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한국의 전도부인…교리에 묶여 시대와 동떨어진 채 정체된 교회 (뉴스앤조이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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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4-12-24 15:30 / 조회 126 / 댓글 0본문
오래전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한 필자가 겪은 문화적 괴리는 젊은 여성 성직자를 목격하면서부터였다. 어느 주일날 알자스 지방의 한 농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아직 삼십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앳된 여성이 설교는 물론 성만찬을 집전하고 있지 않은가? 보수적인 교단에서 성장한 데다가 유교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에게는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하긴 사회와 별다른 바 없이 나이, 성별, 학벌과 같은 조건이 따라붙는 교회 환경에서 살다가 이미 변화의 과정을 겪은 다른 공간으로 건너갔으니 그 충격이 클 수밖에.
프랑스에서는 언제부터 여성이 신앙 공동체를 이끌 책임을 부여받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남성 목회자들이 1차 세계대전으로 징집되면서 부족한 사역자를 그 사모로 대치할 수밖에 없었단다. 아무도 설교할 수 없을 지경이 되자 그제야 여성을 부른 것이다. 루터가 여성에게도 설교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천명한 지(1521년) 얼마 만인가? 1930년 이전까지는 여성에게 성례전을 집전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 여기에는 분명 당시의 여성에 대한 편견도 작용했을 것이다. 마침내 정규 신학 과정을 마친 베르트쉬(B. Bertsch)가 1930년 3월, 첫 여성 목사로 알자스-로렌 지방의 개혁교회 사역을 맡게 되었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그 후 배출된 여성 리더들은 2차 세계대전 동안 레지스탕스(점령군에 맞서 투쟁했던 저항군)로, 포로수용소의 원목으로, 기혼 여성에 대한 안수 투쟁 등으로 활약하였다.
귀국 후 몇 년이 지나자 거짓말 같은 일이 한국의 보수 교단에서 벌어졌다. 후발 주자이긴 하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기독교한국침례회, 대한성공회 등 개신교회들이 앞다투어 여성 안수를 통과시키지 않는가? 그전까지 신학대학교를 졸업한 여성에게 열려 있는 사역이 소위 '심방 전도사'로 그 범위가 제한되어 있던 터라 변화의 흐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목사고시를 거친 후 최종 면접 자리에서 안수위원들이 던진 질문이다. "왜 전도사로도 일할 수 있는데 굳이 목사가 되려 하느냐?" 여성은 더 이상 보조자나 협력 사역자가 아니다. 전도사로서는 불가능했던 성례전과 축도를 베풀 수 있지 않은가? 목회의 책임이 완성되는 차원인 것이다. 그것은 온전한 리더로 세워지는 차원이다.
우리도 기념할 만한 전통이 있다
초기 한국 선교 과정에서 여성 사역자의 명칭은 '전도부인'이었다. 이들은 흰 저고리, 검정 치마 차림에 고무신을 신고 축호 전도와 심방 그리고 성경 읽기를 가르쳤다. 나라의 개혁기를 선도한 역군이기도 한 전도부인은 평양성경학원과 각 지방의 성경학교에서 양성되었다. 성결교회에서는 1912년부터 1929년까지 남녀공학인 경성성서학원을 통해 배출된 여성 지도자가 83명이나 되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그것을 현재의 경험으로 실제화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어느 교단이나 기념할 만한 공동체의 기억을 전통으로 이어 간다. 성결교회는 한 여성 순교자를 기억한다. 바로 섬 선교의 어머니로 불리는 문준경(1891~1950)이다. 그는 전남 신안에서 순회전도사로 다니며 3개의 교회를 개척하던 중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 거부를 이유로 고문을 받고 6·25 전쟁 통에 공산당 폭도들에게 순교를 당했다. 그를 기리며 세운 기념관(신안 증도)에는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내게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신앙의 선배를 꼽으라면 지금은 천국에 계신 이경희 전도사님이다. 추운 날도 가리지 않고 변함없이 새벽 기도를 하다가 파랗게 물들어 버린 그분의 낯을 잊을 수가 없다. 이 같은 맥락에서 매년 개교회의 여선교회에서는 평생 주님의 교회를 섬기던 여성 사역자분들의 노후 안식처인 성락원(대전 소재, 30여 명 거주)을 방문하여 경의를 표한다.
어느 교단이나 지켜야 할 전통이 있다. 그러나 전통은 굳어 버린 화석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에 살아서 역사하는 생명이어야 그 가치가 있다.
