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연재] 옳은 것을 위해 경계를 과감히 넘어간 여성 제자들 (뉴스앤조이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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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5-07-23 13:46 / 조회 1,472 / 댓글 0본문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란 말이 있다. 사회학자이면서 심리학자인 말콤 글래드웰의 책에서 널리 알려졌는데, 작은 변화들이 쌓여 큰 영향을 주는 상태의 시작점을 뜻한다. 역사의 변화는 한순간에 휙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작은 몸부림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티핑 포인트에 이르면 큰 해일처럼 밀려와 파도타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 문화에서 성평등의 해일이 몰아치기 위한 티핑 포인트는 언제 오는 것일까?
티핑 포인트는 경계를 넘어서는 지점이다.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고착돼 있던 관습, 문화, 제도, 인식의 틀을 넘어서는 것이고, 진보와 변화를 향한 발걸음의 행진이라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경계를 넘는 사역을 많이 하셨다. 종족 간의 경계, 지역의 경계, 젠더·관습·문화의 경계를 기꺼이 넘으시면서 약자들의 서러움을 달래 주셨고, 강자들을 회개하게 하셨으며, 구원의 지평을 널리 확장하셨다. 이러한 사역의 완성을 위해 참여한 진정한 동역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여성 제자들이다.
1.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연대(눅 1:39-56) – 하늘과 땅의 경계를 허물다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개인적으로 부르시고 "나를 따르라"고 초청하셨지만, 제자들은 결국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고 하와를 만드신 이유 역시, 인간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함께하고 협력하여 사는 존재임을 드러내신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연대'이다.
이러한 연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같은 소명,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을 때 가능하고, 그렇게 이루어진 연대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연대하는 자매애를 모범적으로 보여 준 이들이 엘리사벳과 마리아이다. 두 여성은 몸으로 친히 복음의 길잡이들을 잉태하고 출산하며 양육했다. 또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함께 연합하고 연대하여 서로의 삶을 축복하고 복음의 길을 닦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는 이 두 어머니의 삶에서부터 살피는 것이 올바른 출발이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의 경계를 그녀들의 몸으로 허물고 복음을 전파한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준비한 두 여성의 아름다운 연합과 연대는 하나님나라가 첫 시작부터 상호 도움과 배려, 함께함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두 여성의 상호 공감과 배려, 서로를 의지함과 용감한 삶의 투지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가능하도록 길을 예비한 것이다.
2. 가나안 여인(마 15:21-28) - 유대 지역과 이방 지역의 경계를 허물다
가나안 여인은 자신의 사랑하는 딸의 귀신 들림을 고치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고, 예수가 바로 구원을 가져다줄 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소리 지르는 여인을 보내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예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마 15:24)라고 한다.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 먼저, 이후에 이방인에게 주어진다는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드러낸다(롬 1:16 참조).
이러한 관념을 깨뜨리고 예수를 감동시킨 여인의 응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긍정과 유머, 재치와 지혜가 섞인 대답이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 15:27). 여인은 끝까지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 유대 문화에 경멸의 은유로 쓰인 '개'를 자신의 문화, 즉 헬라 문화로 받아들이며, '개'도 주인의 상에서 나오는 떡을 나눌 권리가 있다고 응수한다.
예수께서는 이 대답에 감동하셨고, 여인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 이 장면은 구원이 이방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드러낸다. 마태는 가나안 여인과 예수의 이야기를 통해 유대인-이방인 간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마태는 당시 이방인과 갈등을 일으켰던 일반적인 유대인들의 사고를, 그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예수의 모습에 덧입힌다. 그리고 종교와 문화가 다를 뿐 아니라, 당시 그들이 가장 무시하고 하찮게 여겼던 이방인이자 여성인 가나안 여인을 등장시켜 자신들이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결국 예수의 변화되는 태도를 통해 자신들도 변화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3. 정의를 되찾은 과부(눅 14:1-8) - 불의의 장벽을 허물다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끈질긴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 이야기(눅 18:1-8)는 일반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는 지속적 기도의 모범, 누가가 강조하는 기도 신학의 예시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성서학계의 분석적 연구는 이 이야기가 하나의 비유가 아니라, 정의, 기도, 믿음, 약자의 문제 등 복합적인 주제를 담고 있음을 밝혀냈다.
비유 속 과부와 재판관은 당대의 사회적 약자와 권력자를 상징한다. 그러나 두 인물은 모두 전통적 관행에서 일탈한다. 유대 사회에서도 로마 사회에서도 과부가 직접 재판관을 찾아가는 일은 관행이 아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당당히 말한다.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눅 18:3). 이 말은 법정 예의를 하나도 지키지 않은, 투박하고 절박하며 위협적이기까지 한, 불의를 당한 자의 절규이다.
이 과부는 약하고 온유하고 순종적인, 그래서 누군가 돌봐 주어야만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강하고 끈기 있으며 불의에 굴하지 않는 지혜와 용기를 지닌 여인이다. 전통과 관행을 뛰어넘어 과감히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려는 과부의 모습은 아마도 우리를 신원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한 하나님나라에 사는 제자들이 본받아야 할 삶의 자세는 바로 과부와 같은 기도의 삶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삶과 유리된 기도에 익숙하다.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을 강조하는 기도를 배워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기도란 불의한 세상에서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나라의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지속해서 옳은 일을 행하는 삶과 연관된 것임을 가르치신다. 이것은 한층 더 성숙한 기도 형태, 즉 기도가 삶이고 삶이 기도가 되는 수준이다.
4. 향유 붓는 여선지자(막 14:1-11) - 죽음의 경계를 생명으로 허물다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성 제자의 이야기는 네 개의 복음서에 모두 등장한다(막 14:1-11; 마 26:6-13; 눅 7:36-50; 요 12:1-8). 일반적으로 사복음에서 모두 기록된 사건은 당시 매우 유명했기 때문에 복음서 저자들이 전승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향유 붓는 여성의 이야기는 다른 공통의 전승들에 비해 그 중요성이 강조되지 못했다. 예수께서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향유 부은 여자의 일도 함께 전해져야 하고, 이 여자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말이다(막 14:9).
값비싼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은 여성의 행동은, 예수가 누구인 줄 알아보고 그 길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예언적 퍼포먼스였다. 이 상식을 깨는 행위는 제자들을 당황하게 했고, 그들은 그 여성을 한심한 사람처럼 비하하며 나무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선지자의 기름 부음을 자신의 장례를 준비한 것으로 해석하셨다.
예수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여자가 한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추측하건대, 예수께서 메시아로서 행해야 할 수난과 죽음의 사역에 집중하고 계실 때, 측근 남성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께서 정치적 왕이 되실 것이라 오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여성은 예수가 가실 외로운 십자가의 길을 알아차리고 그 길에 동참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알리라고 하신 것이다. 향유를 부은 이 여성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보내신 선지자요, 치유자였다. 이러한 역할, 즉 깨닫고, 공감하고, 동참하고, 일을 이행하는 복음의 사역을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나 상황을 생명으로 바꾸어 내는 '향유 붓는 일'을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복음서 속 여성 제자들이 예수의 길을 준비하고 참여하면서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었다는 것을 성서에서 보았다. 우리에게는 이제 이것을 모범으로 삼아 이 시대 현장에서 새로운 복음서를 써 내려갈 길이 열려 있다.
김성희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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