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합동 교단의 '바른' 성경 번역의 부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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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4-06-04 17:57 / 조회 2,345 / 댓글 0본문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hp.chol.com/~wanho/bbs/data/poem/esuyoil.js></script> 총회의 현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합니다
2004년 4월 26일
1. 최근 예장합동(총회장 임태득 목사)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사안에 대해서 예장합동 소속 내의 갱신그룹인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옥한흠 목사 교갱협)가 교단 내의 뜻을 같이하는 목회자 및 장로들과 함께 우려를 표명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2. 발표된 성명서에는 최근 총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와 관련하여 교단 내의 많은 목회자들과 장로들이 함께 깊은 우려감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모두 네 가지 사안에 대한 촉구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3. 성명서 발표로 인해 이미 성경번역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번역위원들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예산 5억 집행을 결정한 교단의 결정이 향후 어떻게 논의될지, 그리고 은급기금의 불법사용문제와 전년도 총회에서 설치되어 활동을 해온 '기독신문조사처리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평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타 교단과의 통합 문제 등의 현안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는 최근 총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와 관련하여 교단내의 많은 목회자들과 장로들과 함께 깊은 우려감을 가지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첫째, '총회개역개정판성경대책위원회'는 총회의 독자적인 성경 번역을 시행하기로 결의하고 재정을 집행하기로 한 월권적 결정을 중단해 줄 것을 촉구한다.
전년도 제88차 총회에서는 대책위원회에 2004년 89회 총회에 보고하기 위한 1년 기간의 개역개정판에 관한 연구라는 소임을 맡겼을 뿐이다. 지금 대책위원회가 보여주는 결의와 행동은 총회가 가지고 있는 상식적인 논의 절차와 과정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된 이후 하나의 성경을 사용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해왔던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모습도 외면하는 처사이다.
둘째, 총회 은급재단이사회의 은급재단 기금 불법 사용문제의 전모가 조속한 시간 내에 밝혀지기를 촉구한다.
20억이 전용되었든지 40억이 전용되었든지, 아니면 60억 이상이 전용되었든지 가장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할 교회의 헌금이 불법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것은 추문(醜聞)이다. 따라서 일체의 진상이 조속한 시간 내에 밝혀지도록 조사하기를 바란다.
셋째, '기독신문사조사처리위원회'는 맡겨진 소임에 충실하여 신속하게 그 결과를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
작년 총회에서 '기독신문 사장 주필 실행위원 임원 해임에 대한 긴급동의안'이 올라간 이후 구성된 '기독신문조사처리위원회'가 회의과정을 통해 보여준 결의는 여러 번 번복되었고, 오랜 시간을 허비한 후 급기야 내린 결의는 의혹만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따라서 '기독신문조사처리위원회'와 '기독신문전체이사회'는 조사와 결의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이 있었다는 등의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처음 총회에서 긴급동의안이 제안된 대로 엄정한 조사를 촉구한다.
넷째, 타 교단과의 통합 과정에 있어서 총회 전체가 논의하고 신중하게 결의할 것을 촉구한다.
현재 본 교단과의 통합 및 영입을 추진하는 교단이 있다면 이들에 대해 충분한 논의과정과 총회적인 의견수렴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별히 '다락방'으로 알려진 전도총회와 같은 경우 이단으로 단정되었고, 산하 노회들 가운데 영입에 대한 반대 헌의안을 상정시킨 만큼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따라서 타 교단 통합 문제에 대해 총회임원들은 신중을 기하여 총회가 모이기 전까지 통합을 전제로 한 타 교단과의 접촉을 중단해 줄 것을 촉구한다.
현재 총회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은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 전체에 소망을 주어야 할 견인차로서 본 교단이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지금 총회와 관련하여 야기되고 있는 상기의 사건들에 대해 책임있는 행동과 조치를 취해주기를 촉구한다.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에 속한 우리는 상기에 촉구한 것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우려하는 마음으로 계속 지켜볼 것이며, 내려지는 결과에 상응한 실천적 움직임을 해나갈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2004년 4월 26일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옥한흠 목사 외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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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합동 교단의 '바른' 성경 번역의 부당성
2004년 6월 1일 정용성 목사 (대구드림교회)
들어가는 말
성서 공회에서 발간한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이하 <개정판>)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다. 왜 성서 공회는 <개정판>을 발간하려고 하며, 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 '개역개정판 성경대책 위원회'는 <개정판>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성경번역과 출판을 강행하려고 하는가? 이에 관하여 교단 정치적인 요소와 경제적인 요소, 그리고 신학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본인은 신약학을 전공한 학도이자 목회자로서, 다른 요소들보다는 신학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논제를 다루고자 한다.
특히 지난 5월 10일부터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개최된 2004년 목사 장로 기도회에서 발제된 서철원 교수의 '올바른 성경번역의 정당성'이란 강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기독신문에서 발췌하여 게재하였다. 본인은 서철원 교수의 입장이 전체 번역위원들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면, 매우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보고, 학자와 목회자로서 신학적인 문제들에 관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어서 본 글을 쓰게 되었다.
