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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5년, 보수와 진보의 날개로 비상하는 교회를 꿈꾼다. (평화나무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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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5-01-17 10:33 / 조회 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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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는 서로 대립적이기만 한듯하지만, 실상은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빛나게 하는 보완적인 힘인 것입니다. 서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적으로 보이지만,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상대방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도 위태롭게 되는 그런 상보적인 관계인 것이지요, ‘긴장적 공존’ 이것이 바로 이들의 관계입니다… 이상적인 사회는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함이 없이 서로의 존재가 균형을 이루면 공존하는 곳일 것입니다.” - 김비환 '이것이 민주주의다' 

 

보수냐? 진보냐? 근래에 큰 화두다. 하지만,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이 질문은 지금의 현상을 너무 단조롭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단조로움은 자칫 서로 함께 편협과 적대에 빠지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진보적 변화의 태도를 보이는 이들 가운데에도 ‘급진주의’나 ‘자유주의’ 뿐만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변화를 기대하는 ‘복고주의’ ‘퇴보주의’도 있다. 

 

반대로 보수적인 입장에서도 ‘합리적 보수주의’부터 ‘극우주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은 통일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색채를 띠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때로는 두 가지 이상의 개념이 한 사람에서 드러난다. 가정과 교육에서는 보수적인 면이 있으나 기후나 환경에 대해서는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신앙에 있어서는 보수적이나 사회문제에 있어서는 진보적이기도 하면 그 반대 성향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생각과 실천은 고정된 한 가지 틀에만 종속되기보다는 각 사안에 따라 유연하기도 하고, 때로는 모호한 면을 가진다. 그만큼 우리의 정체성은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다. 단순하게 ‘보수냐? 진보냐?’로 구분 짓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주의’는 뭐고 ‘진보주의’는 뭔가? 김비환은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보수와 진보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변동에 관한 태도 및 견해를 의미한다.”라고 전제하면서 “보수주의자는 현재 사회의 상태에 만족하여 현재의 사회제도와 관행을 보존하려 애쓰고, 진보주의자들은 현실에 불만족하여 현재의 제도와 관행을 개혁하고 새것으로 대체하려 한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현재의 질서를 보존하려는 보수주의자는 자유보다는 질서 쪽에 평등의 증진보다는 전통적인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것에 힘을 기울이고, 진보주의자들은 이성의 힘에 의지하여 개인의 자유에 비중을 두고 사회를 평등한 방향으로 개혁하려 한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하나의 단서를 남기는데 “극단적이지 않다면 그들의 사이의 충돌은 어쩌면 바람직하다.” 충분히 공감된다. 

 

오늘에 있어 보수는 무엇이고 진보는 무엇인가? 나아가 ‘무엇’을 지키려는 보수이며, ‘무엇’을 바꾸려는 진보인가? 계속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에는 보수가 지키려는 ‘무엇’을 알기 어렵고, 모호하다. 무엇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하여 자신의 권력과 자리를 지키는 것이 보수일 수 없다. 질서로움의 가치가 자유의 가치보다 더 중요하다고만 볼 수 없다. 

 

평등의 가치가 위계의 가치보다 더 중요하다는 입장도 불완전하기는 매한가지다. 정치는 모두의 안전과 평화라는 가치를 향해 서로 보완하고 물러서기도 하며 나아가야 한다. 어떤 존재도 소외되지 않는 조화로운 세계를 지향하면서 말이다. 

 

보수와 진보의 날개로, 질서와 자유의 날개로, 평등과 위계의 날개로, 좌우의 날개로 비상하여 평화의 세계로 전진한다. 이런 관점이 어디 국가뿐이겠는가? (물론, 지성에 재갈을 물린 무이성적 보수나 진보는 이야기에서 배제하자. 사회든 교회든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논의란 얼마나 무의미한지 모른다.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설득의 과정은 그저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극단에 서서 결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는 것이 좋겠다.) 

