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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 리더십을 다시 묻다 (평화나무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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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5-07-15 15:57 / 조회 1,3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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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교회를 위한 다섯 가지 제안 

 

어긋난 리더십(Leadership) 

 

‘교회 개척’이나 ‘교회 창립’ 또는 ‘교회 개혁’이나 ‘교회 갱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간단하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리더십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실패는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마다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이번 글부터 몇 번은 리더십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 

 

‘리더십(Leadership’)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리더십 연구자만큼이나 리더십의 정의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리더십은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리더십 분야 전문가로 알려진 ‘웨렌 베니스(Warren Bennis)’는 1997년에 발간한 ‘리더스’라는 책에서 리더십에 대한 정의가 850개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더 많은 정의가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리더십이란, 어떤 조직이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영향을 주고, 이끌어가는 ‘역동적 과정’으로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도록 인도하는 리더의 행동, 태도, 가치관, 윤리, 성격, 지식, 기술 등등으로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프로세스라고 말할 수 있겠다. 

 

더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리더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힘으로 팔로워를 감동하게 하고, 동기를 부여하여 그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자율적으로 비전과 목표를 향하여 나가게끔 하는 것이 리더십이라 생각하며, 리더는 따르는 이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윤리와 도덕 그리고 정의로움이 ‘당연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런 정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감동하게 해 동기를 부여하고, 자발과 자율로 그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라고 질문하면 답하는 사람도 애매해진다. 리더십의 정의는 리더십의 방법을 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여 누군가 방법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나의 방법일 수 없다. 운이 좋아 맞으면 다행이어도 맞지 않을 확률이 더 높고, 실패하고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의도 복잡하고, 이해도 어렵고,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리더십 이야기는 애초에 규정적이거나 굳어진 내용이 아니다. 다시 말해, 시대와 환경이 바뀌면 리더십도 바뀌고,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 리더십도 바뀌고, 영향을 주어야 하는 대상이 바뀌면 리더십도 바뀐다. 이토록 변화하는 리더십을 획일적 표현과 생각으로 가둘 수 없다. 

 

리더십 개발 회사의 설립자인 ‘커스틴 린드(Kirstin Lynde)’는 이렇게 주장했다. 

 

“20세기 최고의 리더는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21세기 최고의 리더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유능한 리더라면 주어진 환경에 따라 또는 뛰어넘어야 하는 과제 앞에서 다양한 도전과 저항에 역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자연스럽다. 그렇기에 리더십과 리더의 역할은 주어진 환경과 미션에 대한 결과로서 다양하게 펼쳐진다. 

 

한국교회의 리더십도 다양한 패턴을 보인다. 개화 일제강점기에서는 민족운동으로서 독립과 관련한 리더십이 주를 이루었다면, 해방 이후 전쟁을 지나면서는 피난민과 국가 재건이라는 시급한 과제 앞에서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주목받았고, 당시 이들은 높은 윤리적 삶을 통해 영향을 주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던 때에는 경제적 성장과 함께 교회도 성장 주도적인 리더십이 등장했다. 성장에 성공한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성직자 또는 목회자 중심의 전통적 리더십이 더 강해지는 시기였으며, 교회의 리더십은 성공과 능력주의로 표현되었다. 

 

이후 교회 리더십은 다양한 변주를 보이는데, 교인의 돌봄을 위한 상담자적 리더십, 교회를 조직화하고 관리 시스템을 구현하는 매니저 리더십, 다양한 문화 전문가의 등장으로 교회와 사회의 문화적 접촉면을 확대한 전문가 리더십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에 목회자는 상담가이자, 조직컨설팅에 유능해야 했고, 노래도 잘하고, 인문학적 가르침도 잘하는 리더십을 요청받았다. 

 

교회 리더십의 이런 전개는 일반 성도를 수동적이게 하는 원인이었고, 목회자에게 집중된 리더십으로는 더 이상 교회가 진보적일 수 없다는 위기감은 이후 ‘섬김의 리더십’, ‘변혁적 리더십’, ‘관계적 리더십’ 들이 등장했다. 