먼저 초두에 본인의 입장을 명백하게 밝힌다. 현재 한국 개신교는 새로운 번역본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새로운 성경이 그나마 지속되어 온 교회의 분열을 자초해서는 곤란하다. 가능한 한 개신교 교회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불가피하게 성경 번역을 단독적으로 한다고 하여도, 현재 교단의 성경 번역 위원들의 신학적인 입장과 역량으로는 부족하다. 시간적인 여유와 공개적인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따라서 본인의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이 진행 될 것이다. 먼저 <개정판>에 과연 어떠한 신학적인 문제점이 있는가? 두 번째로 과연 독자적인 성경 번역의 충분한 타당성이 있는가? 그리고 과연 독자적인 번역의 신학적 역량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독자적인 성경번역의 문제점과 그 파장은 무엇이겠는가?
1. <개정판>의 신학적인 문제점
<개정판>의 신학적인 문제점들에 관하여 총신대의 김정우 교수와 서철원 교수가 이미 <신학지남> 2001년 가을호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김정우 교수는 <개정판>이 개선된 점과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개정판>이 <개역판>의 신학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반면에, 몇 부분에서의 오역과 신학적 재고의 여지를 지적하였다. 이는 비판과 대안의 제시라는 성서학자로서의 납득할만한 태도를 견지하였다고 본다. 서철원 교수는 창세기 174 사례, 마태복음 41 사례, 요한복음 16 사례 등 총 231 사례를 제시하여, 이 중에 121 사례는 개역 성경이 오히려 옳다고 판단하였고, 나머지 65개의 사례는 <개정판>의 오류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서 교수는 창 24장 43절의 동정녀를 뜻하는 '알마'(hm;l]['h; )를 '젊은 여자'로 번역하면, 예수의 동정녀 탄생 교리가 무너진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창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에서 '의'(hq;d;x] )를 '공의'로 번역하는 것은 이신칭의 사상의 교리자체가 무너진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평가와 더불어 대한성서공회 대책 위원장인 정진경 목사와 합동측 대책위 위원장 최기채 목사가 2003년 5월 26일 합동측의 요구를 들어서, 73곳에 42 가지의 <개역판>으로의 환원과 10곳의 <개역판>의 새로운 수정, 그리고 2 곳의 난하주 첨가를 합의하고 서명하였다.
이러한 논의과정을 살펴보건대, 합동측에서 충분하게 문제를 제기하였고, 성서공회측 또한 대부분을 수용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충분한 이해와 합의의 여지가 얼마든지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과연 <개정판>이 우리 교단이 견지하는 신학적인 견해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번역을 하고 있는가? 이다. 본인이 살펴 본 바로는 단어와 문법의 번역 상의 문제에 있어서, 사소한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문단을 신학적인 입장에서 왜곡, 변조하거나, 기초적인 교리 상에 심각한 신학적인 입장의 차이를 발견할 수가 없다.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고 정확하게 본문의 의미를 찾는 것은 해석자의 임무이지, 번역자의 임무가 아니다. 그리고 합동측 대책위나 번역 위원들 중에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는 없다.
예외로 서철원 교수는 앞에서 지적한 두 가지를 최근에 다시 주장하였다. 그러나 <개정판>은 창 15:6에서 이미 '의'로 환원하여 놓았다. 그리고 창 24장 43절의 '알마'를 '젊은 처녀'로 번역한 것을 가지고, 이는 동정녀 탄생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번역으로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침소봉대의 오류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의 근거가 되는 구절은 이사야 7장 14절이다. <개정판>은 이 구절에서 분명히 '처녀'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알마'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여러 가지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 단어의 의미는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문맥에 따라서 번역, 해석되어야 함이 성경해석학의 기본임은 신학대학원 학생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본인이 <개정판>을 읽고, 또 문제를 지적하는 입장을 다 감안하더라도, 우리 교단의 기본적인 신학 기초와 신앙고백을 흔들만한 사항들이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만일 있다면 구체적으로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차이점을 가지고 정경관의 차이니 자유주의니 현대신학에 물들었다고 하는 것은 너무 과장된 주장이 아니겠는가!
2. 과연 독자적인 번역을 할 만큼 충분한 타당성이 있는가?
두 번째의 문제는 앞에서 다루었던 바, 글자로 나타난 명맥한 번역상의 차이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신학적인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a) 먼저 번역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이 있다. "번역(飜譯)은 재창작이다 그러나 반역이다."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에, 완벽한 번역이란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다. 앞의 말은 아무리 잘 번역하여도, 원작자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또한 다른 의미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번역은 번역이다.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하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든다. 특히 성경번역자들은 겸손하여야 한다. 자신들만이 올바르고 좋은 번역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만큼, 번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어떠한 번역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하나의 단어가 다른 번역의 여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요한복음 3장 3절에서 헬라어 a;nwqen을 '거듭'이라고 번역해야하나, '위로부터'라고 번역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서 말씀하였다고 한다면, 어떻게 번역하여야 하는가? 이처럼 번역은 번역 자체로서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 성경의 '의' 개념에 공의라는 개념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만일 원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이에 해당하는 한글 단어는 그 보다 좁은 의미로 사용된다면, 어떻게 바르고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가?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문자적인 번역이 가지고 있는 한계 중에 한계이다. 번역 상에 나타나는 이러한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여야 하고, 이를 해석자들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 진정으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싶다면, 신자들에게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가르치는 것이 올바르지 않는가? 문자적인 번역을 한다고 정확무오한 번역이 가능한가? 그것은 보수 신학적 환상일 뿐이다. 본인의 입장은 문자적인 번역을 지지한다. 그러나 문자적 번역도 시학적 번역이며 의미번역의 일종이다.
