “그것 역시 생활비의 일부”라고 대답하였기 때문이다.
애완용 동물을 집에서 기르는 일은 미국인에게 있어서 생활의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비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이런 생활비까지 교회 예산에서 지출해야 하는가이다. 이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자면 교회가 생활비를 직접 지출하는 현재의 방식을 폐지하는 길밖에 없다. 생활비를 사례비에 포함시켜 목회자가 그 비용을 직접 지출하게 하는 방식은 목회자와 교인 사이의 갈등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이다.
목회자의 사생활과 품위를 위한 연봉제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제도가 목회자 본인에게도 득이 된다. 이렇게 되면 목회자는 생활비 하나하나에 대해서 교회에 청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도 없고 또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도 자신이 원하는 주택에서 살 수 있는 자유가 있지 않는가? 그런데 왜 교회가 목회자의 주택마저 결정하는가?
또 생활비를 일일이 교회에 청구하면 목회자가 돈을 밝힌다는 소리도 듣기 쉽고, 또 무엇보다 위의 사례처럼 정말로 ‘사소한 생활비 청구’로 인해 교인들과 얼굴을 붉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목회자가 성직자로서 품위를 유지하려면 생활비 청구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일반 근로자처럼 사례비에 생활비를 포함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노인 문제이다. 다시 말해, 목회자 역시 은퇴 후의 삶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고한경직목사는 한 평생 자신 소유의 저금통장조차 하나 만들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현재의 교회 실정을 고려할 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또 현재의 원로목사 제도는 교인들로부터도 달갑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정년퇴직 후 목회자 예우 문제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교회에서 종종 일어나지 않는가? 아마 사회의 그 어떤 직장도 퇴직 후에도 생활비 일체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노후 생활까지 교회에 부담지울 수 없지 않는가?
목회자의 노후, 스스로 책임져야.
교회가 목회자의 정년 후 삶을 서면 계약을 통해 보장하지 않는 한, 목회자는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책임질 수밖에 없다.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현재의 목회자 연금 제도만으로는 노후 대책이 불가능하다. 그 방법은 무엇인가? 목회자에게도 노후에 살 수 있는 집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처럼 교회에서 주택을 목회자에게 ‘무상 임대’해주는 방식을 채택하게 되면, 목회자는 재직 기간동안은 주택 걱정 없이 목회에 전념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 미래가 불확실하다.
IMF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목회자의 경우도 그 정도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지만 역시 ‘평생교회’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근로자가 해고를 당하듯이, 목회자 역시 교회로부터 해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민 교회의 경우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교회에서 주택을 제공하는 현행 체제에서 목회자가 해고를 당하면 당장 집을 비워줄 것을 당회가 요구한다. 살 집이 없어진다.
이런 불행한 일을 예방하고 또 목회자로 하여금 노후 대책을 스스로 수립할 수 있도록 사례비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주택비용을 사례비에 포함시키는 연봉제이다. 실제로 이곳 몇몇 이민교회에서는 주택비용을 사례비에 포함시켜 지급하고 있다. 이제 교인들도 목회자가 자신의 재산을 형성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목회자가 자신 명의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가 없다.
가톨릭의 신부와 달리 목사는 목회자 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담임목사가 교회 재정을 자유자재로 집행하는 경우에는 곤란하다. 다시 말해, 목회자의 재산 소유가 인정되려면 먼저 교회 재정이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그리고 투명하게 지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 헌금이 목회자 개인의 사유재산 형성에 편법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 재정의 회개?
따라서 목회자 사례비는 주택비, 생활비, 자녀교육비, 도서구입비 등을 모두 포함시켜 연봉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목회자에게 지출되는 비용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또 목회자 자신도 사생활과 품위를 유지하면서 노후대책을 세울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좀더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 및 인간 심리 법칙을 직시하고 목회자에게 어떻게 사례비를 지급하는 것이 합당한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마치 구멍가게를 운영할 때는 돈을 어떻게 사용해도 별 무리가 없지만 일단 주식회사로 성장하면 모든 돈의 지출은 합리적이어야 하듯이, 목회자 사례비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척교회의 경우 목회자에게 기본 생계비도 지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목회자 사례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교회가 자립하여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연봉제 실시를 통해 교회 제정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김상득 /전북대 교수/에클레시안 뉴스 논설위원
김상득교수는 서울대와 동대학원에서 응용 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전북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해 있으며 장신대학원을 졸업한 목사이다.
입력 : 2006년 06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