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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연재] 2030 여성들은 왜 교회를 떠날까 (뉴스앤조이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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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5-08-05 17:23 / 조회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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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도 고통인데, 교회까지 가야 하나

"한국에서 여성으로,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도 고통스러울 때가 점점 더 많아지는데 굳이 한국 사회 성 불평등과 성소수자 차별,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코어인 한국교회에 가서 더 큰 고통을 자처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2024년 3월에 열린 <로잔너머> 이슈 포럼 '젠더'에 온라인으로 참여하고 난 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언어화되어 나온 문장이다. 한국교회를 생각할 때면 늘 답답했다. 나는 2016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 이후에야 관련 책을 읽고 강연을 찾아 들으면서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교회와 선교단체를 비롯한 개신교 안에서 '남자다움', '여자다움' 같은 성 역할과 "정상 가족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야 한다" 등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늘 이유 모를 답답함을 느껴 왔다.  

 

"교회의 목사와 가정의 아버지는 같은 역할이라 아버지에게만 축복권이 있다", "아내는 한 집안의 가장인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 "목사는 남성만이 할 수 있으며 여성은 섬김과 돌봄의 역할을 감당하면 된다", "자매들은 형제들을 미혹하지 않을 옷차림을 해야만 한다" 등등… 

 

지금 들으면 직관적으로 거부감이 들면서 반박할 말이 뚜렷하게 떠오를 말들이 그 시절 나에게는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죄책감 서린 거부감으로만 다가올 뿐이었다. 그 죄책감 또한 돌이켜 보면 가부장제를 하나님의 진리인 양 착각한 채 산소처럼 호흡하며 지낸 탓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나의 자아를 아직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한 죄인으로 치부하며 깎아내리기만 했다.  

 

교회를 멀리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스무 살 무렵에는 왜 교회에서 서른이 넘은 언니들이 유령처럼 사라질까 참 궁금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나서야 왜 결혼하지 않은 삼십 대 여성 청년들이 교회에서 사라지는지 알 수 있었다.  

 

같은 이유로 나도 30대가 되자, 선데이 크리스천이 되기로 결심하고 바로 자유를 쟁취했다. 교회로 인해 고통스럽던 주말이 꿀맛 같은 시간으로 변하는 걸 실감했다. 신기하게도 교회와 멀어질수록 세상이 더 또렷하게 보이면서 교회와 그 안에 있던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도 깨달았다. 그리고 그제야 교회를 다니면서는 차마 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내 안에서 샘물 터지듯 솟아나기 시작했다.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까? 왜 예수님을 아들이라 부를까?', '남성들이 쓴 성경이라면 당연히 그 내용도 남성 중심적이지 않을까?', '(대부분의) 교회는 왜 여성을 강단에 세우지 않을까?', '하나님(예수님)은 성별을 떠나 신으로 존재한다는데 왜 그 신은 모두 남성의 이미지를 입고 있을까?',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는데 왜 이웃에 성소수자는 포함이 되지 않을까?,' '설교 속 성경 인물들은 왜 대부분 남성일까?', '교회의 조직 시스템과 결정권은 왜 남성들에게만 있을까?', '왜 교회는 여성들에게 잠잠하라고 할까?', '왜 교회 주방은 늘 여성 집사님과 권사님들의 몫일까?' 등등. 

 

차별과 혐오의 시대, 가장 큰 주범은 한국교회 

모두가 성평등한 세상에서 살자고 말하는 페미니즘을 내 삶의 주요한 가치관이자 원동력으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성평등한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일들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여성 폭력 규탄 집회, 세미나, 다양한 시위, 여성의 날 기념행사 및 행진 등 다수의 행사와 집회에 참여하며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그러다 보면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 더 성평등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맞닥뜨린 건 조금씩 더 좋아지는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하는 사회였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외친 자가 대통령이 되었고 그에 동조하는 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바야흐로 여성 혐오와 성소수자 혐오가 역병처럼 창궐하는 사회가 도래하는 걸 목격했다. 게다가 이러한 사태의 가장 큰 주범은 누가 뭐래도 한국교회였다. 