흔히 킹제임스 번역본을 흠정역이라고 하여 성령의 영감이 있는 성경으로 주장하면서, 다른 번역본은 사용하는 자들을 모두 다 신학적인 이단으로 정죄하는 부류가 있다. 본인이 공부하였던 스코틀랜드에는 보수를 주장하며 분립하였던 The Free Church가 있다. 이 교단의 배경을 가진 분들이 the Banner of Truth를 출판한다. 그런데 이 교단이 NIV를 예배를 위한 성경으로 채택하자 이들을 정죄하고 분립하여 나간 부류들이 바로 KJV만이 유일하게 성령의 영감을 입은 영어성경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도 KJV 한글번역본이 무흠하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이들은 <개정판>을 반대하는 김정우교수나 서철원교수도 잘못된 성경관에 기초하여 영적 혼란에 빠져있다고 주장한다. 다음 글을 보라: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117호 (2001.12)에 게재된 조승규 교수의 '영적 혼란을 초래하는 성경 - 개역성경을 구수하는 자들의 영적 혼란'(http://www.jbbc.or.kr/ column_1/sp117.html). 본인이 이들의 입장을 옳다고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우리가 비판하는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보수는 끊임없이 다른 이를 배척하고 자기 울타리를 치는데 그 생명력이 있지 않고, 본질에 근거하여 끊임없는 자기개혁을 통하여 다른 이를 수용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데 그 생명력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가 아니라 폐쇄이다. 폐쇄는 아집과 자기 은둔 속에 썩어져가며 자멸할 뿐이다. 남을 비판하는 자는 자신도 비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더욱이 아집과 정죄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수고를 매도하면, 어떻게 자신들은 그러한 비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b) 독자적인 성경번역을 추구하는 분들의 견해에는 '보수와 자유'라는 흑백논리적인 이분법이 너무나 뚜렷하다. 자신들 외에는 다 자유주의자들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개정판> 성경 번역에 참여한 학자들 중에는 복음주의 입장에 속한 학자들이 있다. 이들의 수고와 노력에는 안중도 없고, 자유주의자라는 신학적 낙인 속에 번역자들이 신봉하지도 않고 고백하지도 않고 표현하지도 않는 견해들을 다 집어넣어서 잘못되었다고 매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마치 사회주의적인 발언을 하면 공산주의로 몰아서 반공법의 굴레로 씌워서 사회적인 매장을 하던 매카시즘과 무엇이 다른가!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작업을 하였던 복음주의 입장의 학자들을 함께 매몰시키는 것은 잔인하고 독단적이다.
그들의 의견은 이렇다. '자유주의자는 자유주의 신학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번역한다. 그러나 우리는 문자적인 번역을 한다.' 이는 번역이나 해석의 기본을 무시하는 독단론적인 입장이다. 문자적인 번역하는 이들도 신학적인 의미 해석을 하는 것이다. 한 단어를 번역하고 해석하는데 의미해석을 하지 않고 어떻게 의미전달이 가능한가? 한 단어 자체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감안하지 않고 어떻게 번역이 가능한가?
(c)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라는 이분법 속에, 자유주의자들은 현대신학으로 무장되어 있고, 현대문법과 해석방법으로 해석하고 번역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현대문법과 해석방법을 사용하면 다 자유주의자들이다. 이렇게 주장한다면 정말 어이가 없는 무식한 보수가 아닌가! 그러면 독립적인 성경번역을 추구하는 학자들은 현대 교육과 현대 서구 신학대학에서 공부한 자들이 한 면도 없고, 다 순수 국내파이거나 아니면 고대식 교육을 받았는가! 자신이 공부한 사회의 문화와 인식에 물들지 않았다고 장담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만일 있다면 왜 외국에 가서 비싼 외화를 소비하며 공부하여 왔는가? 미국의 어느 신학교가 총신과 똑같은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그 이외의 신학교나 대학 출신 교수들은 태생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식의 잣대는 외부에 대한 무조건식 배척과 더불어 내부적인 사상 검열을 통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권력화하려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의 보편적인 행태이다. 그 예가 바로 이슬람의 근본주의이다. 이런 식의 입장을 가진 자들과 어떻게 누가 대화를 하겠는가! 독단은 고립을 자초한다. 고립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아무런 창의적인 생성작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d) 신학이 다르면 각자의 신학을 따라 성경을 번역한다는 사고,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고 만든 것은 자유주의적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는 대화자체를 거부하며, 보수주의가 주도권을 가지고 해야 만이 옳다는 논리이다. 이는 또한 '나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면 다 나쁘다'는 기원의 오류 (the genetic fallacy)에 빠져있다. 신학은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의견이 피력되는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지, 그 자체로서 정죄하여서는 곤란하다. 자유자들이 명맥하게 표현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럴 것이다' 하고 추측하여 반대하는 것은 코메디에서도 비웃는 논리이다. 보수주의 신학도 자유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비판과 창의를 통하여 발전하여 왔다.
