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연재] '민주적 교회 운영'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뉴스앤조이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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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5-07-10 09:41 / 조회 1,428 / 댓글 0본문
예인교회는 사고 난 교회에서 탈출한 교인들이 세웠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과거 교회에 대한 상처(trauma), 특히 담임목사와 장로들, 동료 교우들로부터 받은 상처에 몹시 아파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지만 치유보다는 상처가 덧나 아픔이 더 커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원인 치료가 없는 일시 처방은 상처를 덧나게 하는 악순환일 뿐이었다. 치료책이 필요했고 막연하게 교회로 인한 상처는 '건강한 교회'를 이루면서 회복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초기 교인 중 상당수는 건강한 교회에 대해 오해했다. 목사와 장로가 사고 치지 않고 교우를 잘 이끌어야 하고, 교회를 잘 성장시켜 사고 난 교회 바로 옆에 더 큰 예배당을 건축해 복수하길 원했다. '상처 입은 교우들이 오죽하면 이런 생각을 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복수를 위한 교회를 세울 수는 없었다. 먼저 교우들의 신앙을 점검하면서 이전 교회가 세운 교회상을 해체하고 다시 성경이 말하는 교회상을 세워야 했다. 그러지 않고는 자립 신자가 될 수 없고 자발적 공동체란 불가능하다.
만인제사장
성경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신학교에 진학했고 이후 '만인제사장'에 관심이 생겼다. 당시 나는 막연하게 '교회는 만인제사장주의를 실현하는 장(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수년 동안 여러 교회를 탐방한 후 얻은 결론은, 만인제사장은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신학적으로 만인제사장주의를 주장하는 교회는 여럿 있었지만 모두 담임목사·장로 중심 체제였고 조금 나은 교회의 경우 원만한 당회 운영을 하는 정도였다.
추구할 적합한 모델이 없으니 대안을 만들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무교회주의로 알려진 함석헌 선생과 장기려 박사의 모임, 형제 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두 교회 등이었다. 매력적이었지만 접근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우선 대단한 엘리트주의와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 사고가 큰 장애물이었다. 나는 지배력(지도력)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주도로 이끌어 가는 방식은 결국 만인제사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리고 약할 때는 좋은 선생님이 필요하다. 신앙의 초기 스승, 선배처럼 이끌어 줄 목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구조가 강력할수록 만인제사장으로 가는 길은 막힌다.
이런 고민과 탐구를 통해 만인제사장을 교회에서 실현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을 구상했다. 바로 '성도 중심의 민주적 운영'이다. 거듭난 신자들이 함께 교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소망이 깃들어 있다.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한국 사회
교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민주적 운영이 반성경적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교회는 신본주의인데 민주적 운영을 하는 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고 심지어 이단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그 공격에 나는 주춤했고 뚜렷한 답을 하지 못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공격이 매우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본주의의 반대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이고,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독재다. 교회 민주주의 또는 민주적 운영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목사·장로(당회) 독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방법이고, 목사 만능에 취한 한국교회를 구할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문제의 가장 큰 비중은 '목사'가 차지하지만 목사를 빼 버린다고 문제가 종결되지 않는다. 또한 교회의 문제는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제인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과 경제 개발 시대를 거치며 익숙해진 독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거기에 더해 교회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롬 13:1)라는 말씀을 독재를 지지하는 근거로 가르쳤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발전을 막거나 두려워하는 한국 사회(교회)의 우두머리는 무엇인가?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보다 뒤처진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나는 본질적인 면에서는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의 목사 또는 장로의 권력은 한국 사회의 엘리트 권위주의(돈, 권력, 연줄, 엘리트, 주술, 독재)의 연장선상으로 봐야 한다.
