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남성들이 총회에서 희희낙락거릴 동안 여성은 주방 봉사…이것이 성경적인가 (뉴스앤조이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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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5-06-05 17:29 / 조회 22 / 댓글 0본문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초저출산 국가가 되어 고민이 깊어진 우리 대한민국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에서 내세웠던 대국민 홍보 문구였다. 이 말의 밑바닥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를 내내 지배해 온 (극히 비성경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 우월론'이 도사리고 있다. 오죽하면 산모(産母)가 딸을 낳은 뒤 자기도 여자이면서 분만실에서 대성통곡하는 진풍경이 벌어질까. 도대체 남자들의 사타구니에 달린 그것이 무엇이길래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것일까.
내 고향 마을 이웃집에 나보다 몇 살 위인 누나가 있었다. 그 집은 딸만 무려 12명이었는데 그 누나는 끝에서 두 번째, 이름은 남이 듣기에도 몹시 껄끄러운 '딸털이'였다. 이웃집 아저씨 부부가 기어이 아들을 낳고자 계속 출산을 했는데 열한 번째까지 줄줄이 딸만 나오자 '이제 그만 딸을 털어버리자'는 뜻에서 딸 이름을 몹시 껄끄럽게 '딸털이'라고 지어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두 번째도 또 딸이 나오자 그 아저씨 부부는 마침내 출산을 접었다. 딸털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름에 '서운이', '섭섭이'가 붙은 여성들이 교회 안팎에서 지금도 종종 눈에 띄지 않는가.
지난 2100년 간의 기독교 역사에서 여성 성도들의 역할은 함부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지난 역사에서도 그렇고 오늘날도 전 세계 어느 교회 공동체를 들여다보더라도 여성 성도의 수가 절반 이상이다. 이런저런 신학과 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교인의 절반 이상을 소외시킬 때 우리 교회가 더 약해지고 더 빈곤해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상식이다.
그러나 가부장적 남성우월론의 뿌리가 아직도 강고(强固)한 한국교회에서는 이 귀한 인력이 주방에서 설거지하거나, 강단에 꽃장식을 하거나, 교회 행사 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손님들에게 생강차나 나르는 일밖에는 하지 못한다. 하여, 노회나 총회에 가보면 검은 양복 입은 사내들만 모조리 모여 앉아서 "법이요" 타령을 하며 끼리끼리 "여기가 좋사오니" 희희낙락거리면서 거룩할 성(聖) 자를 붙여 성노회, 성총회라 한다.
성경은 여성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오랜 여성 차별에 대해 할 말이 아주 많지만, 어떤 경우에는 좋은 책 한 권을 소개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 이제 소개하려는 책이 그렇다. <더 건강한 교회를 위한 성평등 수업: 여성 리더십에 관한 성경적·역사적·신학적 탐구>(그레엄 조지프 힐, 김현산 옮김, IVP, 2025)다.
그레이엄 조지프 힐은 여성이 교회 전체를 위해 리더와 교사로 섬기도록 그들을 격려하고 준비시켜야 함을 줄기차게 역설한다. 후기와 부록, 각주를 포함해서 신국판 256쪽의 아주 얄팍한 책이지만 죄로 인한 타락의 결정적 열매인 가부장적 남성우월론을 치밀한 성경 주해와 분석을 기반으로 철저히 허물면서 하나님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 그 상호관계를 세밀하게 다루어 나간다.
이 책에서 그가 다루는 성구들은 대부분 그동안 가부장적 남성우월론자들이 '노루 친 막대기'처럼 애용(?)해 온 본문들이다. 요한복음 4장, 누가복음 10·24장, 마가복음 14장, 창세기 1-3장, 요엘 2:28-32, 사도행전 2장, 고린도전서 12-14장, 빌립보서 2:5-11, 베드로전서 5:1-11, 마태복음 20:25-28, 로마서 16:7이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리더십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중요한 이유(42-44쪽)는, 첫째, 성경적 진리의 문제(하나님의 인정과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 딤후 2:15)가 걸려 있기 때문이고, 둘째, 여성이 세계 교회의 50% 이상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반 이상의 여성 교인들을 차별하고 사역에서 소외시켰을 때의 악영향은 실로 막대하기 때문이다. 이 일은, 신자들의 안녕과 교회들의 건강뿐 아니라, 복음의 증인으로서 우리 발언의 효력에도 그 영향이 심각하게 미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셋째, 역사적으로 여성은 많은 문화권에서 억압받고 이용당해 왔기 때문이다(이것은 매우 비성경적이다).