위와 같은 우려 속에서 이러한 극단적인 이분법에 의해 정죄와 폐쇄적인 사고의 틀을 가진 분들의 손으로 성경이 번역된다면, 과연 어떤 성경 번역이 이뤄질지 염려가 된다. 이 또한 또 다른 기원의 오류에 속하지만, 차라리 번역하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3. 과연 독자적인 성경 번역의 역량이 있는가?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독자적인 성경 번역을 추진하는 우리 교단이 과연 성경 번역을 제대로 할 역량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이 말은 현재 번역 위원으로 위촉된 분들의 역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 학자적인 식견과 번역할 수 있는 문학적인 소양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우리 교단의 인적 자원이 과연 이 번역 작업을 소화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성경 번역은 돈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성경 번역은 외국 도서 번역이 아니다. 출판사가 있다고 성경 번역이 되는 것도 아니다. 충분한 인적 자원과 충분한 시간과 관심 그리고 점검을 하여야 한다. 대한 성서공회의 경우에는 10년을 생각하며 새로운 번역을 계획하고 착수한다. 수많은 인적 자원이 투자되어서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급작스럽게 작업을 하려고 한다. 일년 만에 신구약 전체번역을 할 있다고 공언하는 분을 보고, 존경스럽기도 하고 염려스럽기도 하다. 성경 번역을 도대체 해 보신 분이지, 아니면 머리로만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위촉된 성경번역 위원들도 손에 꼽을 만하다. 이것은 무리이다. 총신대 신대원 교수들은 늘 시간이 모자란다고 한탄을 하여왔는데, 시간을 내어서 번역작업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마나 방학 기간에 골몰할 수 있을 텐데, 집중하기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전문적으로 성경번역에 시간을 다 바치는 분도 없다.
성서공회의 번역 위원들은 한 학기 내내 그냥 있다가 방학 때만이 작업을 하지만, 우리는 집중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다. 어떤 번역이라도 급성으로 하면,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뜸의 효력이 있다. 생각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물며 성경 번역이랴!
그리고 한 가지 공개적으로 물어 보겠다. 성경 번역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것은 사본 비평이다. 사본 비평을 직접 할 것인가? 과연 어떤 사본을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사본비평의 기본 자료가 되는 본문작업을 하였던 학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인가? 자유주의자들인가? 만일 그들이 자유주의자들이라면 어떻게 그들의 사본 비평 자료를 신빙할 수 있는가?
4. 단독 성경 번역의 문제와 파장
합동측 주도로 단독 성경번역이 이뤄지면 상당한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어느 누구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교회의 연합이다. 독단적인 성경번역주의자들의 시각과는 달리, 한국 교회는 보수와 자유라는 이분법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보수와 자유는 20세기 초의 논리이고, 지금 세계 신학계에서 그러한 잣대로 신학을 구분하는 곳은 폐쇄적인 신학을 고수하는 곳뿐이다. 복음주의라는 우산 속에서 교단의 차이를 극복하고 연합하며 활동하는 믿음의 지체들이 많다. 만약 사용하는 성경이 달리지면, 이들 사이에 나타날 분열을 생각하여 보면, 정말 안타깝다. 과연 한국 교회의 연합은 안중에도 있는지 묻고 싶다.
한국 교회가 그래도 자랑스러운 점은 하나의 성경과 찬송가로 예배를 드려왔으며, 이는 교회의 연합에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공헌하였다. 서철원 교수도 ‘공동번역은 모든 한국교회의 바램이고 같은 염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숭고한 바램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명분이 단지 보수와 자유라는 이분법이라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어떤 분들은 미국 교회는 여러 번역본이 있어도 교회 연합이 된다고 한다. 미국이 그렇다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무분별한 사대주의적 상고방식이다. 좋은 것을 본 받아야지 어떤 것을 본보기로 내세우는지 모르겠다. 미국 교회가 여러 가지 번역본을 가지고도 예배가 가능하다는 현실과 우리와 같은 현실이 아니다.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한글 성경으로 이해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다른 성경을 예배에 사용하면 서로 간에 미칠 부정적인 이미지와 불편함을 고려하여야 한다. <공동번역>을 사용하는 로마 카톨릭 신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이 같이 예배를 드리거나, 서로 다른 집회에 참여하였을 때에 겪는 어색함이, 이제 같은 기독교 안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은 매우 부정적인 여파이다.
성경이 가진 중요한 가치로 보아서, 두 개의 공식 예배용 성경이 한국 교회에 존재한다면, 후대들에게 교육적인 효과 또한 보수와 자유라는 매우 이분법이거나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사상으로 우리가 오히려 낙인을 찍힐 수도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 명분이 분열과 고립을 자초할 때에 어떤 현상과 결과가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다. 젊은 세대들에게 버림받지 않을 만한 명분이 과연 있는가?
나가는 말
본인은 합동측 교단의 신앙고백을 준수하는 목회자이다. 단독 성경 번역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한다는 입장에서 비판을 하였을 뿐이지, 다른 신학적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신봉하거나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은 우리 교단이 전체 한국 교회에 분열의 불씨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한국 교회는 하나의 성경으로 백년 이상을 지내왔다. 교단이 분열되어도 성경은 하나였다. 개역 성경도 번역상의 오류들이 있다. 이 성경을 번역한 분들은 다 보수주의 학자들이었는가? 그런데도 한국 교회는 이 성경을 통해 은혜를 받고 회심하고 성경공부하고 묵상을 하고 설교를 하였다. <개정판>이 <개역판>의 신학사상을 뒤따르고 있다. 조금의 입장 차이가 있다고, 교회가 자유주의화되지는 않는다. 성경이 자유적이라고 교회가 자유화되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또 <개정판>이 그렇게 자유적이지도 않다. 개역 성경이 번역되어야 할 필요는 설명할 필요가 없이 분명하고 공감대를 이룬다. 그러나 이 필요와 공감대를 교회 분열의 기회로 이용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성경번역 추진위나 번역진들은 역사 앞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여야 한다. 성경 번역의 위업을 이룰지 모르나, 교회 분열의 영구적인 기초를 놓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정용성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 후, 영국 St. Andrews Univ 에서 신약신학 전공으로 Ph.D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4년 4월 26일
1. 최근 예장합동(총회장 임태득 목사)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사안에 대해서 예장합동 소속 내의 갱신그룹인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옥한흠 목사 교갱협)가 교단 내의 뜻을 같이하는 목회자 및 장로들과 함께 우려를 표명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2. 발표된 성명서에는 최근 총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와 관련하여 교단 내의 많은 목회자들과 장로들이 함께 깊은 우려감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모두 네 가지 사안에 대한 촉구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3. 성명서 발표로 인해 이미 성경번역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번역위원들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예산 5억 집행을 결정한 교단의 결정이 향후 어떻게 논의될지, 그리고 은급기금의 불법사용문제와 전년도 총회에서 설치되어 활동을 해온 '기독신문조사처리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평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타 교단과의 통합 문제 등의 현안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는 최근 총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와 관련하여 교단내의 많은 목회자들과 장로들과 함께 깊은 우려감을 가지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첫째, '총회개역개정판성경대책위원회'는 총회의 독자적인 성경 번역을 시행하기로 결의하고 재정을 집행하기로 한 월권적 결정을 중단해 줄 것을 촉구한다.