예인교회
교회의 민주적 운영을 처음 말했던 2002년에는 말하는 우리도 듣는 이들도 대부분 반신반의했다. 당시 한국교회는 신본주의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예인교회 설립(2002년 7월) 이후 몇 년은 엘리트 권위주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50여 명이 먹을 김밥을 준비하는 담당 교우는 목사인 나에게 전화해 어떤 김밥을 좋아하는지, 자주 가는 김밥집이나 맛있게 먹은 김밥이 있는지를 자세히 물었다. 이런 현상은 다양한 영역에서 몇 년 동안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교우들은 목사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과정을 어려워했고 결국 상징적인 일을 해야 했다. 민주적 운영을 위해서는 목사도 투표권을 갖는데, 권위를 내려놓는다는 의미로 그 투표권을 반납했다. 그리고 교인 총회, 운영위원회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극단적인 규정을 만들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인 우리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과정을 해내야 한다. 이 과정은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 내듯 할 수 없다. 다양할 수밖에 없는 교우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일치하기 위해서는 교우의 자립이 절실하다. 그 과정에 다른 교우들과 교역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돕는 이들은 지배하지 않고 자립하도록 돕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보호하며 돕고 가르치는 노력을 한 이들에 대한 인간적인 도리인 고마움을 잊지 않아야 한다.
예인교회의 모토는 "비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운영은 민주적으로, 소유는 최소한, 나눔은 최대한"이다. 비전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그것은 성경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자라면 소정의 과정을 통해 예인교회의 교인이 될 수 있다. 교인이 된 이들이 민주적으로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 예인교회는 건물 중심의 교회가 아닌 신자들의 모임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라는 말씀을 따라 건물보다 공동체를 중시한다. 그래서 예인교회의 실체는 건물이 아니라 모임이고 숙의 민주적 운영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인교회는 규약(정관)이 있다. 크게는 최고 의결기관인 교인 총회, 행정을 위임받는 운영위원회, 교역을 위임받는 교역자, 사역을 위임받은 사역자, 교회 속 작은 교회인 아둘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 단순하게 설명하면, 운영위원회와 교역자는 아둘람의 자립과 숙의적 운영을 돕는다. 아둘람의 네트워크(연합)가 예인교회이다. 현재 13개 아둘람은 각자 목적을 갖고, 헌금을 직접 사용한다. 아둘람은 지명 방어(차상위 계층 생활 환경 개선), 흩어지는 예배(교류 교회 방문과 봉사), 아둘람 주일(따로 모여 주일 예배를 드리는)을 선택할 수 있다. 한 달에 2주는 전체 예배에 참석하고 2주는 자체 주일예배를 드린다. 물론 아둘람의 목적을 교제로 하고 교회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교역자가 함께하는 아둘람은 두 곳이다.
예인교회는 13개의 아둘람 네트워크(연합)이다. 아둘람이 자발적 신앙 공동체가 되어 가는 과정은 결국 교우들의 자립과 연결되어 있다. 자립하지 않으면 자발적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교역자와 아둘람은 교우의 자립을 돕고 숙의의 자리에 참여하도록 장을 만든다.
자발적 공동체
신학생이던 나를 교회 밖으로 끌어낸 이들이 몇 있다. 그중 리영희 선생은 "크리스천 박 군에게"라는 글에서 "어떻든 (박)군이 교회 안에서 교회 밖 사회로 눈을 넓힌 것을 다시 축하하네. 교회도 사회 속에 있는 것이고 사회는 정치 속에 있는 것임을 명심하기를 바라네"라고 권면한다. 특별 계시만 소중하게 생각하던 나에게 일반 계시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동안 교회의 적처럼 말해 온 이성(지식)이 교회의 삐뚤어짐을 보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리영희 선생은 우상이 아닌 이성의 눈을 떠야 한다고 말했지만 나는 엘리트 권위주의의 실체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극복할 숙의 민주적 운영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교회가 그 구성원들과 숙의 민주적 운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전에 나서길 바란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가 아니다. 교회는 목사가 교역자 되게 하고 교우들은 목사 의존에서 벗어나 성경 말씀 안에서 자립해야 한다. 그리고 신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숙의적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정성규 / 예인교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