남성적 리더십에서 여성적 리더십으로
한국의 교단들 중 창립 때부터 여성 안수를 시행하여 신앙 공동체를 이끌어 갈 리더로 세운 선각자인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가 있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2021년 여성이 총회장으로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예장통합에서는 올해로 여성 안수 3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예배를 드리고 전통의 계승과 선교적 연대, 여성의 지도력 향상, 신앙 전수의 책임, 신앙의 정통성 수호, 인구 감소와 환경 위기 대응, 평화적인 복음 통일 등 7개의 선언문을 공표하였다. 더욱 분명해진 변화가 아닌가? 그런데 아직도 교리에 묶여 시대와 동떨어진 채 정체되어 있는 교회가 있다니 참 안타까운 노릇이다.
최근 한 다큐멘터리에서 파리의 한 여성 연대가 집회에서 댄싱 크루 대열로 슬로건을 외치는 장면이 나왔다. 그 모습은 결코 과격하거나 폭력적이지 않았다. 누구나 귀엽고 재미있는 그 놀이에 합류하고 싶을 것 같다. 때론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여러 모양으로 여성의 외침이 들려온다. 그들은 왜 뭉쳤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한 번, 두 번, 세 번, 세심하게 귀 기울여 보자. 사무엘처럼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여성 안수에 유구한 역사를 품은 감리회(미국 선교사 1931년, 한국 목사 1955년)나 기장(1956)에 비할 수는 없겠으나 올해 기성 118차 총회 회의록을 보면, 2005년 첫 여성 안수자 38명으로 시작해서 작년까지 누적된 여성 목사가 총 401명(남성 목사 4880명)이고, 여성 장로가 236명(남성 장로 8553명)이다. 내년이면 우리는 여성 안수 20주년을 맞이한다. 풍성하게 열매 맺는 나무로 자라게 하신 주님의 역사에 감격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아직도 미진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감리교회가 초창기에 결혼한 여성은 담임목회를 할 수 없다는 차별 조항을 붙였듯이 오늘날 한국의 문화 풍토에서 여성을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교회는 드물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를 예로 들자면, 개척으로 사역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한 분이 어느 교회의 3대 목회자로 청빙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반가웠는데 알고 보니 우리 교단이 아닌 초교파 교회로부터라는 것이다. 여성의 고유한 은사를 묵혀 두다 못해 인재를 타 교단으로 뺏기고 있지 않은가?
최근 필자가 은퇴 후 사역하고 있는 '기독교여성리더십연구원'에서 기성 여성 담임목회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발휘하고 있는 '리더십 유형'과 '정서 지능'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변혁적 리더십(여성 특유의 친밀성과 돌봄 정신을 바탕으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동고동락하며 영감을 불어넣고 당면한 문제를 깨우쳐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리더는 '거래적 리더십(목회자의 뜻에 따랐을 때 보상해 주거나 엄격한 기준을 두어 거기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도하는 리더십)'을 행사하는 리더보다 '섬김의 리더십(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리더십)'을 더 잘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여성 담임목회자의 '정서 지능'이 높을수록 '섬김의 리더십' 수준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신과 타인의 감성을 조절하고 다룰 줄 아는 능력이 높은 목회자일수록 성도와 공동체의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판단하여 문제를 짚어 내고 비전으로 향하게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남성의 리더십에서 여성의 리더십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한국교회는 부흥을 이끈, 카리스마적 인물 중심의 전통적 리더십 시대를 거쳤다. 여기에서 주로 남성 리더는 상하 관계 구조하에서 팔로워인 성도들과는 단방향의 하향식 관계에 위치하거나, 혹은 리더가 권한을 갖고 통제하며 성도들로부터 종속이나 추종을 기대하는 자문의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목회자와 성도들과 힘의 균형이 맞춰지고 있는 추세이다. 자연히 리더십의 유형도 변화를 맞게 되었다. 오늘날 성도들은 카리스마로 성도를 이끌어 주는 리더보다는 목회자가 성도를 주체적 신앙인으로 세워 주는 리더십을 원하게 되었다. 감성으로 접근하는, 공감 능력이 풍부한 여성들이 다양한 사역 현장에서 리더로 사역하고 있지 않은가? 이 같은 현상이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이 어떠한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위기 상황마다 하나님은 약한 자와 여성을 찾으셨다. 죽을 처지의 아기 모세의 생명을 누가 살렸는가? 어미와 누이는 물론 작은 직분에도 진부하게 살지 않은 두 산파의 신앙적 결단이 있었다. 마리아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의 고지를 믿었기에 혼인 전에 성령으로 잉태한 아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신앙심이 온 세상을 구원할 생명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혼돈의 세계는 여성을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