전년도 제88차 총회에서는 대책위원회에 2004년 89회 총회에 보고하기 위한 1년 기간의 개역개정판에 관한 연구라는 소임을 맡겼을 뿐이다. 지금 대책위원회가 보여주는 결의와 행동은 총회가 가지고 있는 상식적인 논의 절차와 과정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된 이후 하나의 성경을 사용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해왔던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모습도 외면하는 처사이다.
둘째, 총회 은급재단이사회의 은급재단 기금 불법 사용문제의 전모가 조속한 시간 내에 밝혀지기를 촉구한다.
20억이 전용되었든지 40억이 전용되었든지, 아니면 60억 이상이 전용되었든지 가장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할 교회의 헌금이 불법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것은 추문(醜聞)이다. 따라서 일체의 진상이 조속한 시간 내에 밝혀지도록 조사하기를 바란다.
셋째, '기독신문사조사처리위원회'는 맡겨진 소임에 충실하여 신속하게 그 결과를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
작년 총회에서 '기독신문 사장 주필 실행위원 임원 해임에 대한 긴급동의안'이 올라간 이후 구성된 '기독신문조사처리위원회'가 회의과정을 통해 보여준 결의는 여러 번 번복되었고, 오랜 시간을 허비한 후 급기야 내린 결의는 의혹만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따라서 '기독신문조사처리위원회'와 '기독신문전체이사회'는 조사와 결의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이 있었다는 등의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처음 총회에서 긴급동의안이 제안된 대로 엄정한 조사를 촉구한다.
넷째, 타 교단과의 통합 과정에 있어서 총회 전체가 논의하고 신중하게 결의할 것을 촉구한다.
현재 본 교단과의 통합 및 영입을 추진하는 교단이 있다면 이들에 대해 충분한 논의과정과 총회적인 의견수렴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별히 '다락방'으로 알려진 전도총회와 같은 경우 이단으로 단정되었고, 산하 노회들 가운데 영입에 대한 반대 헌의안을 상정시킨 만큼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따라서 타 교단 통합 문제에 대해 총회임원들은 신중을 기하여 총회가 모이기 전까지 통합을 전제로 한 타 교단과의 접촉을 중단해 줄 것을 촉구한다.
현재 총회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은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 전체에 소망을 주어야 할 견인차로서 본 교단이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지금 총회와 관련하여 야기되고 있는 상기의 사건들에 대해 책임있는 행동과 조치를 취해주기를 촉구한다.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에 속한 우리는 상기에 촉구한 것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우려하는 마음으로 계속 지켜볼 것이며, 내려지는 결과에 상응한 실천적 움직임을 해나갈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2004년 4월 26일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옥한흠 목사 외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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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합동 교단의 '바른' 성경 번역의 부당성
2004년 6월 1일 정용성 목사 (대구드림교회)
들어가는 말
성서 공회에서 발간한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이하 <개정판>)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다. 왜 성서 공회는 <개정판>을 발간하려고 하며, 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 '개역개정판 성경대책 위원회'는 <개정판>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성경번역과 출판을 강행하려고 하는가? 이에 관하여 교단 정치적인 요소와 경제적인 요소, 그리고 신학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본인은 신약학을 전공한 학도이자 목회자로서, 다른 요소들보다는 신학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논제를 다루고자 한다.
특히 지난 5월 10일부터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개최된 2004년 목사 장로 기도회에서 발제된 서철원 교수의 '올바른 성경번역의 정당성'이란 강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기독신문에서 발췌하여 게재하였다. 본인은 서철원 교수의 입장이 전체 번역위원들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면, 매우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보고, 학자와 목회자로서 신학적인 문제들에 관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어서 본 글을 쓰게 되었다.
먼저 초두에 본인의 입장을 명백하게 밝힌다. 현재 한국 개신교는 새로운 번역본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새로운 성경이 그나마 지속되어 온 교회의 분열을 자초해서는 곤란하다. 가능한 한 개신교 교회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불가피하게 성경 번역을 단독적으로 한다고 하여도, 현재 교단의 성경 번역 위원들의 신학적인 입장과 역량으로는 부족하다. 시간적인 여유와 공개적인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따라서 본인의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이 진행 될 것이다. 먼저 <개정판>에 과연 어떠한 신학적인 문제점이 있는가? 두 번째로 과연 독자적인 성경 번역의 충분한 타당성이 있는가? 그리고 과연 독자적인 번역의 신학적 역량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독자적인 성경번역의 문제점과 그 파장은 무엇이겠는가?