 

여기까지만 살펴보아도 급변하는 사회와 세대의 요청에 따라 새로운 과거 주목받았던 리더십이 폐기 되기도 하고, 새로운 리더십이 요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의 때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 필요하고, 공동체의 조직화를 위한 설계를 잘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그러면서도 섬김과 관계의 리더십도 필요하다. 어떤 때에는 따뜻하게 다독이는 부모와 같은 리더십도 필요하고, 때로는 전문성과 치밀함으로 무장한 리더십이 필요하기도 하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목회자를 예로 들어 보자. 교회 개척(Start-Up) 시기에는 독창적인 창의가 필수다. 첫 성도를 확보해야 하고, 적은 자본으로 지역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이때에는 개척자 정신을 가진 리더십이 필수다.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리더십도 필요하고, 보이지 않게는 열정적인 카리스마 리더십도 필요하다. 몇 명의 교인들을 독려하여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방향에 이끌려 가도록 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필요하다. 이후 교회 창립(Establishment)으로 무사히 전환하게 되면, 관리와 조정자로서 리더십이 요청된다. 편들지 않는 제삼자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능력도 필요하고, 교회 조직을 설계하는 치밀한 리더십도 필요하다. 자신의 권한을 교인에게 위임하고 협업할 줄 아는 수평적 리더십과 함께 평신도 리더를 세워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더 나아가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내가 고집했던 나의 리더십이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지 못한 어긋난 것일 수 있다. 환경에 따라 유연해야 하고, 다시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시기를 놓친 결과일 수도 있다. 

 

성공을 담보하는 리더십은 없다. 

 

리더십은 유형마다 그 나름의 장단점을 가진다. 동전의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리더십에 관한 우리의 문제는 지나치게 하나의 리더십 스타일 확신하고, 이를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려는 데에서 온다.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으로 이해 되는 ‘권위적인 리더십(Autocratic Leadership)’은 빠른 의사결정과 함께하는 이들의 역할이 분명해지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참여와 동기가 저하되는 약점이 있다. 

 

근래 자주 이야기하는 ‘민주적 리더십(Democratic Leadership)’ 은 어떤가? 성도들의 참여도는 높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장점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의사결정의 지연과 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교회의 긴급한 논의를 놓치거나 타이밍을 잃을 가능성도 높다. 

 

한때 교회에서 인기 있었던 ‘방임형 리더십(Laissez-Faire Leadership)’도 있다. 자유롭게 방목하듯이 성도들의 자율에 맡기는 리더십인데, 성도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중요하게 여기도 자기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성도로 세운다. 그러나 공동체의 방향성과 명확한 우선순위가 사라지고, 책임을 소홀히 여기거나 공동체의 성과가 일관적이지 않은 문제도 있다. 

 

‘변혁의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은 비전을 공유하는 데 유리하고 성과와 몰입도 좋지만, 구성원은 쉽게 피로하고, 번아웃 될 우려도 있다. 특히 큰 목표 아래에서 세부적인 실천에 한계를 보이는 약점을 보인다.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리더십이 오늘날 교회에 필요해요!’라는 덕담과 정답을 들려주어야 하는데, 자꾸 리더십의 겉면만 다루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려니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지난한 글을 쓰고 있는 이유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옳다 생각하는 리더십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성도를 향한 당신의 리더십이 도리어 발목을 붙들고 있는 덫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 주기 위해서다. 옳다 생각하는 리더십이 성도를 힘들게 하거나 교회의 변화와 새로움을 저해하는 이유일 수 있다.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리더십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했다. “성공한 리더의 유일무이한 모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 말에 깊이 동의한다. 성공을 담보하는 리더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맥락에 따라 맞추어가는 리더십을 갖추라 

 

리더십은 일상과 환경의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실천과 태도다. 뉴스를 보라.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이 어떤 변화와 기대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지 살펴보라. AI를 통한 엄청난 기술적 변화, 가치와 지향의 다변화와 극단적 양극화, 일과 삶의 불균형 속에서 사는 이들의 고통, 다문화로 진입하는 사회, 급락하는 노동의 가치, 경쟁이 가져다주는 승자의 불안과 약자의 두려움 이런 일상의 맥락에서 당신이 리더라면 어떤 리더십을 보여 줄 것인가? 

 

이제, 교회의 변화와 지속성을 위한 리더십의 첫걸음을 위하여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하며 몇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정답이 어디 있을까? 리더십은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함께 실천할 내용을 남겨둔다. 

 

첫째, 리더십을 흉내 내지 마라. 