 

학교의 성평등 교육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10대들의 성평등 의식을 오염시키는 교육을 하고,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집회를 열고, 성소수자를 축복한 목사를 교단 내에서 자기들 멋대로 파면·출교시키고, "기저귀 찬 여성이 어디 강단에 서냐"며 여성 목사 안수를 반대하고,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만이 정답인 양 가르치는 종교 집단이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믿었다는 종교였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아들에게만 주어지던 그 관용 어린 따뜻한 시선과 환대는 교회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여성의 목소리는 터부시되고 남성의 목소리는 널리 울려 퍼진다. 그리고 교회가 사회보다 더 최악인 것은 이러한 성차별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망령되이 합리화되며 개신교 안에서 복음처럼 수용된다는 사실이다. 남성 중심적인 성서 해석에서 비롯된 성차별과 성 불평등은 어느새 주님의 섭리로 둔갑해 여성을 지우고 억압하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지만 많은 개신교인은 이 중대한 문제를 문제라고 여기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교회 안에서 '광장'은 가능한가?

12·3 내란 사태 이후 2030 여성들은 응원 봉을 들고 광장으로 뛰쳐나갔다. 4개월 넘는 시간 동안 내란 극복 및 사회 대개혁을 위한 투쟁에 동참하면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민주 시민으로 사는 게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광장의 사람들은 그가 페미니스트건 성소수자건 장애인이건 나이가 어리건 많건 상관없이 마이크를 들었을 때 그의 목소리를 환대하며 경청했다. 마이크는 평등하게 주어졌고 다채로운 색깔의 목소리들이 광장에 울려 퍼졌다.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광장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졌다.  

 

'광장에서처럼 2030 여성들이 한국교회 내에서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생각을 해봤다. 차마 잘 그려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교회를 다니며 또래 여성들과 성차별 문제나 성평등 관련 이슈로 공감 어린 대화를 나눈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그러한 목소리를 내는 또래 여성을 만나 본 적도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이미 변화의 주체로 선 몇몇 2030 기독 여성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삶이 온전히 교회에 종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2030 기독 여성들이 교회라는 작은 우물을 벗어나 진짜배기 세상을 직접 만나서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고 깨달아 마침내 닫혀 있었는지도 몰랐던 입을 열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세상을 향해 외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 사회에서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 수 있어야만, 되려 한국교회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덮어 버리지 못할 만큼의 비명

앞서 이야기했던 문장을 다시금 이야기하려 한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도 고통스러울 때가 점점 더 많아지는데 굳이 한국 사회 성 불평등과 성소수자 차별, 가부장제 및 남성 중심주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코어인 한국교회에 가서 더 큰 고통을 자처해야 하는가." 

 

나는 내 자신이 교회를 변화시킬 주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겪었던 성차별과 한국 개신교에서 나오는 모든 성평등하지 않은 메시지를 향한 분노가 내 가슴속에 살아 있을 뿐이다. 고통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을 뿐이다. 그래서 비명을 지르듯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비명들이 한국교회 곳곳에서 들려오기를 바란다. 교회 때문에 내 삶이 고통스러웠다!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나 자신을 얽매며 살았다! 교회는 성차별을 일삼고, 교회 내 성폭력이 일어나도 쉬쉬하고 덮어 버리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저질렀다! 등등. 

 

쉬쉬하고 덮어 버리지 못할 만큼의 비명이 한국교회에 흘러넘쳐야만 그나마 변화의 첫걸음을 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함께 비명을 지르며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칠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2030 기독 여성들은 쉽게 교회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게 읽은 <비혼주의자 마리아>라는 책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우리 지배당하지 말자. 필요하면 싸워서라도." 

 

최유미 / 30대 여성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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