1. <개정판>의 신학적인 문제점
<개정판>의 신학적인 문제점들에 관하여 총신대의 김정우 교수와 서철원 교수가 이미 <신학지남> 2001년 가을호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김정우 교수는 <개정판>이 개선된 점과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개정판>이 <개역판>의 신학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반면에, 몇 부분에서의 오역과 신학적 재고의 여지를 지적하였다. 이는 비판과 대안의 제시라는 성서학자로서의 납득할만한 태도를 견지하였다고 본다. 서철원 교수는 창세기 174 사례, 마태복음 41 사례, 요한복음 16 사례 등 총 231 사례를 제시하여, 이 중에 121 사례는 개역 성경이 오히려 옳다고 판단하였고, 나머지 65개의 사례는 <개정판>의 오류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서 교수는 창 24장 43절의 동정녀를 뜻하는 '알마'(hm;l]['h; )를 '젊은 여자'로 번역하면, 예수의 동정녀 탄생 교리가 무너진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창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에서 '의'(hq;d;x] )를 '공의'로 번역하는 것은 이신칭의 사상의 교리자체가 무너진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평가와 더불어 대한성서공회 대책 위원장인 정진경 목사와 합동측 대책위 위원장 최기채 목사가 2003년 5월 26일 합동측의 요구를 들어서, 73곳에 42 가지의 <개역판>으로의 환원과 10곳의 <개역판>의 새로운 수정, 그리고 2 곳의 난하주 첨가를 합의하고 서명하였다.
이러한 논의과정을 살펴보건대, 합동측에서 충분하게 문제를 제기하였고, 성서공회측 또한 대부분을 수용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충분한 이해와 합의의 여지가 얼마든지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과연 <개정판>이 우리 교단이 견지하는 신학적인 견해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번역을 하고 있는가? 이다. 본인이 살펴 본 바로는 단어와 문법의 번역 상의 문제에 있어서, 사소한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문단을 신학적인 입장에서 왜곡, 변조하거나, 기초적인 교리 상에 심각한 신학적인 입장의 차이를 발견할 수가 없다.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고 정확하게 본문의 의미를 찾는 것은 해석자의 임무이지, 번역자의 임무가 아니다. 그리고 합동측 대책위나 번역 위원들 중에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는 없다.
예외로 서철원 교수는 앞에서 지적한 두 가지를 최근에 다시 주장하였다. 그러나 <개정판>은 창 15:6에서 이미 '의'로 환원하여 놓았다. 그리고 창 24장 43절의 '알마'를 '젊은 처녀'로 번역한 것을 가지고, 이는 동정녀 탄생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번역으로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침소봉대의 오류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의 근거가 되는 구절은 이사야 7장 14절이다. <개정판>은 이 구절에서 분명히 '처녀'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알마'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여러 가지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 단어의 의미는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문맥에 따라서 번역, 해석되어야 함이 성경해석학의 기본임은 신학대학원 학생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본인이 <개정판>을 읽고, 또 문제를 지적하는 입장을 다 감안하더라도, 우리 교단의 기본적인 신학 기초와 신앙고백을 흔들만한 사항들이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만일 있다면 구체적으로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차이점을 가지고 정경관의 차이니 자유주의니 현대신학에 물들었다고 하는 것은 너무 과장된 주장이 아니겠는가!
2. 과연 독자적인 번역을 할 만큼 충분한 타당성이 있는가?
두 번째의 문제는 앞에서 다루었던 바, 글자로 나타난 명맥한 번역상의 차이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신학적인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a) 먼저 번역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이 있다. "번역(飜譯)은 재창작이다 그러나 반역이다."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에, 완벽한 번역이란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다. 앞의 말은 아무리 잘 번역하여도, 원작자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또한 다른 의미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번역은 번역이다.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하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든다. 특히 성경번역자들은 겸손하여야 한다. 자신들만이 올바르고 좋은 번역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만큼, 번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어떠한 번역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하나의 단어가 다른 번역의 여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요한복음 3장 3절에서 헬라어 a;nwqen을 '거듭'이라고 번역해야하나, '위로부터'라고 번역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서 말씀하였다고 한다면, 어떻게 번역하여야 하는가? 이처럼 번역은 번역 자체로서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 성경의 '의' 개념에 공의라는 개념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만일 원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이에 해당하는 한글 단어는 그 보다 좁은 의미로 사용된다면, 어떻게 바르고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가?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문자적인 번역이 가지고 있는 한계 중에 한계이다. 번역 상에 나타나는 이러한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여야 하고, 이를 해석자들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 진정으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싶다면, 신자들에게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가르치는 것이 올바르지 않는가? 문자적인 번역을 한다고 정확무오한 번역이 가능한가? 그것은 보수 신학적 환상일 뿐이다. 본인의 입장은 문자적인 번역을 지지한다. 그러나 문자적 번역도 시학적 번역이며 의미번역의 일종이다.