 

리더십은 나 자신에게서 흘러나오는 내면의 힘과 외면의 태도여야 한다. 흉내를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리더십의 유형을 찾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힘에서 나온다. 장점과 약점을 파악하여 나는 어떤 리더십에 어울리는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누군가는 개척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누군가는 조직가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개척자의 리더십이 강점이라면 교회의 시작과 개척에 자신의 리더십을 발휘하되 이후 교회를 조직함에 있어서는 이를 잘하는 이와 협업하고 위임하는 리더십으로 전환해야 한다. 즉 장단점을 알아야 어떻게 발휘하고 보완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지 않겠는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이 모든 리더십을 잘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왜 서로 연결하여 교회를 이루게 하셨는지를 깨달으면 좋겠다. 어울리지 않는 리더십의 흉내는 나와 함께 하는 교인이 더 잘 안다. 

 

둘째, 적응형 리더십을 갖추라. 

 

리더십은 맥락에 따라 맞추어간다. 물론 나에게 가장 장점이 되는 리더십이 있다. 그러나 그것만을 고집해서는 답이 없다. 상황과 환경이 나를 맞추어 주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다른 이의 리더십을 흉내 내지 말고 자신의 리더십을 찾으라 했더니 한 가지 리더십에 몰두하려 하는데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상황과 교인에게 맞게 행동을 조정하고 강점은 드러내며, 약점을 어떻게 보완한 자신만의 리더십을 보여 주어야 한다. 리더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여 공동의 목표를 행해 가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유연하게 생각하고, 행동과 태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위기의 시기에는 단호하게 반응하면서도 변화의 시기에는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권위적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하고, 안정의 시기에는 교인 스스로 도전할 장을 열어주는 위임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셋째, 리더를 위한 리더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리더는 이기적이면 안 된다. 리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결정으로 몰아가는 것이 리더십이 아니다. 리더십은 교인 모두의 의견을 듣고 모두의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 오늘의 교회는 일부 독재자와 같은 목회자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믿는다. 교인들은 이제 시키고, 하라는 명령어에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교인 모두를 위한 필요를 공유하고, 함께 하려는 리더십이 절대 요구된다. 목회자를 위해서 봉사하거나 단지 우리 교회만을 위해서 헌신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미 세대는 교회의 담을 넘어 모든 존재에 대한 이해로 확장하고 있다. 이런 시대를 역행하여 리더와 소수의 사람을 위한 리더십은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절망스러운 결과를 받게 될 것이다. 

 

넷째, 리더는 도전하는 용기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기존의 관행과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결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실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교회의 본질과 성경적 가르침 또는 공동체가 합의한 규칙을 어기라는 것이 아니다. 본질에는 집중하면서도 오래된 방법과 실천에 대해서는 질문할 줄 알아야 한다. 리더십은 현상 유지를 목적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도록 이끈다. 진보를 위해서는 때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경계를 확장하는 지적 재능도 필요하다. 도전하는 용기는 무모한 자신감과는 다르다. 불안전함 속에서도 탁월함과 창의를 토대로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이끄는 것이다. 리더는 성실한 도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다섯째, 리더십은 헤드십(Headship)이 아니다. 

 

‘헤드십’은 공식적인 지위와 역할에 기초하여 법이나 규칙으로 인정된 권한을 기반으로 발생한다. 직위에 따라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조직화와 제도적인 절차가 마련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아예 이런 것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일부 동의하는 면이 있으면서도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공동체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책임과 권한이 의도치 않게 발생하고 이를 통해서 조직상 상위에 있는 사람이 가지는 결정권에 대해서 일정 부분 수긍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정리하자면, 헤드십이 ‘위치’에서 나오는 제도적 책임에 대한 것이라면, 리더십은 관계적인 ‘영향력’으로 이해하면 서로의 다름이 보일 것이다. 

 

교회 내에서 리더십과 헤드십은 서로 보완적 관계에서 이해해야 하나 그렇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많은 교회나 조직에서 직위가 높으면 영향력도 클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직위는 있어도 따르는 사람이 없는 헤드도 있고, 직위는 없더라도 교회와 조직에서 팔로워가 많은 리더도 존재한다. 목회자의 위치에 있으나 존경받지 못한 이도 있고, 성도지만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아 그를 본받고 싶어 하는 이도 있다. 두 가지를 함께 가진 리더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리더십은 리더라 불리는 사람에게’만’ 있지 않고, 함께 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발견될 수 있다. 공동의 목표를 향한 흐름을 만드는 일은 리더 ‘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역할과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글을 마무리하면서 결국 나를 아는 것에서부터 리더십의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내가 현재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살펴 아는 지혜가 있기를 바라고, 그곳에서 나는 어떤 영향력을 끼쳐 모두가 기대하는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를 살피는 리더십을 지혜롭게 보여 주기를 바란다.


이헌주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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