우리 주 예수님은 여성을 존중하셨고 그들을 수치, 무시, 모멸감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주인이신 예수님(사도 바울도 포함)이 하신 일에 남자-종들이 감히 반기(反旗)를 드는 것은 분명히 신성모독 아닌가?
저자는,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사역을 제한하려고 하는 이유가 딱 세 가지라고 말한다.
첫째, 가부장적 남성우월론 전통, 둘째, 신약의 두 군데(고전 14:33-38, 딤전 2:9-15) 본문의 그릇된 해석의 악영향, 셋째, 교회 직분에 대한 다양하고 부풀려진 오해. 오늘날 여성 차별을 하지 말자는 주장을 걸핏하면 현대 페미니즘을 잘못 수용한 결과(교회의 세속화)로 몰아가면서 가부장적 남성우월론을 고집하는 자(者)들이 많지만, 그런 태도는 결국 성경도, 페미니즘도 잘 모른다는 부끄러운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여성 차별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은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여성은, 살아 있는 믿음의 심장박동(the heartbeat of living faith)"라는 인상 깊은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초대교회 때부터 여성들은 신학, 공동체, 선교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그 심장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여성들은 교회와 선교의 중추 세력이었다. 누구보다도 우리 주 예수님께서 여성들을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뵈었던 바울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오늘날과 역사 속의 리더인 여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 훨씬 더 능숙해져야 한다. 여성이, 대통령도, 장관도, 교수도, 학자도, 의사도, 특수부대 장교(장군)도 되는 시대 아닌가. 여성들의 인권이 확대된 오늘의 흐름에 따라 교회가 세속화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래 창조 목적이 상호성, 동등성, 협력(창 1-3장)에 있기 때문이다. 계층구조와 위계와 상호갈등은 전적으로 범죄 후 타락의 산물(産物)임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여성 제자를 두시고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신 네 가지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첫째,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성을 만나셨다(요 4장). 둘째,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에서 당시 사회의 통념을 깨고 마리아가 남자들 사이에 들어오도록 허락하시고 그녀가 '그분의 발아래 앉도록' 허락하셨다(눅 10장). 셋째, 예수님이 한 여성에게 기름부음을 받으셨다(막 14장). 그녀는 그때까지 남자에게만 맡겨졌던 예언자적 역할을 맡고 있다. 넷째,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성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셨다(마 28:1-10, 막 16:1-8, 눅 24:1-12, 요 20:1-18). 부활하신 예수님은 가장 먼저 여성들에게 나타나기로 결정하시고, 그들에게 사도적 사명을 주셨다. "가서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가 살아났다고 전하여라!" 저명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여성들을 "열두 사도의 사도(apostles to the twelve apostles)"라고 불렀다.
한 가지 더 짚을 것이 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전 11:3)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머리'를 '우두머리/지배자'로 해석하면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는 말도 '종속적' 개념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것은 곧바로 정통 교회가 아리우스파 이단의 교리를 수용하는 셈이 된다. (삼위일체론에 심각한 구멍이 뚫린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11:3의 '머리'는 '근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의 큰 문맥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더 자세한 설명은 116~121쪽을 참조하면 좋다).
교회 안의 여성은 노예가 아니다(132쪽).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하나님의 형상이고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아주 소중한 동역자다. 남자를 부르시는(소명) 분이 하나님이시듯, 여자를 부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모든 남자가 다 안수받은 지도자가 될 수 없듯, 모든 여자가 다 안수받은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 교회의 머리이시자 주인이신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는 남자든 여자든 주신 은사에 따라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다(욜 2:28, 갈 3:28). 따라서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해야 복음의 정신이 회복된다. 무너져 가는 교회(특히 한국교회)를 살리려면 교회 안에서의 비성경적인 이 여성 차별이 속히 사라져야 한다. 이 책과 함께, 필자가 쓴 <개혁주의 신앙과 여성 안수>(예영커뮤니케이션, 2022)도 꼭 곁들여 읽으실 것을 권한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남녀 포함)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 2: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이광우 목사 / 전주열린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