흔히 킹제임스 번역본을 흠정역이라고 하여 성령의 영감이 있는 성경으로 주장하면서, 다른 번역본은 사용하는 자들을 모두 다 신학적인 이단으로 정죄하는 부류가 있다. 본인이 공부하였던 스코틀랜드에는 보수를 주장하며 분립하였던 The Free Church가 있다. 이 교단의 배경을 가진 분들이 the Banner of Truth를 출판한다. 그런데 이 교단이 NIV를 예배를 위한 성경으로 채택하자 이들을 정죄하고 분립하여 나간 부류들이 바로 KJV만이 유일하게 성령의 영감을 입은 영어성경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도 KJV 한글번역본이 무흠하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이들은 <개정판>을 반대하는 김정우교수나 서철원교수도 잘못된 성경관에 기초하여 영적 혼란에 빠져있다고 주장한다. 다음 글을 보라: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117호 (2001.12)에 게재된 조승규 교수의 '영적 혼란을 초래하는 성경 - 개역성경을 구수하는 자들의 영적 혼란'(http://www.jbbc.or.kr/ column_1/sp117.html). 본인이 이들의 입장을 옳다고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우리가 비판하는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보수는 끊임없이 다른 이를 배척하고 자기 울타리를 치는데 그 생명력이 있지 않고, 본질에 근거하여 끊임없는 자기개혁을 통하여 다른 이를 수용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데 그 생명력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가 아니라 폐쇄이다. 폐쇄는 아집과 자기 은둔 속에 썩어져가며 자멸할 뿐이다. 남을 비판하는 자는 자신도 비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더욱이 아집과 정죄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수고를 매도하면, 어떻게 자신들은 그러한 비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b) 독자적인 성경번역을 추구하는 분들의 견해에는 '보수와 자유'라는 흑백논리적인 이분법이 너무나 뚜렷하다. 자신들 외에는 다 자유주의자들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개정판> 성경 번역에 참여한 학자들 중에는 복음주의 입장에 속한 학자들이 있다. 이들의 수고와 노력에는 안중도 없고, 자유주의자라는 신학적 낙인 속에 번역자들이 신봉하지도 않고 고백하지도 않고 표현하지도 않는 견해들을 다 집어넣어서 잘못되었다고 매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마치 사회주의적인 발언을 하면 공산주의로 몰아서 반공법의 굴레로 씌워서 사회적인 매장을 하던 매카시즘과 무엇이 다른가!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작업을 하였던 복음주의 입장의 학자들을 함께 매몰시키는 것은 잔인하고 독단적이다.
그들의 의견은 이렇다. '자유주의자는 자유주의 신학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번역한다. 그러나 우리는 문자적인 번역을 한다.' 이는 번역이나 해석의 기본을 무시하는 독단론적인 입장이다. 문자적인 번역하는 이들도 신학적인 의미 해석을 하는 것이다. 한 단어를 번역하고 해석하는데 의미해석을 하지 않고 어떻게 의미전달이 가능한가? 한 단어 자체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감안하지 않고 어떻게 번역이 가능한가?
(c)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라는 이분법 속에, 자유주의자들은 현대신학으로 무장되어 있고, 현대문법과 해석방법으로 해석하고 번역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현대문법과 해석방법을 사용하면 다 자유주의자들이다. 이렇게 주장한다면 정말 어이가 없는 무식한 보수가 아닌가! 그러면 독립적인 성경번역을 추구하는 학자들은 현대 교육과 현대 서구 신학대학에서 공부한 자들이 한 면도 없고, 다 순수 국내파이거나 아니면 고대식 교육을 받았는가! 자신이 공부한 사회의 문화와 인식에 물들지 않았다고 장담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만일 있다면 왜 외국에 가서 비싼 외화를 소비하며 공부하여 왔는가? 미국의 어느 신학교가 총신과 똑같은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그 이외의 신학교나 대학 출신 교수들은 태생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식의 잣대는 외부에 대한 무조건식 배척과 더불어 내부적인 사상 검열을 통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권력화하려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의 보편적인 행태이다. 그 예가 바로 이슬람의 근본주의이다. 이런 식의 입장을 가진 자들과 어떻게 누가 대화를 하겠는가! 독단은 고립을 자초한다. 고립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아무런 창의적인 생성작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d) 신학이 다르면 각자의 신학을 따라 성경을 번역한다는 사고,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고 만든 것은 자유주의적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는 대화자체를 거부하며, 보수주의가 주도권을 가지고 해야 만이 옳다는 논리이다. 이는 또한 '나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면 다 나쁘다'는 기원의 오류 (the genetic fallacy)에 빠져있다. 신학은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의견이 피력되는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지, 그 자체로서 정죄하여서는 곤란하다. 자유자들이 명맥하게 표현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럴 것이다' 하고 추측하여 반대하는 것은 코메디에서도 비웃는 논리이다. 보수주의 신학도 자유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비판과 창의를 통하여 발전하여 왔다.