 

교회도 그러하다. 교회 문제를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교회의 안정을 위해서’ 또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말이었다. 교회의 안정이라는 것이 교회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는 기득권층의 안정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성도 모두의 기대를 충족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한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명제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의도에서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몸부림인지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말로 개혁과 변화의 의지를 꺾으려는 것을 의심해야 한다.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 교회는 무엇인가? 부도덕과 비윤리를 덮고,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무시하는 것이 정말 교회를 안정화하는 것인지 대답해야 한다. 자신의 얕은 종교적 신념을 맹신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적대시하는 태도에 대하여 돌이켜 보아야 한다. 

 

회개란 숨김으로써가 아니라 들킴으로써 오는 통렬한 반성이며, 용서란 책임을 저버리지 않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자유로움이다. 무조건 과거의 문제와 사람을 지키려는 것은 정말 지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또한, 교회를 개혁하려는 마음도 잘 살펴야 한다. 개혁과 변화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인정욕구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공을 드러내기 위하여 미화한 글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이들도 있다. 

 

덧붙여 현재의 제도와 관행을 바꾸기 위하여 오래된 과거의 것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의 지혜와 경험, 그때의 감정에 붙들린 사람이다. 과거로의 회귀는 결국 ‘퇴보주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정말 모르고 있는지 묻고 싶다. 

 

교회의 개혁과 진보주의자에게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대와 문화, 그 속에 자리 잡은 제도와 관행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 요구된다.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은 ‘허위의식’에 가깝다. 이런 생각으로는 현재의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결국엔 현재를 반추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동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과거 자신의 경험과 관점으로 현재를 판단하고 대안을 마련해 보려는 노력은 새로운 보수의 출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든 교회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다음의 몇 가지 중요한 토대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먼저는 ‘대화와 공론의 장’이다. 단순하게 공간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분노하는 것이나, 당신이 하고 싶으면 나를 설득해 보라고 하는 고압적 자세나, 교회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고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등의 미숙함이 개선된 대화와 공론의 장이다. 

 

둘째는 ‘판단의 보류’다. 성급한 결정은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고 이것이 화를 부른다. 이것은 나의 주장이 완벽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보수적 관점이든 진보적 관점이든 한쪽이 완벽히 옳을 수 없다. 세대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하는 말이라고 다 옳지 않으며, 청년이 하는 말이라도 모두 미숙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교회의 결정이 편견에 의해서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교회의 대부분이 일이 사람과 관련하여 있다. 그렇다면 사람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경청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결정을 미루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선택과 결정을 위한 과정으로써 이해해야 한다. 판단을 보류하는 것을 통해 진영 간, 세대 간의 조화를 이루도록 힘써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는 ‘고집을 꺾을 줄 아는 넉넉함’이다. 자신감이 고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공동체를 떠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렇게 되면 회의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주는 넉넉함이 필요하다. 넉넉한 마음은 자기 생각과 판단이 항상 옳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성숙함에서 나온다.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무엇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태도다. 나아가 스스로 자신의 판단과 의견을 검토하여 더 좋은 선택과 결정을 위해 물러 줄 아는 지혜다. 

 

2025년,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올해도 우리는 보수와 진보, 세대와 세대 등 다양한 갈등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어온 것과 이어갈 것을 고민하며, 다음을 향한 개혁과 변화의 용기가 필요한 때다. 부정의를 옹호하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보수가 아니라 성경과 역사의 가르침에 충실하여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나라를 은혜와 사랑으로 세워가려는 보수 신앙이 필요하다. 

 

개혁과 변화의 외침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진보가 아니라 시대와 문화를 해석하며, 변화와 예언자적 외침을 머뭇거리지 않는 진보적 신앙도 필요하다. 다름은 갈등이기도 하겠지만 갈등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당신으로 인하여 나도 당신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그리게 되니 말이다. 

 

대화와 공론의 장에서 성급함보다는 경청의 자세와 고집의 태도가 아닌 넉넉함으로 사회든, 교회든 보수와 진보의 날개로 날아오르는 평화와 안녕의 2025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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