위와 같은 우려 속에서 이러한 극단적인 이분법에 의해 정죄와 폐쇄적인 사고의 틀을 가진 분들의 손으로 성경이 번역된다면, 과연 어떤 성경 번역이 이뤄질지 염려가 된다. 이 또한 또 다른 기원의 오류에 속하지만, 차라리 번역하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3. 과연 독자적인 성경 번역의 역량이 있는가?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독자적인 성경 번역을 추진하는 우리 교단이 과연 성경 번역을 제대로 할 역량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이 말은 현재 번역 위원으로 위촉된 분들의 역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 학자적인 식견과 번역할 수 있는 문학적인 소양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우리 교단의 인적 자원이 과연 이 번역 작업을 소화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성경 번역은 돈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성경 번역은 외국 도서 번역이 아니다. 출판사가 있다고 성경 번역이 되는 것도 아니다. 충분한 인적 자원과 충분한 시간과 관심 그리고 점검을 하여야 한다. 대한 성서공회의 경우에는 10년을 생각하며 새로운 번역을 계획하고 착수한다. 수많은 인적 자원이 투자되어서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급작스럽게 작업을 하려고 한다. 일년 만에 신구약 전체번역을 할 있다고 공언하는 분을 보고, 존경스럽기도 하고 염려스럽기도 하다. 성경 번역을 도대체 해 보신 분이지, 아니면 머리로만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위촉된 성경번역 위원들도 손에 꼽을 만하다. 이것은 무리이다. 총신대 신대원 교수들은 늘 시간이 모자란다고 한탄을 하여왔는데, 시간을 내어서 번역작업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마나 방학 기간에 골몰할 수 있을 텐데, 집중하기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전문적으로 성경번역에 시간을 다 바치는 분도 없다.
성서공회의 번역 위원들은 한 학기 내내 그냥 있다가 방학 때만이 작업을 하지만, 우리는 집중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다. 어떤 번역이라도 급성으로 하면,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뜸의 효력이 있다. 생각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물며 성경 번역이랴!
그리고 한 가지 공개적으로 물어 보겠다. 성경 번역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것은 사본 비평이다. 사본 비평을 직접 할 것인가? 과연 어떤 사본을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사본비평의 기본 자료가 되는 본문작업을 하였던 학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인가? 자유주의자들인가? 만일 그들이 자유주의자들이라면 어떻게 그들의 사본 비평 자료를 신빙할 수 있는가?
4. 단독 성경 번역의 문제와 파장
합동측 주도로 단독 성경번역이 이뤄지면 상당한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어느 누구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교회의 연합이다. 독단적인 성경번역주의자들의 시각과는 달리, 한국 교회는 보수와 자유라는 이분법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보수와 자유는 20세기 초의 논리이고, 지금 세계 신학계에서 그러한 잣대로 신학을 구분하는 곳은 폐쇄적인 신학을 고수하는 곳뿐이다. 복음주의라는 우산 속에서 교단의 차이를 극복하고 연합하며 활동하는 믿음의 지체들이 많다. 만약 사용하는 성경이 달리지면, 이들 사이에 나타날 분열을 생각하여 보면, 정말 안타깝다. 과연 한국 교회의 연합은 안중에도 있는지 묻고 싶다.
한국 교회가 그래도 자랑스러운 점은 하나의 성경과 찬송가로 예배를 드려왔으며, 이는 교회의 연합에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공헌하였다. 서철원 교수도 ‘공동번역은 모든 한국교회의 바램이고 같은 염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숭고한 바램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명분이 단지 보수와 자유라는 이분법이라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어떤 분들은 미국 교회는 여러 번역본이 있어도 교회 연합이 된다고 한다. 미국이 그렇다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무분별한 사대주의적 상고방식이다. 좋은 것을 본 받아야지 어떤 것을 본보기로 내세우는지 모르겠다. 미국 교회가 여러 가지 번역본을 가지고도 예배가 가능하다는 현실과 우리와 같은 현실이 아니다.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한글 성경으로 이해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다른 성경을 예배에 사용하면 서로 간에 미칠 부정적인 이미지와 불편함을 고려하여야 한다. <공동번역>을 사용하는 로마 카톨릭 신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이 같이 예배를 드리거나, 서로 다른 집회에 참여하였을 때에 겪는 어색함이, 이제 같은 기독교 안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은 매우 부정적인 여파이다.
성경이 가진 중요한 가치로 보아서, 두 개의 공식 예배용 성경이 한국 교회에 존재한다면, 후대들에게 교육적인 효과 또한 보수와 자유라는 매우 이분법이거나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사상으로 우리가 오히려 낙인을 찍힐 수도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 명분이 분열과 고립을 자초할 때에 어떤 현상과 결과가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다. 젊은 세대들에게 버림받지 않을 만한 명분이 과연 있는가?
나가는 말
본인은 합동측 교단의 신앙고백을 준수하는 목회자이다. 단독 성경 번역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한다는 입장에서 비판을 하였을 뿐이지, 다른 신학적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신봉하거나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은 우리 교단이 전체 한국 교회에 분열의 불씨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한국 교회는 하나의 성경으로 백년 이상을 지내왔다. 교단이 분열되어도 성경은 하나였다. 개역 성경도 번역상의 오류들이 있다. 이 성경을 번역한 분들은 다 보수주의 학자들이었는가? 그런데도 한국 교회는 이 성경을 통해 은혜를 받고 회심하고 성경공부하고 묵상을 하고 설교를 하였다. <개정판>이 <개역판>의 신학사상을 뒤따르고 있다. 조금의 입장 차이가 있다고, 교회가 자유주의화되지는 않는다. 성경이 자유적이라고 교회가 자유화되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또 <개정판>이 그렇게 자유적이지도 않다. 개역 성경이 번역되어야 할 필요는 설명할 필요가 없이 분명하고 공감대를 이룬다. 그러나 이 필요와 공감대를 교회 분열의 기회로 이용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성경번역 추진위나 번역진들은 역사 앞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여야 한다. 성경 번역의 위업을 이룰지 모르나, 교회 분열의 영구적인 기초를 놓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정용성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 후, 영국 St. Andrews Univ 에서 신약신학 전공으로 Ph.D 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